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브라질 종교재판: 식민지 시대 이단 심판의 역사와 실상

브라질의 종교재판(Inquisição)은 식민지 시대에 시작되었습니다. 브라질이 발견되던 당시, 이 운동은 이미 12세기부터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지에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각국은 자국의 식민지에서도 기독교 교리에 대한 위협인 이단과 싸워야 했기 때문에, 이 운동은 식민지로 확장되었고 결국 16세기부터 18세기 사이 브라질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종교재판은 성직재판소(Court of the Holy Office)를 통해 이루어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운동으로, 이단을 퇴치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단 혐의를 받은 사람들은 재판을 받고 고문을 당했습니다.

종교재판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브라질에도 종교재판의 통제력은 존재했지만, 그 운영 방식은 재판소(Tribunal do Santo Ofício)가 직접 설치된 포르투갈과는 달랐습니다.

1. 종교재판관의 순회 방문

브라질에는 종교재판관들이 직접 방문하여 주민들의 신앙 행태를 조사하고, 교회가 정한 원칙에 어긋나는 모든 관행을 억제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세 차례, 혹은 네 차례의 방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첫 번째는 1591년부터 1595년까지, 두 번째는 1618년부터 1621년까지, 세 번째는 1627년부터 1628년까지, 그리고 네 번째는 추정컨대 1763년부터 1769년까지였습니다.

브라질에 파견된 최초의 종교재판관은 헤이토르 푸르타두 지 멘동사(Heitor Furtado de Mendonça)였습니다. 종교재판관들은 이 포르투갈 식민지의 습관과 풍습을 통제할 책임을 맡을 성직자들을 임명했으며, 그들의 핵심 임무는 가톨릭에 반하는 모든 관행을 근절하는 것이었습니다.

2. 이단 조사와 박해의 실태

성직자들에게 신자들의 행동을 감시하도록 지시한 것만이 아니라, 누구나 다른 사람을 고발할 수 있었고 심지어 익명 고발도 가능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웃이나 친척 간의 일상적인 불화가 복수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작성한 목록에는 이단죄로 간주되는 행위들이 명시되어 있었는데, 여기에는 마술, 유대교 관습, 중혼, 간음, 소돔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주요 박해 대상, 즉 이단자(기독교 교리에 대한 위협)로 몰린 사람들은 치유사들이었고, 특히 개종한 유대인들, 이른바 '새 크리스천(New Christians)'들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관습을 은밀히 지속하고 있다고 의심받았습니다.

브라질의 최초 주민은 원주민 인디언들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질병 치료 관습이 새로 들어온 거주자들 사이에 퍼지면서 치유사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이후 박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편 새 크리스천(유대인)들은 포르투갈에서 강제로 개종을 강요당했으나, 그중 상당수가 브라질로 피신했습니다. 포르투갈 당국은 먼 식민지에서 이들이 유대교로 돌아가 신앙을 실천하고 전파할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의심이 제기되면 임명된 성직자들이 즉시 사건을 열었고(브라질에서 약 천 건의 사건이 열렸던 것으로 알려짐), 사람들은 체포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무슨 죄로 고발당했는지조차 모른 채 포르투갈로 송환되어 수레바퀴형이나 말뚝형 같은 잔혹한 고문을 당했으며, 심지어 화형에 처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브라질의 종교재판 박물관

2012년 8월, 브라질 종교재판 역사 박물관(Museu da História da Inquisição do Brasil)이 벨루오리존티에 개관했습니다. 이 도시에서는 종교재판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매년 3월 31일이 추모일로 지정되었습니다.

박물관 내부에는 영상 상영실과 도서관이 마련되어 있으며, 종교재판 시대의 원본 문서들과 함께 당시 사용되었던 고문 도구의 복제품들도 전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