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공화정 역사에서 재민주화(再民主化)는 두 시기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 1945년 —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축출되면서
- 1985년 — 군사 독재가 막을 내리면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재민주화'를 이해하기에 앞서 먼저 '민주주의'의 개념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democracy)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민의 통치', 즉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가 모두 통치에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민은 자신의 권력을 정치 대표자들에게 위임합니다. 이를 대의민주제라고 부릅니다.
반면 국민의 기본적인 자유가 박탈당한다면, 그 사회는 독재 체제 아래 놓여 있는 것입니다. 독재는 문민 독재일 수도 있고 군사 독재일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따라서 '재민주화'란 독재의 고통을 겪었던 사회에 다시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에스타두 노부(신국가) 시대 (1937~1945)
1937년 제툴리우 바르가스는 의회를 해산하고 국가에 새 헌법을 부여했습니다. 정당 활동을 금지하고 대통령 선거도 중단시켰습니다.
여기에 정치경찰을 유지하고 신문과 공연에 대한 사전 검열을 실시했습니다. 이 시기는 에스타두 노부(Estado Novo, 신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이 시점에서 브라질 공화정 역사상 민주주의가 한차례 중단된 것으로 간주됩니다.
에스타두 노부의 종말 (1945)
1940년대에 들어서며 에스타두 노부는 더 이상 브라질 엘리트층의 만장일치를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불만을 잘 보여주는 문서가 바로 '미네이루 선언문(Manifesto dos Mineiros)'입니다. 1943년 비밀리에 작성된 이 선언문에서 미나스제라이스 주 출신 지식인들은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고, 선언문이 언론에 게재되자 여러 저자들이 체포되었습니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브라질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이 있었습니다. 브라질은 유럽에서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 병사들을 보냈지만, 정작 자국에서는 독재적 성격을 지닌 체제 아래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1945년 바르가스는 UDN(국민민주연합)의 지원을 받은 군사 쿠데타로 축출되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라는 이미지를 오랫동안 구축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바르가스 정권을 옹호하려는 국민적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재민주화의 시작 (1945)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재민주화란 주권을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며, 이는 자유선거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바르가스가 부통령 직제를 폐지해 두었기 때문에, 그의 뒤를 이은 사람은 연방대법원장 조제 리냐레스였습니다.
리냐레스는 공산당을 포함한 여러 정당이 경쟁할 수 있는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의 실시를 보장했습니다. 선거의 승자는 PSD(사회민주당)의 에우리쿠 가스파르 두트라 장군이었습니다.
재민주화의 두 번째 단계는 헌법 개정입니다. 이에 따라 하원에 선출된 의원들은 국민제헌의회를 구성하여 1946년 9월 새 헌법을 제정·공포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헌법적 권리가 회복되었음에도 이 재민주화 과정은 곧 미완결임이 드러났습니다. 1947년 공산당이 불법화되었고, 문맹자에게는 선거권이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군사정권 시대 (1964~1985)
1964년 군부는 브라질 사회 일부의 지원을 받아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주앙 고울라르트 대통령을 축출했습니다.
군부는 이후 21년간 집권하며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직을 서로 교대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1967년에는 새 헌법을 제정했습니다. 이 헌법은 행정부에 대한 직접 선거를 폐지하고, 언론에 대한 사전 검열을 도입하며,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가이젤 정부부터 민주화 개방까지
1970년대 군부가 내세웠던 '경제 기적'이 끝나면서, 국민들은 군사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정권에 의해 탄압받던 사람들의 고문과 실종 사태를 숨기는 것도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군부 일각에서는 자신들의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보복을 우려하여 '느리고, 점진적이며, 안전한 개방'을 제안했습니다. 이를 통해 시민적 권리가 단계적으로 국민에게 회복될 예정이었습니다.
에르네스투 가이젤 정부(1974~1979) 동안 정치 상황에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 AI-5(제5호 제도법)가 헌법적 보장장치로 대체됨
- 언론인 블라디미르 에르조그가 군부에 의해 사망하면서 신문 검열을 우회하는 보도가 이루어지고 정부 반대 시위가 촉발됨
- 중국,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 공산권 국가들과 외교 관계 재수립
피게이레두 정부(1978~1985)에서는 정치 개방을 촉진하는 새로운 법률들이 제정되었습니다.
- 1978년 12월 AI-5 폐지
- 1979년 8월 사면법 제정 및 정치 망명자들의 귀환 허용
- 대중 시위와 집회에 대한 관용 확대
같은 시기 단테 데 올리베이라 의원은 헌법 수정안을 통해 대통령 직접선거를 제안했습니다. 이 구상은 전국의 거리를 시위 인파로 채운 '직선제 지금 당장(Diretas-Já)' 운동을 펼친 국민들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제안은 부결되었고, 군사 독재 이후 최초의 문민 대표는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로 선출되었습니다.
재민주화의 완성 (1985)
선출된 대통령 탕크레두 네베스는 취임 전 병석에 눕게 되었고, 부통령 조제 사르니가 임시로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탕크레두의 사후 사르니가 대통령직을 승계했습니다. 다음 단계는 국민제헌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의회 선거였으며, 제헌의회는 1988년 새로운 민주적 헌법을 공포했습니다.
그러나 사르니는 국가정보국(SNI)을 유지했고, 고문과 금전 횡령에 연루된 자들을 처벌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브라질 최초의 자유롭고 직접적인 대통령 선거는 1989년에 치러졌으며, PRN(국가재건당)의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가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부패와 선거 자금 불법 조달 스캔들로 흔들린 콜로르 지 멜루는 1992년 탄핵 소추를 피하기 위해 대통령직에서 사임했습니다.
이후 1994년부터 2016년까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이어졌으나, 딜마 로우세프 대통령의 파면으로 브라질 민주주의는 또 한번 시련을 겪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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