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이베리아 연합(1580~1640): 포르투갈-스페인 동군연합의 원인과 결과

이베리아 연합(Iberian Union)은 1580년부터 1640년 포르투갈 왕정복고 혁명이 일어나기까지 약 60년간, 포르투갈과 스페인이라는 두 이베리아 반도 국가가 한 명의 군주 아래 통합되었던 시기를 가리킵니다.

원인과 결과 요약

1578년 8월 4일,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벌어진 알카세르 키비르 전투(Battle of Alcácer Quibir)는 수백 년간 포르투갈인의 정신에 깊은 흔적을 남긴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젊은 포르투갈 국왕, '바라던 자' 돈 세바스티앙(Dom Sebastião)을 둘러싼 전설, 세바스티아니즘(Sebastianismo)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 전투에서 국왕이 행방불명되면서 왕위 계승 위기가 발생했고, 이것이 이베리아 두 왕관의 통합을 가능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홀로 남겨진 포르투갈은 합스부르크(Habsburg) 왕조의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Dom Felipe II)의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한편 세바스티앙의 종조부였던 돈 엔히크(Dom Henrique) 추기경이 1580년 적법한 후계자를 남기지 못한 채 사망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당시 가장 가까운 계승자는 스페인의 펠리페 2세였고, 결국 왕위는 그에게 돌아갔습니다. 포르투갈 내에서도 카타리나 데 브라간사(Dona Catarina de Bragança)나 안토니우 드 크라투 수도원장(Dom António, Prior do Crato) 등이 왕위를 주장하며 맞섰지만, 펠리페 2세가 세바스티앙의 적법한 계승자로 인정받았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배경은 16세기 대항해시대 이후 양국이 확보한 광대한 해외 영토였습니다. 당시 유럽 최강의 해양 강국이었던 포르투갈은 1500년 오늘날 브라질에 해당하는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했고, 스페인은 1492년 중앙아메리카에 상륙했습니다. 양국 간의 분쟁을 막기 위해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Treaty of Tordesillas)이 체결되어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정복과 탐사 지역이 구획되었습니다.

이베리아 연합의 종말

흥미롭게도 두 왕관이 통합된 이후에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정한 경계가 더 이상 지켜지지 않았고, 이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이에 새로운 마찰을 낳았습니다. 아울러 네덜란드와 전쟁 중이던 스페인은 아메리카 영토 일부를 노리던 네덜란드의 공격에 시달렸고, 그 여파로 1624년부터 브라질 북동부를 지배하던 설탕 생산과 무역권을 놓고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간에 여러 차례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가 포르투갈 영토에서 최종적으로 축출된 뒤 상황은 반전됩니다. 네덜란드는 안틸레스 제도(중앙아메리카)에서 직접 사탕수수를 재배하여 유럽 시장에 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브라질산 설탕과 안틸레스산 설탕 사이의 이러한 경쟁은 포르투갈의 설탕 시장 독점 체제를 사실상 무너뜨렸고, 포르투갈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이처럼 이베리아 연합의 결과로는 네덜란드의 침입뿐 아니라 프랑스의 브라질 침입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1640년, 포르투갈에서는 왕정복고 혁명(Restoration Coup)이 일어나 브라간사(Bragança) 왕조가 들어섰고, 주앙 4세(D. João IV)가 왕위에 오르면서 포르투갈은 정치적 자주권을 회복했습니다. 이로써 이베리아 연합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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