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적도 프랑스(France Équinoxiale): 브라질을 노린 프랑스의 두 번째 식민지 건설

적도 프랑스(France Équinoxiale)는 1612년부터 1615년까지 프랑스가 브라질 마라냥(Maranhão) 지역에 정착하려 시도한 두 번째 계획을 가리킵니다.

'적도 프랑스'라는 이름은 정복 대상이 된 영토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지역은 당시 '춘분선'이라 불리던 적도선과 인접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약 15년간 리우데자네이루에 존속했던 프랑스 식민지 '남극 프랑스(France Antarctique)' 이후에 벌어졌습니다.

역사적 배경 요약

포르투갈인이 아메리카에 도착한 이후, 다른 유럽 민족들 역시 이 땅을 탐사하고 착취하기 위해 다투었습니다.

15~16세기 유럽 최강의 해양 강국이었던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함께 아메리카 영토를 두고 경쟁했습니다. 스페인은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카리브해에 도달하면서 선수를 쳤습니다.

또한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16~17세기 동안 포르투갈 식민지의 해안 지대에 자리 잡으려 했습니다.

여러 차례의 시도가 있었지만, 포르투갈은 침략에 맞서 싸우며 영토를 지켜냈습니다.

처음에 포르투갈은 이 지역에 정착민을 보내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활동은 원주민들과의 파우브라질(브라질목) 무역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역이 위협받게 되자 포르투갈 왕실은 식민지를 건설하고 인구를 늘릴 목적으로 사람들을 파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땅에 사람을 정착시키는 것은 포르투갈 왕실이 영토 내 자신들의 존재를 공고히 하기 위해 고안한 중요한 전술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탐사와 정복에 대한 유럽 열강의 욕심으로 날로 늘어나던 침입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프랑스인 (1555)

적도 프랑스(France Équinoxiale): 브라질을 노린 프랑스의 두 번째 식민지 건설

당시 프랑스는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간의 충돌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와 프랑스 왕실의 박해를 받던 프로테스탄트들은 포르투갈령 아메리카에서 더 평화로운 거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1555년 이곳에 도착한 그들은 리우데자네이루를 장악하고 과나바라 만에 요새를 세웠는데, 이것이 현재의 빌레가뇽(Villegagnon) 요새입니다.

이렇게 하여 프랑스 칼뱅주의자 니콜라 뒤랑 빌레가뇽(Nicolas Durand Villegagnon)에 의해 브라질 최초의 프랑스 식민지인 '남극 프랑스'가 세워졌습니다.

1560년 포르투갈은 타모요(Tamoios) 원주민들의 지원을 받던 프랑스 침략자들을 축출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승리하지 못했고, 브라질 제3대 총독 멤 드 사(Mem de Sá) 통치 기간인 1567년에야 비로소 그들을 패퇴시켰습니다.

다니엘 드 라 투슈의 원정 (1612)

적도 프랑스(France Équinoxiale): 브라질을 노린 프랑스의 두 번째 식민지 건설

이후 프랑스는 포르투갈 식민지의 다른 지역을 점령하기로 결정합니다. 1612년 3월, 다니엘 드 라 투슈(Daniel de La Touche, 1570~1631)가 이끄는 원정대는 투피남바(Tupinambá) 원주민들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원주민 부족과 프랑스인들은 이미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프랑스 항해사들이 이미 이 지역을 오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라 투슈 본인도 두 번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원주민들은 금발에 새처럼 수다스럽다는 이유로 프랑스인들에게 '노란 앵무새'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적도 프랑스'라 불리는 두 번째 프랑스 식민지를 세웠으며, 수도는 프랑스 국왕이자 수호성인의 이름을 따 상루이스(São Luís)로 명명되었습니다.

칼뱅파 신앙을 가진 다니엘 드 라 투슈였지만, 그의 함대에는 카푸친(프란체스코회) 수사들이 동행하여 도시 건립을 축하하는 첫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단 3년 만에 프랑스 영토는 현재의 파라, 아마파, 토칸틴스 주까지 확장되었습니다.

당시 포르투갈은 이베리아 연합을 통해 스페인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식민지 문제를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스페인은 프랑스의 오랜 숙적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포르투갈 측은 사령관 제로니무 드 알부케르키(Jerônimo de Albuquerque)와 알렉산드르 모라(Alexandre Moura)를 임명했고, 이들은 다수의 포르투갈·스페인 병력과 원주민 병사를 규합했습니다. 여러 차례의 전투 끝에 프랑스인들은 1615년 마침내 완전히 축출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남아메리카에 식민지를 세우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1637년 카옌(Cayenne)을 건설하며 현재의 프랑스령 기아나에 해당하는 영토에서 그 뜻을 이루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

  • 상루이스는 프랑스인이 건설한 브라질 유일의 주도(州都)입니다.
  • 프랑스인들은 1711년 리우데자네이루에 돌아와 도시를 점거하고, 파괴하지 않는 조건으로 몸값을 요구했습니다. 카리오카(리우 시민)들은 필요한 금액을 모아 적을 물리쳤습니다.
  • 2014년 9월 8일, 투피남바 원주민들과 함께 도시를 건설한 프랑스인들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상루이스에 위그노 다니엘 드 라 투슈 문화의 집(Casa de Cultura Huguenot Daniel de La Touche)이 개관했습니다.
  • 마라냥의 프랑스 식민지는 2002년 리우데자네이루 카니발에서 그란데 리우 삼바 학교의 테마 '마라냥의 마법 같은 땅의 노란 앵무새'로 다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