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칸가소(Cangaço): 브라질 북동부를 뒤흔든 무장 유랑 집단의 사회 운동

칸가소란 무엇인가?

칸가소(Cangaço)는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브라질 북동부 지역에서 전개된 사회 운동입니다. 권력이 대토지 소유주들에게 집중되어 있던 상황 속에서, 칸가세이루스는 북동부 주민 대다수가 처한 열악한 삶의 조건에 대한 불만을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칸가세이루스는 무리를 지어 생활한 무장 유랑 집단이었습니다. '칸가소'라는 명칭은 소의 머리에 얹어 짐을 나르는 데 사용하던 나무 도구인 '칸가(canga)'에서 유래했습니다. 유랑 생활을 하는 그들이 이동할 때마다 많은 짐을 짊어진 모습이 마치 칸가를 메고 다니는 가축을 연상시켰기 때문입니다.

칸가세이루스는 카팅가(가시 덤불 숲)의 식생과 먹거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뛰어난 생존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1870년~1940년) 동안 그들은 브라질 북동부 내륙의 황무지, 즉 세르탕을 장악했으며, 상당수는 호의를 조건으로 지역 유력자인 콜로넬들의 보호를 받기도 했습니다.

칸가소의 역사 요약

1889년 공화정이 선포된 이후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가 국가를 괴롭혔습니다. 특히 북동부 지역에서는 폭력, 기근, 빈곤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9세기 말에는 이미 국내 북부와 북동부 곳곳에서 칸가세이루스 집단의 출현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칸가소 운동이 하나의 흐름으로서 더욱 결속력 있고 조직적인 형태를 갖춘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였습니다.

칸가소는 브라질 역사에서 중요한 사회 현상이었으며, 북동부 세르탕 주민들에게 더욱 포용적이고 평등한 새로운 현실을 가져오고자 헌신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산탄총, 칼, 단검 등으로 무장한 그들은 무리를 지어 북동부 여러 지역을 돌며 농장을 약탈하고 지주들을 납치하거나 살해하는 등 어디를 가든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부 주민들은 강력함과 명예의 상징인 이들 곁에 서면서 보호받는다고 느꼈습니다. 반면, 마을에 침입해 약탈과 살인을 저지르고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등 주민들에게 공포를 안겨준 칸가세이루스도 존재했습니다.

칸가세이루스만의 독특한 복장도 특징적입니다. 그들은 모자를 포함한 가죽 옷을 착용했는데, 이는 카팅가의 거친 식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이자, 끊임없이 추격당하던 경찰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칸가세이루스 운동은 한 시대를 넘어 그들만의 힘과 의지, 헌신을 보여주며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람피앙과 마리아 보니타

람피앙(Lampião)은 '칸가소의 왕' 또는 '세르탕의 주인'으로 불린 혁명적인 인물입니다. 본명은 비르굴리누 페레이다 실바(Virgulino Ferreira da Silva, 1897~1938)로, 페르남부쿠주 세라 탈하다 출신이며 국민위병 복무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부정의에 맞서 거의 모든 북동부 주를 누비며 활동했습니다.

람피앙의 아내 마리아 보니타(Maria Bonita)는 '칸가소의 여왕'으로 알려졌습니다. 본명은 마리아 고메스 지 올리베이라(Maria Gomes de Oliveira, 1911~1938)로, 무리에 합류한 최초의 여성으로서 용감하게 싸우며 칸가소 운동의 상징적인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람피앙과 마리아 보니타는 당시 제툴리우 바르가스 정권 하의 관계들이 준비한 매복 공격으로 잔혹하게 살해당했습니다. 1938년 7월 27일, 두 사람이 세르지페주 포수 헤돈두의 그로타 지 앙지쿠스에서 야영 중일 때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당국은 이들 부부를 위험한 인물로 규정했고, 그들의 최후는 칸가세이루스의 상징이었던 부부의 비극적인 종말로 기록되었습니다.

두 사람과 동료들의 목은 전리품처럼 내걸려 전시되었으며, 1965년 5월 24일 법률 제2,867호가 승인된 후에야 유해는 비로소 정식으로 매장될 수 있었습니다.

지도자들의 죽음은 북부와 북동부로 확산되어 있던 칸가소 운동의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목이 잘릴 것을 두려워한 일부 무법자들은 자진하여 관계 당국에 투항했습니다.

한편 어떤 견해에 따르면, 운동은 1940년 램피앙의 친구였던 크리스티누 고메스 다 실바 클레투, 즉 별명 코히스코(Corisco)의 사망과 함께 완전히 막을 내렸습니다.

주요 칸가세이루스 인물

여러 칸가세이루스 무리가 존재했지만, 그중 가장 두드러진 세력은 램피앙이 10년간(1920~1930년) 이끌었던 무리였습니다.

다음은 칸가소 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의 본명과 별명입니다:

  • 아니시우 마르쿨리누 (개솔린/Gasoline)
  • 안토니우 도스 산투스 (푸른 코브라/Green Cobra)
  • 안토니우 이나시우 (모레누/Moreno)
  • 에제키엘 페레이다 실바 (베이자플로르/Beija-Flor)
  • 도밍고스 두스 안조스 (세라 두 우만/Serra do Uman)
  • 에르미니우 샤비에르 (춤비뉴/Chumbinho)
  • 이자이아스 비에이라 (자벨레/Zabélê)
  • 자누아리우 가르시아 레알 (일곱 귀/Seven Ears)
  • 제수이누 알베스 지 멜루 칼라두 (제수이누 브리양치/Jesuíno Brilhante)
  • 호아킹 마리아누 안토니우 지 세베리아 (안개/Fog)
  • 조제 지 소자 (중위/Lieutenant)
  • 주앙 마리아누 (제비/Swallow)
  • 라우린두 비르골리누 (호스/Hose)
  • 루카스 에방젤리스타 (루카스 다 페이라/Lucas da Feira)
  • 마누엘 바프치스타 지 모라이스 (안토니우 실비노/Antônio Silvino)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카누두스 전쟁(War of Stra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