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제2차 세계대전 총정리: 원인, 3단계 전개 과정부터 종전까지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어, 유럽 전선은 1945년 5월 8일 독일의 항복으로, 태평양 전선은 같은 해 9월 2일 일본의 항복으로 완전히 막을 내렸습니다.

약 6년간 이어진 이 전쟁에는 영국, 미국, 소련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과 독일, 이탈리아, 일본으로 구성된 추축국이 맞섰으며, 무려 72개국이 군사 작전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사망자 약 4,500만 명, 부상자 약 3,500만 명, 실종자 약 300만 명에 달했으며, 당시 화폐 가치로 환산한 총 전비는 약 13억 8,500만 달러에 이른 것으로 추산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결정적인 배경 중 하나는 독일이 1차 세계대전(1914~1918)의 결과에 대해 품었던 깊은 불만이었습니다.

독일은 이 분쟁의 유일한 책임자로 규정되어 군대 규모를 대폭 축소해야 했고, 승전국들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경제는 극도로 불안정해졌고, 고도의 인플레이션과 각종 사회 문제가 누적되었습니다. 1920년대에는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즘을 비롯한 급진 운동이 등장해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히틀러는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아리안인이 우월한 인종이라 선전하고, 다른 민족은 복속되거나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모든 악의 근원으로 규정되어 박해를 받았고, 이는 산업적 규모로 자행된 학살, 즉 이른바 홀로코스트로 이어졌습니다.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는 유대인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정신적·신체적 장애인, 공산주의자, 동성애자, 종교인, 롬인(집시) 역시 박해와 학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3단계 전개 과정

제2차 세계대전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 1단계: 추축국의 승세 (1939~1941)
  • 2단계: 세력 균형기 (1941~1943)
  • 3단계: 연합국의 승리 (1943~1945)

전쟁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어 1945년 5월 8일 독일의 항복으로 유럽에서 종결되었습니다. 반면 태평양 지역에서는 1945년 9월 2일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전투가 계속되었습니다.

전선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으로 이루어진 추축국 진영과 영국, 소련, 미국이 중심이 된 연합국 진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브라질은 1942년 8월 22일 추축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1944년 이탈리아 전선에 병력을 파견했습니다. 또한 미군은 브라질 나탈(RN)의 공군기지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1단계: 추축국의 승세 (1939~1941)

제2차 세계대전의 첫 번째 국면은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열렸습니다.

프랑스와 영국 정부는 독일 수상 아돌프 히틀러(1889~1945)의 확장 움직임을 저지하고자 독일에 경제 봉쇄를 가했지만, 직접적인 군사 충돌로 나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전장에서 주도권을 잡은 독일은 1940년 육·해·공을 아우르는 통합 작전을 펼쳐 덴마크를 점령했습니다.

독일군은 스웨덴과의 철강 무역을 확보하고 영국에 맞서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고자 노르웨이도 손에 넣었으며, 이를 위해 노르웨이 항구 도시 나르비크를 점거했습니다.

1940년 5월, 히틀러는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침공을 명령했고, 두 나라가 함락되자 나치군은 곧장 프랑스로 진격하여 그 나라를 장악했습니다.

프랑스는 1940년 6월 22일 독일과 휴전 협정을 체결했고, 영토는 둘로 나뉘었습니다. 한쪽은 독일이 직접 통치하고, 다른 쪽은 나치에 협조한 페탱 원수가 이끄는 비시 정부가 관할하게 되었습니다.

이어 히틀러는 영국을 겨냥했습니다. 8월 8일부터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가 영국 도시들을 폭격했습니다. 그러나 수적으로 열세였던 영국 공군(RAF)이 이 공습을 성공적으로 방어했고, 영국 정부는 오히려 독일 본토에 대한 반격 작전을 명령했습니다.

이것이 전쟁 초반부에서 히틀러가 겪은 유일한 패배였으며, 연합국이 전력을 재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벌어주었습니다.

다음 해인 1941년에는 히틀러의 군대가 수에즈 운하 장악을 노리고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에 도착했습니다. 같은 해 5월에는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가 추축국 군대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2단계: 세력 균형기 (1941~1943)

제2차 세계대전 총정리: 원인, 3단계 전개 과정부터 종전까지

전쟁의 두 번째 국면은 세력 간 균형이 특징입니다. 이 시기는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시작되어 1943년 이탈리아의 항복으로 끝났습니다.

독일의 소련 정복 목표는 레닌그라드(오늘날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우크라이나, 코카서스 지역을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독일군은 우크라이나를 거쳐 레닌그라드로 진입했고, 히틀러의 부대가 1941년 12월 모스크바 교외에 도달했을 때는 소련 붉은 군대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전진이 멈추게 됩니다.

