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브라질 페미니즘의 역사: 19세기 교육권 투쟁부터 21세기까지

브라질의 페미니즘 운동은 19세기 여성 교육권, 참정권, 노예제 폐지를 위한 투쟁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브라질에는 남성과의 권리 평등을 위해 활동하는 다양한 페미니즘 단체들이 있으며, 흑인, 원주민,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여성 등을 위한 특화된 조직들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편 페미니즘에 반대 입장을 취하는 여성 운동도 존재합니다.

기원

19세기 브라질 여성의 처우는 당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노예제에 기반한 브라질 사회에서 흑인 여성은 노예로서 이중의 억압을 받았고, 백인 여성은 가사 노동에만 국한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제국 시기에 여성 교육권이 인정되었는데, 이 분야에서 북리우그란지(포티구아르) 출신 작가 니시아 플로레스타 아우구스타(Nísia Floresta Augusta)는 브라질 페미니즘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그녀는 교사이자 교육자로서 히우그란지두술에 최초의 여학교를 설립했고, 이후 리우데자네이루에서도 학교를 세웠습니다.

영국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의 저작에 영향을 받은 니시아 아우구스타는 여성 문제, 노예제 폐지론, 공화주의에 관한 여러 책과 신문 기고문을 발표했습니다. 1842년의 『내 딸에게 주는 충고』와 1853년의 『인도주의 소책자』는 브라질 최초의 페미니즘 저작으로 꼽힙니다.

미국과 영국에서처럼 참정권 요구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습니다. 치과의사 이자벨 마토스 달톤(Isabel Mattos Dalton)은 자신의 학위 자격을 활용해 히우그란지두술에서 투표권을 행사했는데, 비록 개별적인 사례였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습니다. 또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치키냐 곤자가(Chiquinha Gonzaga)는 작품에 남성 필명을 쓰는 것을 거부하며 당대의 통념에 맞섰습니다.

제1공화국

브라질 페미니즘의 역사: 19세기 교육권 투쟁부터 21세기까지

공화국 선포 이후 브라질의 페미니즘 운동은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새 정부는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았고, 백인 도시 중산층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도 쉽지 않았습니다. 반면 흑인, 원주민, 가난한 백인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언제나 일해야 했습니다.

공화국은 정교분리와 시민혼을 도입했지만 이혼은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1916년 민법은 여성을 아버지나 남편에게 종속된 '무능력자'로 규정했습니다. 기혼 여성은 여행, 상속 재산 수령, 외부 취업, 재산 취득 등에 남편의 허락이 필요했습니다.

브라질에 최초의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저임금으로 생산비 절감에 유리한 여성·아동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늘었습니다. 그리하여 1917년 총파업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들만의 구체적인 요구를 자본가 측에 제기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여성공화당을 창당한 레올린다 피게이레두 달트루(Leolinda Figueiredo Daltro)와 브라질 여성발전연맹을 이끈 베르타 루츠(Bertha Lutz)라는 인물들이 부상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참정권과 남녀평등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바르가스 정부 시기 (1930~1945)

페미니즘 운동의 압력 끝에 브라질 여성은 1932년 참정권을 쟁취했습니다. 그러나 게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가 권력을 공고히 하고 1937년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바르가스 독재 정부는 의회를 폐쇄하고 선거를 중단시켰습니다.

결국 바르가스 정부가 그린 여성상은 간호사, 교사, 비서, 그리고 물론 가정에 헌신하는 아내의 모습이었습니다.

1950년대

민주주의가 회복된 1950년대에는 변호사 로미 마르칭스 메데이루스 다 폰세카(Romy Martins Medeiros da Fonseca)와 오르민다 리베이루 바스투스(Orminda Ribeiro Bastos)가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로미 폰세카는 하원에 브라질 민법상 기혼 여성의 지위에 관한 연구를 요청했습니다. 기혼 여성을 남편의 후견 아래 두는 법에 분노한 두 변호사는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는 새로운 법안을 마련해 1951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큰 반향을 불러일었지만 이 법안은 10년간 의회 절차 속에 묶여 지연되었습니다.

