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역사는 약 1만 2천 년에서 2만 년 전 인류가 이 땅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6세기에 포르투갈인들이 이 지역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건설한 플랜테이션(농장)에서 노동력으로 사용하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을 강제로 이주시켰습니다. 이들 강제 노동자들은 원주민들의 역사를 영원히 바꿔놓은 새로운 작물과 동물들을 함께 가져왔습니다.
선사시대 (카브랄 이전 시기)
브라질에 인간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최소 1만 2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약 세 개의 주요 원시 인류 집단, 즉 수렵채집인, 삼바키(패총을 쌓은 어로 민족), 농경 민족이 브라질을 점유하고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브라질 여러 곳에서 선사시대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피아우이 주의 세라 다 카피바라(Serra da Capivara)와 히우그란지두술 주의라제두 데 솔레다지(Lajedo de Soledade)가 있습니다.
포르투갈인의 도착 (1500년)
1500년, 포르투갈인들은 적도 이남에 미지의 대륙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영토 점령에 나섰습니다. 이는 원주민, 아프리카인, 유럽인 모두의 삶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브라질 공식 역사서에 따르면, 이 시기를 '식민지 시대'라고 부릅니다. 브라질이 포르투갈 왕국의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시대 (1500~1822)
식민지 시대는 브라질이 독립한 해인 1822년까지, 즉 1500년부터 1822년까지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이 시기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통치를 받았고, 이는 브라질의 부가 포르투갈 본국으로 보내져야 했다는 의미입니다. 행정 및 법률 문제 역시 모두 본국에서 결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포르투갈령 아메리카는 어떻게 조직되었을까요?
식민지 시대의 경제
포르투갈인들의 목표는 브라질의 천연 자원 착취였으며, 최초로 상업화된 산물은 파우브라질(브라질나무)이었습니다.
이후 포르투갈은 마데이라 섬에서 이미 재배하던 사탕수수 재배를 아메리카 대륙으로 옮겨왔습니다. 이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원주민들이 노예화되었고, 아프리카 내 포르투갈 상관들의 경제를 보완하기 위해 두 대륙 간 노예 무역이 성립되었습니다.
식민지 시대의 정치 조직
새로운 영토에 대한 정착을 촉진하기 위해 세습 카피타니아(Capitania Hereditária, 세습 영주제)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제도에서 개인에게 광대한 토지의 소유권이 부여되었습니다. 1534년부터 1536년 사이, 브라질에 존재했던 14개의 세습 카피타니아가 분배되었습니다.
세습 카피타니아 제도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수도를 살바도르로 하는 총독부(Governo-Geral)가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식민지 행정을 중앙집권화하고 효율성을 높이려는 시도였습니다.
네덜란드의 점령 (1630~1644)
다른 유럽 국가들도 아메리카 영토에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이미 리우데자네이루를 차지하려 시도했다가 포르투갈에 의해 축출된 바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인들은 포르투갈인들을 북동부 지역에서 몰아내고 그곳에 10년간 머물렀습니다.
미나스제라이스의 금광
18세기, 이주민들은 마침내 현재의 미나스제라이스 주 지역에서 금을 발견했습니다.
금광 개발은 식민지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포르투갈 왕실이 금속 반출을 더 잘 통제할 수 있도록 수도가 살바도르에서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전되었고, 이 지역으로 대규모 국내 이주가 일어나며 브라질 내륙에 여러 도시가 건설되었습니다.
미나스 음모 사건 (1789)
'인콘피덴시아 미네이라(Inconfidência Mineira)' 또는 '미나스 반란'은 미나스제라이스 지역의 독립을 선포하려던 운동이었습니다. 명분은 당국이 선포할 예정이었던 미납 세금 징수, 이른바 '디errama(강제 납세)'였습니다.
이에 따라 광산업자와 지식인들로 구성된 한 무리가 총독을 축출하고 권력을 장악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계획은 약속된 날짜 이전에 발각되어 참여자들이 체포되었고, '티라덴트스(Tiradentes)'로 알려진 단 한 사람만이 교수형에 처해 사형당했습니다.
왕실의 브라질 도착 (1808년)
식민지 시대 내에서 왕실의 도착은 브라질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에는 왕립도서관, 식물원, 육군사관학교 등 여러 기관이 설립되었습니다. 브라질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주앙(Dom João) 왕자는 1815년 12월 브라질을 '연합 왕국'으로 격상시켰고, 브라질인들은 리스본 궁정에 자신들의 대표를 파견할 권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제정 시대 (1822~1889)
제정 시대는 제1제정, 섭정 시대, 제2제정으로 구분됩니다.
제1제정 (1822~1831)
브라질은 1822년 독립을 이루었고, 정부 형태로 입헌군주제를 선택했습니다.
새 정부는 시스플라티나 주의 반란과 포르투갈 왕위 계승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페드루 1세(Dom Pedro I)는 포르투갈의 상속권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포르투갈로 떠나기를 택했습니다.
섭정 시대 (1831~1840)
브라질 왕위 계승자가 겨우 다섯 살이었기 때문에, 국정은 연이은 섭정들이 맡았습니다. 이 시기는 바야다(Balaiada), 사비나다(Sabinada), 파루필랴(Farroupilha) 등 중앙정부에 대한 수많은 반란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제2제정 (1840~1889)
끊임없는 반란에 직면하여 보수파 일각에서는 페드루 2세(Dom Pedro II)의 친정을 앞당기고 중앙권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정변은 '성년 귀정 쿠데타(Golpe da Maioridade)'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제2제정 시기에 커피 재배가 확장되며 설탕을 대신해 주요 수출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동시에 영국은 노예제 폐지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폐지는 점진적으로, 그리고 소유주에게 보상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실질적인 정치적 대립을 초래했고, 농업 엘리트들이 군주제를 더 이상 지지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노예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유럽 이민이 장려되었습니다.
