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대중음악(MPB)은 군사독재(1964~1985년)에 맞서 싸운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였습니다. 수많은 노래의 가사 속에 정권에 대한 불만을 담아낸 작곡가들은 검열과 박해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직접적인 항의든 은유적인 표현이든, 반복된 소환 조사와 체포의 위협 앞에 이들은 결국 망명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노래는 국민의 마음속에 자유의 메시지를 새겨 넣었습니다.
이 시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여섯 곡의 명곡을 살펴보겠습니다.
1. 그대가 있다 해도 (Apesar de Você, 지우 부르키, 1970)

작곡가·가수·극작가이자 작가인 리우데자네이루 출신의 지우 부르키(Chico Buarque)는 군사독재를 비판한 가장 방대한 작품 세계를 남긴 인물입니다. 그의 음악은 삼바와 일상의 서정성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1960년대 후반, 그는 정치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자마자 1968년 로마로 자발적 망명을 떠나야 했고, 1970년에야 브라질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시인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Vinícius de Moraes)의 조언에 따라, 그는 '소란을 피우며' 귀국했습니다. 그는 노래 Apesar de Você(그대가 있다 해도)의 가사를 검열관에게 제출하며 "연인 사이의 다툼을 노래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삼바 리듬이라는 선택은 확실히 이별의 노래처럼 들리도록 만들었습니다.
검열관들은 각 은유에 숨겨진 진짜 메시지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작곡가의 의외로 이 곡은 통과 심사를 받았습니다. 이 곡은 양면에 한 곡씩만 담긴 싱글(Single)로 발매되었습니다.
첫 소절 "내일은 다른 날이 될 것이다", 즉 군부 정권의 몰락 가능성을 암시하는 구절부터 가사는 군사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이 곡은 전국 방송국에서 연일 흘러나왔고, 군부가 검열하려 할 때는 이미 늦은 뒤였습니다.
Apesar de Você는 1978년 재발매되어 Tanto mar, Homenagem ao Malandro(건달에게 바치는 헌사) 등 지우 부르키의 유명 곡들과 함께 한 장르의 앨범을 이루었습니다.
가사 발췌 (번역)
오늘 네가 두목이다
말했다, 말했다
논의는 필요 없다
(……)
그대가 있다 해도
내일은 분명
또 다른 날이 될 것이다
2. 꽃 이야기를 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Pra Não Dizer Que Não Falei das Flores, 제랄두 반드레, 1967)

파라이바 주 출신 제랄두 반드레(Geraldo Vandré)의 이 곡은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시위 행진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 중 하나입니다. Pra Não Dizer Que Não Falei das Flores는 브라질의 현실을 묘사하면서도 국민들에게 정치 상황에 맞서 일어설 것을 촉구합니다.
"들판에는 기근이 / 광대한 농장에는"이라는 구절은 브라질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자, 가자 / 기다림만으로는 알 수 없으니"는 시대 상황의 변화를 호소하는 초대장이었습니다.
이 곡은 1968년 국제 가요제(International Song Festival)에서 발표되었으나, 지우 부르키와 토무 조빔(Tom Jobim)의 Sabiá에 밀려 2위에 그쳤습니다. 시나라와 시벨레(Cynara & Cybele) 듀오가 공연했을 때 관객석에서는 격렬한 야유가 쏟아졌다고 전해집니다.
반드레는 그해 브라질을 떠나 1973년에야 돌아왔지만, 이후 브라질 예술 무대에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흥미롭게도 반드레는 자신의 곡이 반체제 진영에 의해 활용되는 것에 대해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곡을 단순한 '항의 노래'가 아니라 "도시의 음악이자 현실의 기록"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는 공군에 대한 존경심을 결코 숨기지 않았으며, 브라질 공군(FAB)을 기리는 Fabiana라는 곡을 직접 쓰기도 했습니다.
가사 발췌 (번역)
들판에는 기근이
광대한 농장에는
거리로 행진하는
결심 못 한 사람들의 행렬은
여전히 꽃을 만들어내
가장 강력한 후렴구
그리고 총포소리보다
꽃을 믿는다
자, 가자
기다림은 알지 못하는 것
누가 그 시간을 아는가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마라
3. 취객과 곡예사 (O Bêbado e a Equilibrista, 알디르 블랑크 & 주앙 보스쿠, 1975)

