1956년부터 1960년까지 진행된 브라질리아 건설은 브라질의 수도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중앙고원으로 이전하는 대규모 국책 사업으로, 막대한 재정적·물질적·인적 자원이 투입되었습니다.
주스셀리누 쿠비체크(Juscelino Kubitschek) 대통령은 이 사업을 국가주의적이며 모더니즘적인 선전 도구로 활용하며 자신의 정부 업적을 널리 알렸습니다.
브라질리아는 브라질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연방구(Distrito Federal)의 소재지이기도 합니다.
브라질리아의 꿈
브라질의 수도를 내륙으로 이전하겠다는 구상은 이미 1891년 헌법에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1892년에는 벨기에 출신 탐험가 루이스 크룰스(Louis Cruls)가 강 발원지들 사이에 위치한 중앙고원 일대를 새로운 정치 중심지 건설에 가장 적합한 지역으로 지정했습니다.
또한 성 요한 보스코(St. John Bosco)의 예언도 한몫했습니다. 그는 위도 15도와 20도 사이의 땅에서 새로운 문명이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쿠비체크(JK)는 다음과 같은 지정학적 이유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 한가운데를 새 수도 후보지로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 전쟁 발발 시 수도가 덜 취약해집니다.
- 정부에 대한 여론의 직접적인 압박이 줄어듭니다.
- 새 수도가 브라질 내륙 지역의 개발과 정착을 촉진합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브라질리아 건설은 쿠비체크가 선거 운동 기간 내걸었던 '목표 계획(Plano de Metas)'의 핵심 과제로 편입되었습니다.

역사적 배경
유럽과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회복국면에 접어들어 있었고, 이 낙관론의 물결은 제조업 투자 확대와 함께 브라질에도 불어닥쳤습니다.
1950년대는 브라질에 첫 월드컵 우승(1958년)을 안겨준 시기였으며, 보사노바가 국민 음악으로 자리 잡으며 그 시대의 사운드트랙이 되었습니다.
브라질리아 건설 과정
카를루스 라세르다(Carlos Lacerda) 등 정치인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계획을 승인했고, JK에게 사업 추진에 대한 전폭적인 재량권을 부여했습니다.
새 도시의 설계는 공모전을 통해 선정되었습니다. 당선작은 리우데자네이루 출신 건축가 루시우 코스타(Lúcio Costa)의 도시 계획안이었으며, 오스카르 니메예르(Oscar Niemeyer)가 주요 건물 디자인을 담당했습니다.
이후 사막 한가운데 도시를 세우기 위한 자재, 인력, 자원의 대규모 동원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작업은 이스라엘 피녜이루(Israel Pinheiro)가 회장을 맡은 NOVACAP이라는 회사가 총괄했습니다. 브라질리아의 핵심 구조인 이른바 '필로투 플랜(Plano Piloto)'은 단 4년 만에 완성되었습니다.
약 6만 명의 노동자가 브라질 전역에서 이 도시로 몰려든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들은 '칸당구(candangos)'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최소한의 편의시설만 갖춘 임시 막사가 지어졌으며, 1957년에는 브라질리아 주변 지역에 이미 1만 2천 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였지만, 새 수도는 1960년 4월 21일 성대한 축제 속에서 공식 개청되었습니다. 이후 몇 년에 걸쳐 각 부처, 대사관 및 기타 정치 기구들이 리우데자네이루를 떠나 새 수도로 이전하며 자리를 잡았습니다.

물질적·인적 비용
공사 종료 6개월 전, 브라질리아 건설 예산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습니다.
IMF로부터 대출을 받지 못하자 대통령은 정부 채권을 매각하고 화폐를 추가 발행했습니다. 이 두 가지 조치는 인플레이션과 생활비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1969년 기준으로 브라질리아 건설에 소요된 비용은 450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노동자들 역시 공사를 서두르라는 온갖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교대 근무 강요는 물론 임금 삭감과 용수 공급 차단까지 있었습니다.
보호 장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공사 과정에서 3천 명 이상의 노동자가 숨진 것으로 추산됩니다.
흥미로운 사실
- '브라질리아 - 알보라다 신포니아(Brasília - Sinfonia da Alvorada)'는 도시 개청식을 위해 토미 조빔(Tom Jobim)이 작곡하고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Vinícius de Moraes)가 가사를 쓴 곡입니다. 그러나 공사 지연으로 인해 이 교향곡은 1년 뒤에야 초연되었습니다.
- 1987년, 유네스코는 브라질리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