파라과이 전쟁 (1864~1870)
파라과이 전쟁은 파라과이가 아르헨티나를 공격하기 위해 브라질 영토를 침공하면서 촉발된 군사 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브라질 육군을 전문화시켰고, 군부가 자신들의 정치적 힘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실증주의적 성격을 띤 공화국 사상이 브라질 장교들 사이에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공화국 시대 (1889~현재)
공화국은 1889년 11월 15일 군인 그룹이 일으킨 쿠데타를 통해 수립되었습니다. 1891년 새 헌법이 공포되었고, 이후 카누두스(Kanudos), 콩테스타두(Contestado), 해군 반란(Armada Revolt) 등 새 정치 체제에 반대하는 여러 반란이 브라질에서 일어났습니다.
정계는 각 주의 과두 정치 세력이 지배했으며, 이들은 선거 부정을 통해 유리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에 맞서 피해를 입은 주들은 1930년 게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를 중심으로 반기를 들었습니다. 바싱투 루이스(Washington Luís)를 물리친 바르가스는 대통령직에 오르며 15년간 권력을 유지하게 됩니다.
바르가스 시대 (1930~1945)
게툴리우 바르가스 정부는 여러 뚜렷한 국면으로 구분됩니다. 우선 바르가스가 주지사 대행으로 주 관리관(interventor)을 임명하면서 상파울루 엘리트의 반발을 샀고, 그 결과 1932년 혁명과 1934년 헌법(대헌장) 공포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1935년 공산주의 봉기로 구체화된 좌파 세력의 성장하는 움직임에 대응하여, 바르가스는 선거가 중단되고 의회가 폐쇄된 '에스타두 노부(Estado Novo, 신국가 체제)'를 선포했습니다.
바르가스 시대는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주와 브라질의 급격한 산업화와 맞물립니다. 이에 바르가스는 노동법 제정을 통해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고자 했으며, 이 법률들은 1990년대까지 브라질의 계급 관계를 규율했습니다.
신공화국 (1945~1964)
이 시기에는 1964년 군사 독재가 시작되기 전까지 대통령 승계와 선거가 중단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바르가스 독재는 공개적으로 비판받았습니다. 이에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선거를 실시했고, 에우리쿠 가스파르 두트라(Eurico Gaspar Dutra) 장군이 승리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바르가스가 집권했으며, 그의 임기는 석유 국유화 운동으로 정의되며 이는 페트로브라스(Petrobras) 창설로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카를루스 라세르다(Carlos Lacerda) 암살 미수 사건에 대통령이 연루되었다는 의혹은 1954년 그의 자살로 이어졌습니다.
주셀리누 쿠비체크(Juscelino Kubitschek)의 당선과 함께 브라질은 개발주의 시대에 진입하여 브라질리아 건설과 수입대체 산업에 자원을 집중했습니다. 'JK'로 불린 쿠비체크의 뒤를 이어 야니우 쿠아드로스(Jânio Quadros)가 취임했는데, 그의 정부는 쿠바와 중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과 관계를 가깝게 하였습니다.
야니우 쿠아드로스가 사임하자, 부통령 주앙 고울라르트(João Goulart, 'Jango')가 승계했지만 그의 진보적 성향 때문에 대다수 정치인들에게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고oulart는 취임에 성공했지만, 1964년 3월 군부와 보수 시민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며 군사 정권이 수립되었습니다.
군사 독재 (1964~1985)
군사 독재는 검열, 선거 중단, 반체제로 간주된 정치 운동에 대한 탄압, 정치적 중앙집권화로 특징지어집니다.
1970년대 말, 군사 정권은 정치 전환을 준비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개방하며 시민들에게 정치적 자유를 허용했습니다. 이는 망명자들의 귀환을 허용한 사면법, 검열 종식, 그리고 '지레타스 자(Diretas Já, 직접선거 실현)' 시민운동 등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신공화국 (1985~현재)
신공화국은 탕크레두 네베스(Tancredo Neves)의 간접 선거 대통령 당선으로 시작되었지만, 그의 서거로 조제 사르네이(José Sarney)가 대통령직을 승계했습니다.
사르네이는 제헌의회를 소집하고 인플레이션에 잠식당한 브라질 경제를 재건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르네이는 임기를 마쳤고, 1989년 콜로르 드 멜루(Collor de Mello)가 25년 만에 처음으로 직접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후 브라질에서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국영 기업의 민영화, 노동권 축소, 국내 시장 개방이 이루어졌습니다. 여야를 막론한 부패 혐의에 대해 국민이 거리로 나와 탄핵을 요구했고, 대통령은 재판에 회부되기보다 사임을 택했습니다.
콜로르의 부통령이었던 이타마르 프랑코(Itamar Franco)가 대통령직을 승계하고, 재무장관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Fernando Henrique Cardoso)가 이끈 헤알 플라누(Plano Real)로 인플레이션을 공략했습니다. 카르도주는 1994년 대선에서 승리하고 행정부 수반의 연임을 보장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며, 그 스스로도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역사에 'FHC'로 기록된 카르도주는 브라질 국가를 개혁하여 신자유주의 노선에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국가 경제가 안정되었음에도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는 계속되어 브라질의 실질적 성장을 저해했습니다.
2003년 루라 다 실바(Lula da Silva)의 당선으로 브라질 역사상 처음으로 좌파 정당이 정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보수 세력과의 연립에도 불구하고,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에 힘입어 국가 내 빈곤이 실질적으로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루라는 재선에 성공했지만, 두 번째 임기는 대통령의 측근 여러 인사에 대한 부패 혐의로 얼룩였습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인 질마 호우세프(Dilma Rousseff)에게 자리를 물려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