두 작곡가는 은유를 통해 군사독재가 끝내 해명하지 않은 사건들을 암시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 파울루 지 프론친 고가도로 붕괴 사건은 "오후에 마치 고가교처럼 무너지네"라는 구절로 표현되었습니다.
또한 언론인 블라디미르 헤르조그(Vladimir Herzog)의 살해 사건은 "마리아와 클라리스가 운다"라는 문장으로 그려졌는데, 여기서 '클라리스'는 블라디미르의 아내 클라리스 헤르조그(Clalice Herzog)를 가리킵니다.
원래 이 가사는 찰리 채플린과 그의 유명한 캐릭터 '카를리토스'를 추모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만화가 엔필(Henfil)과의 만남 이후, 망명 중이던 엔필의 형제 베티뉴(Betinho)를 암시하는 구절이 추가되었습니다.
"다정한 조국" 같은 대중적 표현과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격언을 활용해 가사는 모든 계층의 청중에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이 곡은 망명자들과 정치적 권리를 잃은 이들을 위한 사면을 요구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집약했습니다. 1979년, 사법(Amnesty)이 선포된 바로 그해에 녹음된 이 곡은 그 시대의 찬가가 되었습니다.
가사 발췌 (번역)
하늘이라는 잉크판 위의 구름들은
고문으로 생긴 얼룩들을 빨아들이네
참으로 답답하다!
미친 짓!
볼러 햇을 쓴 취객은
브라질의 밤을 위해
천 가지 무례함을 저질렀네
나의 브라질!
많은 이들이 떠난 가운데
로켓 꼬리처럼 사라진
엔필의 형제의 귀환을 꿈꾸는
울어라
우리 다정한 조국이여
마리아와 클라리스가
브라질의 흙 위에서 운다
4. 성배 (Cálice, 질베르투 길 & 지우 부르키, 1973)

싱어송라이터 질베르투 길(Gilberto Gil)은 지우 부르키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독재에 맞선 가장 인상적인 노래 중 하나를 탄생시켰습니다. Cálice는 1973년에 작곡되었지만, 검열관들의 허가를 받아 1975년에야 발표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자신이 죽임을 당할 것을 알면서 아버지께 잔(운명)을 치워 달라고 간청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은유합니다. 그러나 질베르투 길은 여기에 음절의 발음이 만드는 말장난을 더했습니다. 포르투갈어로 '성배'를 뜻하는 '카리세(cálice)'는 동시에 '입 다물어라'라는 뜻의 '칼레세(cale-se)'로도 들립니다.
따라서 가사는 '칼레세', 즉 독재자들이 국민에게 강요한 침묵과 검열을 걷어내 달라는 요구로 해석됩니다.
성서의 이야기에서 예수는 자신이 고문을 당하고 피로 흠뻑 젖은 죽음을 맞이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노래는 독재의 지하 감옥에서 고문당한 이들이 흘린 피를 고발합니다.
멜로디와 코러스는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만듭니다. 지우 부르키와 밀톤 나시멘투(Milton Nascimento)와 함께 한 녹음에서는 남성 합창단 MPB4가 '칼레세'를 반복해서 부르며 압박감을 고조시킵니다. 마지막 소절이 반복될 때 악기 소리가 사라지고, 혼성 합창만이 남은 목소리의 효과는 불안할 만큼 섬뜩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가사 발췌 (번역)
이 쓴 잔을 어떻게 마시랴
고통을 삼키고, 고됨을 삼키되
입을 다물어도 가슴은 남는다
도시의 침묵은 들리지 않는다
성인의 자식인 것이 무슨 소용인가
차라리 남의 자식이었다면
덜 죽은 또 다른 현실일 텐데
거짓말투성이, 만연한 폭력
아버지여, 이 잔을 나에게서 치워 주소서
아버지여, 이 잔을 나에게서 치워 주소서
피 빛이 도는 붉은 포도주
5. 환희여, 환희여 (Alegria, Alegria, 카이타누 벨로주, 1967)

