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페트로폴리스 조약: 아크레 영토 병합과 브라질-볼리비아 국경 협정

페트로폴리스 조약이란?

페트로폴리스 조약(Treaty of Petrópolis)은 1903년 11월 17일 리우데자네이루주 페트로폴리스에서 브라질과 볼리비아 정부가 체결한 외교 협정으로, 1750년 이후 볼리비아 영토였던 아크레(Acre) 지역을 브라질에 병합시킨 조약입니다.

총 10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조약에는 양국 간 일부 영토를 교환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즉, 하부 아크레(142,000km²)와 상부 아크레(48,000km²)가 브라질 영토에 편입되는 대신, 볼리비아는 마투그로수주 지역의 일부인 약 3,164km² 면적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조약의 배경

고무나무 채취 산업(고무 순환기)은 아마존 열대우림에 위치한 아크레주를 포함한 브라질 북부 지역 발전의 주요 동력이었습니다. 19세기 말, 고무는 주요 수출품 중 하나로 부상했고, 이는 더 나은 생활과 노동 환경을 찾아 이주한 브라질인들, 특히 북동부 출신 이주민들에 의한 지역 개척과 정착으로 이어졌습니다.

볼리비아 영토였음에도 불구하고 볼리비아 당국은 이 지역의 개척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반면 브라질 정부는 삼림과 고무 농장이 풍부한 이 영토를 병합하기 위해 200만 파운드 스털링이라는 거액을 지불할 만큼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 영토 병합 협상은 20세기 초 리우데자네이루주의 산악 도시 페트로폴리스에서 진행되었으며, 양국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참석했습니다. 브라질 측에서는 외무장관 호세 마리아 다 실바 파란호스 두 리우브랑코(바롱 두 리우브랑코)와 히우그란지두술 전지사 주아킴 프란시스쿠 드 아시스 브라질이, 볼리비아 측에서는 페르난도 E. 과찰라 대통령과 상원의원 클라우디오 피니야가 참여했습니다.

제7조: 마데이라-마모레 철도 건설

이 조약으로 브라질은 지역 운송과 자원 개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기반 시설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제7조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브라질 연방 공화국은 자체적으로 또는 민간 회사를 통해 브라질 영토 내에서 마데이라강의 산투안토니우 항구부터 마모레강의 과자라미림까지 철도를 건설하며, 빌라 무르치뉴 또는 그 인근 지점(마투그로수주)을 경유하여 베니강과 마모레강의 합류점에 위치한 빌라 벨라(볼리비아)에 이르는 지선을 포함한다. 브라질이 4년 이내 완공을 위해 노력할 이 철도는 양국이 동일한 권리와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제3조: 배상금 지급

양측 모두 페트로폴리스 조약을 통해 실질적인 이익을 얻었으며, 이는 양국 간 유대를 강화하고 외교·상업·정치 관계를 한층 원활하게 만들었습니다. 제3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양국 간 교환된 영토 면적에 차등이 있는 만큼, 브라질 연방 공화국은 200만 파운드 스털링의 배상금을 지급하며, 볼리비아 공화국은 이를 주로 철도 건설 또는 양국 간 교통 개선과 무역 발전을 위한 기타 사업에 사용하는 것에 동의한다."

아크레 혁명과 조약의 의의

이 협정은 양국 간 우호 관계를 수립했을 뿐만 아니라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차단했습니다. 볼리비아는 군사 임무대를 여러 차례 파견했지만, 해당 지역이 이미 브라질인들에 의해 상당 부분 점유된 상태였기 때문에 실효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영토 쟁탈 시도는 1899년 분쟁 발생부터 1903년까지 약 4년간 이어졌으며, 이 시기는 '아크레 혁명'(아크레 전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양측의 평화와 상호 이익을 위한 합의로 귀결되었고, 페트로폴리스 조약 이후 브라질에 병합된 영토에는 약 6만 명의 고무 채취자(세린게이루) 가족들이 정착하여 고무(라텍스) 추출 작업을 담당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

  • 리우브랑코 남작을 기리기 위해 이전에 빌라 펜나폴리스라고 불리던 도시는 1912년 '리우브랑코'로 개명되었으며, 현재 아크레주의 주도입니다.
  • 페트로폴리스 조약의 결과로 페루와 브라질 간의 국경도 재확립되었는데, 아크레는 브라질, 페루, 볼리비아 세 국가가 서로 분쟁하던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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