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안토니아 모레노 데 카세레스는 누구였나? '안데스의 마법사' 카세레스 장군을 지킨 페루의 여걸

페루의 역사는 그라우(Grau), 볼로네시(Bolognesi), 올라야(Olaya), 카세레스(Cáceres)와 같은 영웅들을 찬양하지만, 정작 그 영웅들 곁에서 같은 공간과 헌신으로 나라를 지킨 인물들에게는 좀처럼 조명을 비추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페루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이러한 경향 속에서, 미카엘라 바스티다스(Micaela Bastidas)나 마리아 파라도 데 베이도(María Parado de Bellido)처럼 집단적 기억 속에 남은 몇몇 이름을 제외하면 수많은 여성들이 잊혀 왔습니다. '안데스의 마법사'로 불린 영웅의 아내이자 용감한 어머니였던 이번 글의 주인공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안드레스 아벨리노 카세레스(Andrés Avelino Cáceres) 장군을 떠올리게 할 만큼, 도냐 안토니아의 삶 자체가 가치 있고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밀라 바트레스(Milla Batres) 출판사가 1974년 출간한 그녀의 회고록 『브레냐 캠페인 회고록(Recollections of the Breña Campaign)』을 읽어보면, 그녀가 자녀들의 보호자이자 남편의 든든한 협력자로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안토니아 모레노 데 카세레스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안토니아 모레노 레이바 데 카세레스(Antonia Moreno Leyva de Cáceres)는 1848년 6월 13일 이카(Ica)에서 태어나 1916년 2월 26일 리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풀헨시오 모레노(Don Fulgencio Moreno)와 안토니아 레이바(Doña Antonia Leyva) 부부의 딸인 그녀는 훗날 페루 육군 장군이자 국민적 영웅이 된 안드레스 아벨리노 카세레스 도레가라이(Andrés Avelino Cáceres Dorregaray)와 결혼하여, 태평양 전쟁(1879~1883) 중 칠레 점령군에 맞선 중앙 고원지대 저항 전쟁, 이른바 '브레냐 캠페인(Campaña de la Breña)'을 함께 이끌었습니다.

그녀는 이카의 산 후안 바우티스타(San Juan Bautista) 지구에서 그 지역에 깊은 뿌리를 내린 가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5세 때 리마로 여행을 떠난 그녀는 그곳에서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뛰어난 공을 세워 중령으로 새롭게 승진한 젊은 군인 안드레스 아벨리노 카세레스를 만났습니다. 짧지만 뜨거운 연애 끝에 두 사람은 1867년 결혼했고, 아야쿠초(Ayacucho) 시에 정착해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1872년경, 도냐 안토니아는 리마 중심가에 있는 큰 집을 상속받으면서 온 가족과 함께 수도로 이주했습니다. 딸들인 소일라 아우로라(Zoila Aurora), 루실라 오르텐시아(Lucila Hortencia), 로사 아멜리아(Rosa Amelia)는 이 시기 리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평화로운 일상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879년 4월 칠레가 페루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그녀의 남편은 나라를 방어하기 위해 남부 국경으로 행군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페루군은 칠레군의 타라파카(Tarapacá), 목케과(Moquegua), 타크나(Tacna), 아리카(Arica) 침공을 막아내지 못했고, 1881년 1월에는 수도 리마마저 침략자들에게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안드레스 아벨리노 카세레스는 거의 모든 전투에 참전한 뒤, 저항군을 재조직하기 위해 중앙 고원지대로 들어갔습니다. 도냐 안토니아 역시 딸들을 데리고 남편의 발길을 따랐습니다. 이미 '안데스의 마법사'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던 남편과 함께 그녀는 브레냐 캠페인의 혹독한 나날을 함께 견뎌냈습니다.

도냐 안토니아는 비할 데 없는 용기와 대담함으로 전쟁에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여러 차례 애국 저항 대대를 직접 이끌기도 했습니다. 산속의 원주민 농민들은 국방에 대한 그녀의 전적인 헌신에 경의를 표하며 그녀를 '마마차 안토니아(Mamacha Antonia)'라고 따뜻하게 불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가정으로 돌아왔고, 남편은 페루의 정부 수반으로서 국가를 이끌었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유럽 망명길에 오르기도 했으며, 외교 임무 수행에도 동행했습니다. 말년에는 리마에 정착해 생활하다가 1916년 2월 2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프레스비테로 마에스트로 묘지의 영웅묘에 안장된 유일한 여성이기도 합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의회 법률 제정이라는 절차가 필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