여성 운동의 압력 끝에 국회는 10년 후에야 두 사람이 제안한 변경 사항을 승인했습니다. 1962년 8월 27일 시행된 새 민법은 남편의 아내에 대한 후견권을 폐지했습니다. 이제 여성은 외부 취업, 상속 재산 수령, 여행 등을 남편의 허락 없이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

1960년대는 성 해방, 경구피임약의 등장, 시민권 운동으로 특징지어지는 시기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흑인 여성, 원주민 여성, 성소수자 등 특정 집단의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가 저서 『제2의 성』에서 다룬 젠더와 정체성에 관한 논의가 대표적입니다.

브라질은 대중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시기였고, 페미니즘 단체들은 해외에서 전해지는 새로운 담론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군사 독재는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며 시민들을 강타했습니다.

1970년대

군사 독재 하에서는 어떤 정치적 표현도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군사 독재에 맞서 싸웠고, 상당수가 수감되고 고문을 당하거나 망명을 강요당했습니다. 이들은 평화로운 시위 행진뿐 아니라 아라과이아 게릴라와 같은 무장 투쟁에도 참여했습니다.

가이젤(Geisel) 장군이 추진한 긴장 완화 국면에서는 테레지냐 제르비니(Therezinha Zerbini)를 비롯한 여성들이 사면을 위한 여성 운동을 결성했습니다. 이 운동은 국가안보법에 따라 자녀나 남편이 유배되거나 수감된 어머니들과 아내들을 규합했습니다. 사면법이 제정된 후에도 이 운동은 브라질의 민주화를 위해 계속 투쟁했습니다.

1975년 유엔은 이 해를 '국제 여성의 해'로 선포했습니다. 독재 치하에 살던 브라질에서 이것은 여성들이 모여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명분이 되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제1회 여성 회의가, 상파울루에서는 여성 실태 진단 회의가 열렸고, 이는 브라질 여성개발센터 창설로 이어졌습니다.

1980년대

브라질 페미니즘의 역사: 19세기 교육권 투쟁부터 21세기까지

민주주의가 브라질로 돌아오면서 여성들은 정치에서 더 큰 발언권을 얻었습니다. 1985년에는 여성권리국가평의회(CNDM)가 창설되었습니다. 같은 해 입헌의회 선거에서 여성들은 26석을 차지했고, 여성에게 유리한 법률의 제정을 위해 힘썼습니다. 이들은 '립스틱 로비(lipstick lobby)'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남녀 법적 평등 외에도 출산 휴가가 배우자 휴가보다 길게 보장되었고, 여성 노동 보호 규범을 통한 여성 고용 장려, 여성의 근속 연수 및 연금 납부 기간 단축 등이 헌법에 반영되었습니다.

또한 1985년 8월 6일 상파울루에 가정 폭력 피해 여성 지원과 여성 대상 폭력 사건 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최초의 여성경찰서가 개설되었습니다. 다만 현재 이러한 여성전용 경찰서는 브라질 도시의 7.9%에만 존재합니다.

1990년대

여성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국가의 민주주의가 안정되면서 페미니즘 운동의 목표도 사회 변화에 맞춰 조정되었습니다. 여성들은 공적 삶에의 참여 확대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이른바 '긍정적 차별(positive discrimination)' 법안이 이 방향의 진전이었습니다. 이 법은 정당들이 입법부 선거에서 여성 후보 30% 할당제를 보장하도록 의무화합니다.

21세기

브라질의 페미니즘 운동은 새천년의 요구에 맞춰 성적·인종적 다양성, 모성을 의무로 보는 시각에 대한 문제 제기 등 새로운 주제들을 의제에 추가했습니다. 소셜 미디어와 블로그를 통해 새로운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할 플랫폼을 찾았습니다.

2006년 룰라 정부 시절에는 가정 폭력 사건을 더 엄중히 처벌하는 '마리아 다 페냐 법(Maria da Penha Law)'이 제정되었습니다. 이 법은 여성에 대한 가정 폭력 예방의 큰 진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동시에 페미니즘 운동 내부에서는 여성의 몸, 그리고 사회와 남성, 여성 자신이 그 몸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마르샤 다스 바디아스(Marcha das Vadias)'는 여성의 몸을 항의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로, 참가자들이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시위에 참여합니다.

브라질에서는 오늘날까지 가정 폭력 근절, 정치적 대표성 확대, 자연분만의 권리, 공공장소에서의 수유권, 낙태권,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시키는 문화의 종식을 위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편 특정 페미니즘 흐름의 목표에 동의하지 않는 소규모 여성 그룹들도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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