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넨티스모(Tenentismo)는 1920년대 초반 브라질에서 나타난 사회정치적 현상입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병영들을 거점으로 정치·군사 운동이 힘을 얻었으며, 브라질 육군의 하급·중급 계급에 속한 젊은 장교들이 주도한 일련의 반란이 그 핵심이었습니다.
당시 브라질의 정치 상황에 깊이 불만을 느꼈던 이들은 국가를 지배하고 구공화국(República Velha) 전통의 근본적인 기둥이 되어 있던 농촌 과두세력(올리가르히)을 타도함으로써 정치 구조를 뒤바꾸려 했습니다. 대표적인 테넨티스타 운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 프레스테스 종주열(Coluna Prestes)
- 1924년 혁명
- 마나우스 코뮌
- 코파카바나 요새 18인 반란(Revolta dos 18 do Forte de Copacabana)
테넨티스모의 원인과 요구
중위 운동(Lieutenant Movement)이라고도 불린 테넨티스모는 매우 명확한 요구 사항을 가지고 있었으며, 비록 늦게나마 그 주장들은 실현되었습니다. 우선 눈여겨볼 것은 도시화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사회적 요구의 영향입니다. 도시화는 자유공화주의 성향의 정치 경향, 그리고 아나키즘과 공산주의 같은 이념에 유리하게 작용했고, 자연스럽게 테넨티스모 군인들 역시 이러한 경향과 이념으로 기울게 되었습니다.
정치·사회 개혁을 내걸었지만, 테넨티스모의 지도자들은 실제로는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 인물들이었습니다. 요컨대 그들은 코로넬리즘(coronelismo) 특유의 부패로 물든 브라질의 정치 과정과 행태를 도덕적으로 정화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행정부의 권한 제한은 물론, 입법부 의석 점유자들에 대한 견제도 추진했습니다.
한편 그들은 언론의 자유를 지지했으며, 지방 유력자에게 종속된 '굴레 투표(voto de cabresto)'의 폐지와 비밀투표제 도입을 주장했습니다. 또한 공교육 확립을 핵심 과제로 삼았고, 여성 참정권에도 찬성했습니다.
테넨티스모의 전개
테넨티스트 운동은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브라질 정치의 근간을 크게 흔들며 권력에 대한 반발의 불씨를 끊임없이 지폈습니다. 이 흐름은 결국 1964년 군부 집권으로 이어지며 국가의 권력 구조를 일대전환시켰습니다.
무장한 민간인과 군인으로 구성된 프레스테스 종주열(Prestes Column)은 루이스 카를루스 프레스테스(Luís Carlos Prestes)의 지휘 아래 브라질 영토 약 2만 4천 km를 종단하며 정부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듭했습니다.
한편 운동의 다른 축은 1929년 자유동맹(Aliança Liberal)에 참여했고, 게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의 승리와 취임 이후 여러 주의 개입관(interventor)으로 임명되며 국가 정치 무대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37년을 기점으로 운동은 분열됩니다. 한 그룹은 루이스 카를루스 프레스테스를 따랐고, 다른 그룹은 게툴리우 바르가스와 결별하여 그의 독재 정권에 맞서는 야당 세력이 되었습니다. 결국 1945년, 반바르가스파 테넨티스모는 독재자 하야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며 브라질에 새로운 정치 체제를 수립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들
- 1930년 혁명 이후 브라질 대부분의 주 정부는 중위 출신 인사들이 개입관으로 임명되며 운영되었습니다.
- 1964년 군사 쿠데타의 거의 모든 지휘관들은 테넨티스트 운동 출신이었습니다. 코데이루 드 파리아스, 에르네스투 가이젤, 에두아르두 고메스, 카스텔루 브랑쿠, 주라시 마갈량이스, 주아레스 타보라, 메디시 등이 대표적입니다.
- 테넨티스모는 그 구성원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 명맥을 유지했으며, 그 시기는 197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