바이아 주 출신 카이타누 벨로주(Caetano Veloso)의 노래 역시 독재에 대한 비판의 흐름에 중요한 획을 그었습니다. 그중에서도 Alegria, Alegria는 브라질 열대주의(Tropicalismo) 운동의 개막을 알린 작품입니다.
이 곡은 1967년 페스티발 다 칸상(Festival da Canção)에서 발표되어 4위로 마무리되었지만, 이후 브라질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곡 중 하나로 추앙받게 되었습니다.
미국 팝 음악의 색채가 강하게 배어 있는 행진곡 형식으로, 카이타누 벨로주는 외래 문화를 '흡수하고 재창조하겠다'는 자신의 제안에 충실하여 편성에 일렉트릭 기타를 추가했습니다.
가사는 "바람을 거슬러 걸을 때" 한 사람이 마주하는 인상들로 읽힐 수 있습니다. 거리에서 그는 "신문 가판대의 태양 / 기쁨과 나른함을 안겨주네 / 누가 그토록 많은 뉴스를 읽는가"라고 노래합니다. 동시에 "사진과 이름들 사이에 / 책도 없고 총도 없이"라는 구절로 당시 브라질의 정치 상황을 암시합니다.
마지막 소절 "나는 계속 살아가고 싶어, 사랑아"는 군사독재의 모든 반대파들에게 예언처럼 울린 바람이 되었습니다. 가사는 무례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검열관들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웠습니다.
카이타누 벨로주는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질베르투 길과 함께 런던으로 자발적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가사 발췌 (번역)
그녀는 결혼을 생각하네
그리고 나는 다시 학교에 가지 않으리
스카프도, 서류도 없이
나는 간다
콜라를 마시네
그녀는 결혼을 생각하네
노래 한 곡이 나를 위로하네
나는 간다
사진과 이름들 사이에
책도 없고 총도 없이
기근도 없고 전화도 없이
브라질의 심장 속에서
6. 그대 머리칼 곱슬 아래 (Debaixo dos Caracóis dos Seus Cabelos, 로베르투 & 에라스무 카를루스, 1971)

로맨틱 음악의 아이콘이자 '조벵 가르다(Jovem Guarda)'를 이끌며 브라질 일상에 록앤롤을 소개한 로베르투 카를루스(Roberto Carlos)는 정권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적은 없었습니다. 젊은이들의 고민을 노래한 그의 음악 때문에 그는 군사독재에 우호적인 인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69년 질베르투 길과 카이타누 벨로주가 런던행을 '권유'받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런던에서 벨로주는 바이아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그의 최고의 발라드 중 하나인 London, London을 썼습니다.
로베르투 카를루스는 영국 수도에서 벨로주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고, 브라질로 돌아온 뒤 그의 친구를 기리는 노래를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카이타누를 이름으로 직접 언급하면 가사는 반드시 검열당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가 택한 해결책은 환유(metonymy)였습니다. 즉, 이름을 말하지 않고도 그를 떠올리게 하는 특징인 '곱슬머리'를 통해 카이타누 벨로주를 암시한 것입니다.
에라스무 카를루스(Erasmo Carlos)와 공동 집필한 이 가사는 망명 생활 속 카이타누가 겪는 슬픔을 담아냅니다. "슬픈 눈빛이 / 가슴이 피를 흘리게 하네 / 그리움 하나, 꿈 하나" 같은 구절에서 그 감정이 표현됩니다. 동시에 그는 바이아 해변의 '하얀 모래'와 '푸른 바다 물'을 언급하며 친구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넸습니다.
이 항의는 사랑과 열정을 다루던 가사에 익숙했던 검열관들의 눈을 피해 아무런 저항 없이 통과되었습니다.
카이타누 벨로주와 로베르투 카를루스는 커리어 내내 이 곡을 여러 번 다시 녹음했습니다.
가사 발췌 (번역)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리
지극히 먼 세계에서 온
그대 머리칼 곱슬 아래
한숨과 함께
조금 더 머물고픈 마음
오후를 거니네
슬픈 눈빛이
가슴이 피를 흘리게 하네
그리움 하나, 꿈 하나
언젠가 당신을 볼 것입니다
미소 지으며 오는 모습
하얀 모래밭을 밟으며
그대의 낙원에서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경제적 기적 (Milagre Econômico)
- 직접 선거 실현 운동 (Diretas Já)
- 브라질의 민주주의
- 납의 세월 (Anos de Chumbo)
- 1964년 군사 쿠데타
- 군사독재 관련 문제 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