태평양 전선의 개전

유럽의 전쟁과 평행하게 진행된 태평양에서는 일본과 미국 간의 갈등이 날로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개전 이전인 1930년대에 일본은 이미 중국을 침공했고, 1941년에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침략했습니다. 이에 같은 해 11월, 미국은 일본에 무역 금수 조치를 단행하며 중국과 인도차이나에서의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양국 간 외교 협상이 진행되던 중, 일본은 하와이의 진주만 해군 기지를 기습 폭격했고, 남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도 미국에 대한 공세를 이어갔습니다. 이 공격에 즉각 대응하여 미국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일본은 영국령 말레이, 싱가포르 항, 버마(현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차례로 침공했고,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홍콩 항구와 영국·미국령 태평양 섬들을 점령했습니다. 여기에 독일과 이탈리아마저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1942년 1월까지 일본의 공세는 400만 제곱킬로미터의 영토 정복과 1억 2,500만 명에 달하는 인구 지배라는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전환점: 스탈린그라드에서의 독일 패배

전황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42년 말, 연합국이 추축국의 공세에 맞서 승기를 잡으면서부터입니다. 이 국면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전쟁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태평양에서도 일본은 호주와 하와이를 정복하지 못하며 중요한 패배를 거듭했습니다.

영미 연합군 역시 리비아와 튀니지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북아프리카를 발판 삼아 1943년 시칠리아에 상륙한 뒤 이탈리아 본토로 진격했습니다.

3단계: 연합국의 승리 (1943~1945)

이탈리아의 항복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은 세 번째 국면에 들어섰고, 이 단계는 1945년 9월 일본의 항복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1943년 7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국왕에 의해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 정부가 축출되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추축국만이 승인한 살로 공화국이 선포되었으나, 같은 해 9월 이탈리아는 연합국과 휴전 협정을 체결합니다.

이후 이탈리아는 진영을 바꾸어 1943년 10월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1945년 4월, 이탈리아 주둔 나치군이 포위 섬멸되자 무솔리니는 스위스로 도피를 시도했지만 저항 세력에게 붙잡혀 처형되었습니다.

이탈리아의 함락과 함께 독일 포위망도 좁혀졌습니다. 같은 시기인 1944년, 소련군은 루마니아, 헝가리,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를 차례로 해방시켰습니다.

그해 6월 6일에는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에 상륙하는 이른바 D-Day(노르망디 상륙작전)가 감행되어 독일군의 후퇴와 프랑스 해방으로 이어졌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소련군은 1945년 1월 폴란드를 해방했고, 마침내 독일 본토를 정복하여 제3제국을 무너뜨렸습니다. 5월 8일, 유럽의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태평양에서는 미국이 일본을 압박하여 1944년 말까지 마셜제도, 캐롤라인제도, 마리아나제도, 필리핀을 확보했습니다. 1945년에는 버마를 정복하고 오키나와섬을 점령했습니다.

항복할 생각이 없던 일본에게 제2차 세계대전 최악의 공격이 가해집니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폭을 떨어뜨렸습니다.

일본의 항복 문서 조인은 1945년 9월 2일에 이루어졌고, 이로써 태평양의 전쟁도 종결되었습니다.

브라질의 참전

처음에 브라질은 전쟁에 중립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브라질 선박이 추축국에 의해 공격당하자, 제툴리오 바르가스 정부는 추축국에 선전포고를 하게 됩니다.

브라질의 참전은 FEB(브라질 원정군)가 담당했습니다. 1943년 8월 9일 창설된 FEB는 25,445명의 병력으로 구성되어 7개월간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3,000명의 브라질 병사가 부상을 입었고, 45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와 영향

제2차 세계대전은 현대 세계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1차 대전 때와 달리 독일은 전쟁의 유일한 책임자로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철저한 반나치화라는 이념 정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유럽 각국은 국토가 폐허가 되고 인구가 크게 줄었으며, 미국의 지원, 즉 마셜 플랜을 통해서만 유럽의 재건이 가능했습니다.

전쟁 방지를 위한 국가 간 외교적 논의의 장으로서 국제연합(UN)이 창설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의 최대 승자는 단연 미국이었습니다. 하와이를 제외하고는 본토가 침공당하지 않았기에 유럽 국가들과 비교할 때 물질적 손실이 크지 않았습니다.

한편 유럽은 어떤 국가에 의해 해방되고 점령되었는가에 따라 두 개의 경제 진영으로 갈라졌습니다.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은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가 사회주의 성격의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반면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 서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영향 아래 놓이며 복지 국가(Welfare State)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두 이념 진영 간의 대립은 전 세계를 뒤흔들었고, 이른바 냉전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대표 영화

  • 굿바이 보이즈(Au revoir les enfants), 루이 말, 1987
  • 에너미 앳 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s), 장자크 아노, 2001
  • 덩케르크(Dunkirk), 크리스토퍼 놀런,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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