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브라질의 광활한 내륙 황무지인 세르탕(sertões)을 탐사한 개척자들을 '반데이란치스(Bandeirantes)', 또는 '세르타니스타(Sertanistas)'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유럽인, 특히 포르투갈인의 직계 후손으로, 포르투갈 식민지 영토를 확장하고 정복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반데이란치스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정해진 국경선을 넘어, 원정 때마다 새로운 지역을 한 걸음씩 점령해 나가며 식민지의 영역을 끊임없이 넓혔습니다.
이들은 갑옷과 방어구에 권총, 아르케부스, 소총, 머스킷 총, 화승총, 검, 창, 석궁 등으로 무장하고, 인디언과 카보클로(혼혈인)로 구성된 부대를 이끌며 브라질의 깊은 숲속으로 진입해 정착지를 건설하고 전쟁을 벌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포르투갈어보다 오히려 투피(Tupi)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는 사실입니다.
반데이란치스는 광산 지역에서 귀금속과 보석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았으며, 특히 가축과 인디언 노예 무역을 통해 식민지 경제를 활성화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폭력과 질병으로 인해 수많은 원주민 부족이 몰살당하는 비극도 낳았습니다.
반데이란치스의 주요 유형
먼저 반데이란치스의 활동과 왕실이 공식적으로 실시한 '엔트라다스(Entradas)'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엔트라다는 왕실의 재정 지원을 받았지만, 토르데시야스 조약의 경계 안에만 머물러야 하는 제약이 있었습니다.
반면 '반데이라스(Bandeiras)'는 민간 주도의 원정으로, 종종 왕실의 비공식적 지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반데이라스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 광물 탐사 반데이라: 귀금속과 보석을 찾기 위한 원정
- 인디언 포획 원정: 처음에는 오지의 인디언을, 이후에는 예수회 선교부에서 이미 교리교육을 받은 인디언까지 포획해 노예화
- 계약 세르타니스모(Sertanismo de Contrato): 반데이란치스가 용병으로 고용되어 공격적인 인디언과 흑인 킬롱보(도망 노예 공동체)와 싸우는 형태
상파울루와 반데이란치스
반데이란치스는 현재의 상파울루 주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발자취는 수많은 마을을 낳았고, 이 마을들은 훗날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이들은 티에테 강과 그 지류를 이용해 해안과 고원을 가르는 울창한 숲을 통과할 수 있었고, 세라두마르 산맥 바로 뒤에 위치한 상파울루를 해안의 상비센트와 식민지 내륙을 연결하는 전초 기지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포르투갈 인구는 파우브라질(브라질나무) 채취와 사탕수수 재배가 이루어지던 해안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
16세기 후반부터 이베리아 연합(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동군연합)이 이루어지면서, 브라질 영토로 들어오는 반데이라는 인디언의 공격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595년부터는 왕실이 식민지 내 이교도(인디언)의 노예화를 금지했습니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가 아프리카 시장을 장악하면서 흑인 노동력이 크게 부족해졌고, 이로 인해 본국의 묵인 아래 인디언 노예화가 다시 확산되었습니다.
그 결과 상파울루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예수회 선교부를 공격하여 이미 교리교육을 받고 '길들여진' 인디언들을 노동력으로 포획했습니다. 1605년에는 돔 프란시스코 드 소자(Dom Francisco de Sousa)가 조직한 원정대가 270명이 넘는 포르투갈인을 이끌고 인디언 사냥을 위해 출발하기도 했습니다.
1628년에는 900명이 넘는 백인과 3,000명의 인디언으로 구성된 대규모 반데이란치스 부대가 예수회 선교사들을 완전히 축출하고 선교부에서 수천 명의 인디언을 포획했습니다. 1632년에는 에스피리투산투 빌라에서 수천 명의 과라니족을 포획하는 일이 되풀이되었습니다.
1640년 이베리아 연합이 해체된 이후, 반데이란치스는 네덜란드인 추방에도 일조했습니다. 20년 후에는 이미 토칸칭스 상류, 남마투그로수, 고이아스 중부, 피아우이, 볼리비아, 우루과이, 북파라과이까지 진출했으며, 1690년 금이 발견된 미나스 지역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695년에는 도밍고스 조르제 벨류가 팔마레스 킬롱보를 파괴했습니다. 몇 년 뒤인 1707년에는 상파울루 반데이란치스들이 엠보아바 전쟁에 휘말려 포르투갈인과 식민지 다른 지역 출신 이주민들에게 패배했습니다.
1748년경 반데이란치스는 이미 고이아스와 마투그로수 카피타니아, 그리고 산타카타리나의 라구나 남부 지역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그들의 후손들이 정복한 영토에 정착하면서 반데이라 운동은 점차 쇠퇴했습니다.
주요 반데이란치스 인물
역사에 이름을 남긴 가장 유명한 반데이란치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 페르낭 디아스 파이스(Fernão Dias Pais)
- 마누엘 보르바 가투(Manuel Borba Gato)
- 도밍고스 조르제 벨류(Domingos Jorge Velho)
- 안토니우 하포주 타바레스(Antônio Raposo Tavares)
- 바르톨로메우 부에누 다 베이가(Bartolomeu Bueno da Veiga)
- 제로니무 레이탕(Jerônimo Leitã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