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브라질 식민지 시대 총독정부(General Government): 세습 카피타니아의 실패와 중앙집권화

총독정부(General Government)는 1548년 포르투갈 왕실의 주앙 3세(Dom João III)가 세습 카피타니아(capitanias hereditárias) 제도의 실패 이후, 브라질 식민지에서 권력을 중앙집권화하고 행정을 안정화하며 식민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한 정치·행정 조치였습니다.

역사적 배경 한눈에 보기

1500년 포르투갈인이 브라질에 도착하면서 식민지(브라질)와 본국(포르투갈) 사이의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주된 목표는 15세기부터 대양을 건너온 유럽의 해양 확장을 통해 소위 '신세계'라고 불린 땅을 정복하고 탐험하는 것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은 해상 상업 확장의 선구국으로, 15~16세기 군사적·경제적 강국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의 또 다른 나라인 스페인 역시 새로운 땅을 찾고 있었고,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이후 두 나라 사이의 지배 욕구와 갈등은 날로 심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교황 칙서 인터 코테라(Bull Inter Coetera)와 토르데시야스 조약(Treaty of Tordesillas) 같은 협약이 체결되어,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각각 탐험·정복할 영역을 우호적으로 분할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식민지 이전 시기(1500~1530)에 포르투갈 왕실은 소위 '착취 식민지' 방식에 따라 땅을 개척하고 파우브라질(pau-brasil, 브라질목) 등 부를 본국으로 운송하는 일에 더 큰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유럽 세력이 땅을 침범하려 하면서 영토 상실을 우려한 포르투갈은 전략을 수정하여, 1530년부터 외국의 침입을 막고 해당 지역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정착 식민지' 방식으로 사람을 정주시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세습 카피타니아가 만들어졌지만 전반적으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곧 총독이 지휘하는 총독정부 체제가 제안되었습니다. 총독은 막강한 권한을 가졌으며, 다양한 업무를 분담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 직책들이 신설되었습니다. 우비도르마조르(ouvidor-mor, 사법 담당), 프로베이도르모르(provedor-mor, 재정 담당), 카피탕모르(capitão-mor, 행정 조직 및 군사 방어 담당) 등이 그 예입니다.

국왕이 임명한 총독(governador-geral)은 엥게뉴(설탕 공장) 건설, 토지의 관리와 보호, 원주민의 사회 편입 등 식민지 경제 발전 전반을 책임졌습니다.

초대 총독 세 명

브라질 식민지를 통치한 최초의 세 총독은 토메 데 수자(Tomé de Souza, 1549~1553), 두아르트 다 코스타(Duarte da Costa, 1553~1558), 멤 드 사(Mem de Sá, 1558~1572)입니다. 토메 데 수자의 통치는 브라질 땅에서 포르투갈 왕실의 지배를 재정립하는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두아르트 다 코스타는 원주민들과 여러 차례 충돌을 빚었고, 반면 멤 드 사는 인디오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여 이들을 프랑스 침략자와 싸우는 무력으로 활용하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멤 드 사가 사망한 1572년 이후 포르투갈은 브라질을 북부(살바도르)와 남부(리우데자네이루) 두 개의 정부 구역으로 나누어 통치했으며, 총독정부는 1808년 포르투갈 왕실이 브라질에 도착하면서 폐지되었습니다. 총독정부 체제가 브라질 내 포르투갈 지배를 공고히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더 읽어보기: 브라질 식민지 시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토르데시야스 조약

토메 데 수자(Tomé de Sousa)

토메 데 수자(1503~1579)는 1549년부터 1553년까지 브라질의 초대 총독이었습니다. 그는 1549년 3월 29일 약 1,000명의 부하와 함께 브라질에 상륙했으며, 이들 중에는 마누엘 다 노브레가 신부(Father Manuel da Nóbrega)를 비롯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예수회의 브라질에서의 임무는 현지 인디오들을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브라질 초대 총독으로서 그는 주앙 3세의 명에 따라 살바도르 시를 건설했습니다. 당시 이 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리기 위해 '상살바도르 다 바이아 데 토두스 오스 산투스'(São Salvador da Bahia de Todos os Santos, 옛 바이아 데 토두스 오스 산투스 카피타니아, 오늘날 바이아 주)라는 이름으로 세워졌습니다. 이곳은 1549년부터 1763년까지 브라질의 첫 수도이자 포르투갈 식민 행정(총독정부와 부왕령)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세습 카피타니아(Capitanias Hereditárias)

총독정부 시행 이전의 세습 카피타니아는 브라질 땅을 15개의 세로 띠로 나누어 국왕이 귀족들에게 하사하고, 각 지역의 식민지 행정과 정착을 맡긴 제도였습니다. 그중 단 두 곳(페르남부쿠와 상비센트)만이 사탕수수 엥게뉴를 중심으로 성공했지만, 포르투갈 왕실은 권력을 중앙집권화하기로 결정하고 기존 카피타니아 제도와 병행하여 총독정부를 실시했습니다.

더 읽어보기: 세습 카피타니아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