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플라틴 전쟁이란?
시스플라틴 전쟁(Guerra da Cisplatina, 브라질 외 지역에서는 '브라질 전쟁(Guerra del Brasil)'으로도 불림)은 1825년부터 1828년까지 브라질 제국,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현 아르헨티나), 그리고 시스플라티나 주 주민들이 현재의 우루과이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두고 벌인 무력 충돌입니다.
대부분의 전투는 뚜렷한 성과 없이 소규모 교전으로 그쳤지만, 사란디 전투(1825년 10월)와 파수두호자리우 전투(1827년 1월)에서는 제국군이 패배했습니다.
전쟁의 주요 원인과 결과
공식적으로 페드루 1세는 해당 영토가 자신의 어머니인 카를로타 조아키나(스페인 국왕 페르난도 7세의 자매)에게 속한다고 주장했으나, 현지 주민들은 이 주장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또한 안데스 산맥의 은광 상당량이 리오데라플라타 강 하구를 통해 유출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 장악은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황제 페드루 1세의 권위를 강화하는 방안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재정 손실은 오히려 브라질 경제와 황제의 이미지를 더욱 약화시켰습니다.
결국 브라질 제국과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 어느 쪽도 시스플라티나 주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분쟁이 끝난 후 이 영토는 독립하여 '동방 은하 공화국', 즉 오늘날의 우루과이가 되었습니다.
핵심 특징
양 진영 모두 전쟁을 수행할 국가 군대를 구성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특히 브라질은 제국 정부가 강제 징병령을 선포하고 외국 용병을 고용할 정도였습니다.
제국군은 약 1만 명의 병력을 시스플라티나 주 전역에 배치했지만, 대부분 현지에서 징집된 군사 훈련을 받지 못한 병사들이었습니다. 한편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아르헨티나를 형성한 스페인 부왕령의 주들)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 후안 데 라스 에라스의 지휘 아래 800여 명의 군대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루과이 주민들이 대거 연합주에 가담하면서 연합군은 급속히 증강되어 브라질군에 필적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반면 브라질 해군은 훨씬 우월했습니다. 약 3,000명의 선원(그중 1,200명은 영국·아일랜드·북미 출신 용병)으로 구성된 제국 함대는 브릭선 18척, 프리깃함 6척, 그리고 25척이 넘는 소형 선박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부에노스아이레스 해군은 브릭선 헤네랄 벨그라노 호(14문)와 헤네랄 발라카르세 호(14문), 코르벳함 25데마요 호(28문), 인데펜덴시아 호(28문), 차카부코 호(20문), 프리깃함 부에노스아이레스 호 및 일부 포선을 보유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역사적 배경
이 영토는 1680년 산티시무 사크라멘투 식민지가 건설된 이후 포르투갈 왕가와 스페인 왕가 간의 오랜 분쟁 지역이었습니다. 다만 분쟁의 보다 직접적인 기점은 1816년 주앙 6세가 영토 통합을 시작한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21년 7월 시스플라티나 주는 공식적으로 브라질 제국에 합병되었습니다. 그러나 페드루 1세 치세 동안 주 독립 운동이 일어났고,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 엘리트들의 지원을 받은 후안 안토니오 라바예하와 프룩투오소 리베라가 1825년 4월 주권을 선언하면서 갈등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1825년 12월, 제국 정부는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에 선전포고를 합니다. 이듬해 라바예하와 아르헨티나군 총사령관 카를로스 마리아 데 알베아르 장군이 리오데라플라타 강을 건너 브라질 영토 정복에 나섰고, 이에 제국은 자원병과 용병 부대를 파견하여 시스플라티나 세력에 맞섰습니다.
몬테산티아고 해전(1827년)에서 제국군이 공화국군을 격파하는 동안, 프룩투오소 리베라는 1828년 세트포부스다스미솅스 지역을 기습 점령했습니다. 교착 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콜로니아델사크라멘토와 몬테비데오는 여전히 브라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한편 부에노스아이레스 봉쇄를 골자로 하는 해상 전투는 연합주 세력을 서서히 약화시켰지만, 연합주의 소형 선박들은 봉쇄선을 돌파해 우루과이에 물자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영국과 프랑스의 종전 압박에 따라 브라질 제국과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는 1828년 8월 27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예비 평화 협약'에 서명했으며, 새롭게 탄생한 우루과이 동방 공화국의 독립을 상호 인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