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주의 혁명이란?
연방주의 혁명(1893~1895)은 브라질 역사에서 '검의 공화국(República da Espada)'이라 불리던 군정 시기, 즉 플로리아누 페이소투(Floriano Peixoto) 정부 하에서 리우그란지두술(Rio Grande do Sul) 주에서 벌어진 내전입니다. 이 전쟁은 연방주의파(마라가토/Maragatos)와 공화파(피쿠페/Pica-paus, '딱따구리') 사이에 벌어졌으며, 브라질 남부에서 일어난 가장 격렬하고 유혈이 낭자한 봉기 중 하나로 꼽힙니다.
혁명은 1893년 2월부터 1895년 8월까지 약 2년 반에 걸쳐 지속되었습니다.
발단은 전략적 요충지였던 바제(Bagé) 시를 마라가토 세력이 장악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바제를 거점으로 삼은 운동은 곧 인접한 산타카타리나(Santa Catarina)와 파라나(Paraná) 주로 확산되었습니다.
혁명은 1895년 8월, '평화의 조정자'라는 별명을 가진 프루덴치 드 모라이스(Prudente de Moraes) 정부 시기에 끝을 맺었습니다.
프루덴치 드 모라이스는 1895년 8월 23일 펠로타스(Pelotas) 시에서 마라가토 진영과 강화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조약으로 마라가토 세력의 패배가 공식적으로 확정되었고, 관련자들에 대한 사면이 이루어졌습니다.
연방주의파와 공화파의 대립
연방주의파는 공화파에게 '마라가토(Maragato)'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마라가토'는 원래 스페인 레온(León) 주의 마라가토리아(Maragataria) 지역 출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우루과이에서 스페인계 이민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습니다.
마라가토들은 1892년에 창당된 리우그란지두술 연방주의당 소속이었습니다. 그들은 데오도로 다 푼세카의 사임 이후 플로리아누 페이소투가 대통령직을 계승한 것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중앙집권적 대통령제에도 반대 입장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공화파 출신 주지사 줄리우 드 카스틸류스(Júlio de Castilhos)의 퇴진을 요구했고, 무엇보다 권력 분권화를 핵심으로 하는 연방주의 정부 수립을 열망했습니다. 이들의 지도자는 정치적 지도자 가스파르 다 실베이라 마르칭스(Gaspar da Silveira Martins, 1835~1901)와 군사적 지도자 구메르싱두 사라이바(Gumercindo Saraiva, 1852~1894)였습니다.
한편 공화파 또는 '피쿠페(Pica-pau, 딱따구리)'라 불린 이들은 파란색 군복과 빨간 모자로 이루어진 복장이 딱따구리를 연상시켜 붙은 별명입니다. 이들은 '레갈리스타(Legalistas, 합법주의파)', '치망구(Chimangos, 리우그란지두술의 새 이름)', '카스틸히스타(Castilhistas, 지도자 카스틸류스에서 유래)'로도 불렸으며, 플로리아누 페이소투 대통령 편에 섰습니다.
피쿠페들은 1889년 수립된 공화정의 공고화, 권력의 중앙집권화, 국가의 근대화를 신념으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리우그란덴시 공화당(PRR)에 결집했으며, 실증주의를 신봉하던 언론인이자 정치가, 당시 주지사였던 줄리우 드 카스틸류스(Júlio de Castilhos, 1860~1903)가 핵심 지도자였습니다.
라파 포위전(Cerco da Lapa)
연방주의 혁명에서 가장 참혹하고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는 파라나 주에서 벌어진 '라파 포위전'입니다.
1894년 1월 14일부터 2월 11일까지 무려 26일 동안, 실베이라 마르칭스가 이끄는 마라가토 세력과 고메스 카르네이루(Gomes Carneiro) 대령이 지휘하는 피쿠페 세력이 격돌했습니다.
전투는 마라가토들이 파라나 주를 침공하면서 시작되었고, 이들은 잠시 주도 쿠리티바(Curitiba)를 점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상파울루에서 공화군 증원 부대가 도착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고, 마라가토들은 큰 피해를 입고 패퇴했습니다.
해군 반란과의 연계
같은 시기, 당시 브라질의 수도였던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또 다른 갈등인 '해군 반란(Revolta da Armada)'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플로리아누 페이소투 정부에 맞서 일어선 해군과, 이 대통령을 지지한 육군 사이의 권력 대립이었습니다.
해군 반란의 일부 세력은 남부에서 이미 헤스테루(Desterro, 현 플로리아노폴리스) 시를 장악한 연방주의파와 동맹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플로리아누 페이소투는 1894년 두 반란을 모두 강경하게 진압했으며, 이러한 무자비한 탄압 덕분에 '철의 원수(Marechal de Ferro)'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알아두면 좋은 사실들
- 연방주의 혁명은 '참수 혁명'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무기와 탄약을 아끼기 위해 포로를 참수하는 방식이 흔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연방주의파와 공화파를 합쳐 약 2,000명이 참수당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 당시 인구 약 100만 명 규모였던 지역에서 이 혁명으로 피쿠페와 마라가토 진영을 막론하고 약 12,0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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