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 줌바(1638~1678)는 도망 노예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던 브라질 식민지 시대 수많은 킬롱보(quilombo) 중 하나인 팔마레스 킬롱보(Quilombo dos Palmares)의 초대 왕이었습니다.
생애
강가 줌바는 공주 아콸툰(Aqualtune)의 아들이자, 주비 두스 팔마레스(Zumbi dos Palmares)의 어머니인 사비나(Sabina)의 오빠였습니다.
콩고 왕국에서 태어난 그는 포로로 잡혀 브라질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이후 동료들과 함께 농장에서 탈출하여, 흑인들이 속박에서 벗어나 새 삶을 시작하는 거점인 모캄보(mocambo) 중 한곳으로 향했습니다.
각 모캄보는 신뢰할 수 있는 친족이나 족장이 이끌었습니다. 강가 줌바가 그곳의 왕으로 추대되었지만, 중요한 결정은 모든 지도자가 참석한 가운데 집단 기구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그들이 고향 앙골라에서 알고 있던 사회 조직의 재현이었습니다.

계획적이든 자발적이든 노예 탈출이 이어지면서 킬롱보의 인구는 점점 늘어났습니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지배 시기를 통틀어 킬롱보에 대한 공격도 잦아졌습니다.
따라서 노동력을 회복하고 이 사례가 식민지 전역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팔마레스 킬롱보를 없애야만 했습니다.
강가 줌바는 여러 차례의 공격에 직면했지만, 후방을 기습하는 게릴라 전술로 포르투갈군을 성공적으로 격퇴했습니다.
그러나 모캄보의 농업 생산물 일부가 파괴되는 등의 좌절도 겪었습니다. 이러한 전투 중 한 번에서는 아들과 조카 일부가 포로로 잡히기도 했습니다.
1678년의 평화 협상
1678년, 페드루 드 알메이다(Pedro de Almeida) 총독은 포로로 잡혀 있던 친척들을 석방하며 강가 줌바에게 평화 협상안을 전하게 했습니다. 제안의 내용은 킬롱보 주민들이 카카우 계곡(Vale do Cacaú)으로 이주하고, 더 이상 농장에서 도망친 노예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제안은 팔마레스 킬롱보 지도자들 사이에 균열을 가져왔습니다. 주비를 비롯한 일부 지도자들은 조약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싸우길 원했지만, 다른 이들은 전쟁에 지쳐 강가 줌바를 지지했습니다.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주민 일부는 킬롱보를 떠나기로 했고, 또 다른 무리는 그곳에 남았습니다. 이후 공동체의 지도권은 주비에게 넘어갔습니다.
카카우 계곡에 도착한 강가 줌바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땅은 경작하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주민들은 감시를 받으며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도 없었습니다.
강가 줌바의 최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주비의 추종자에게 살해되었다고 주장하고, 다른 이들은 그의 부하 지도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봅니다. 또한 총독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결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
- 강가 줌바의 생애는 1964년 카사 디게스(Cacá Diegues)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각본은 브라질 문학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역사학자 주앙 펠리시우 두스 산투스(João Felício dos Santos)의 저서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 팔마레스 킬롱보는 반투어로 "작은 앙골라"를 뜻하는 '앙골라 장가(Angola Janga)'라고 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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