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인은 여러 민족이 서로 어우러지며 탄생한 존재입니다. 오늘날 브라질 사회를 이루는 핵심 축은 원주민, 포르투갈인, 아프리카인 세 집단입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대거 유입된 유럽과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 역시 브라질 민족의 형성에 중요한 한 획을 그었습니다. 이들의 언어, 종교, 음식, 예술이 뒤섞이면서 지금의 독특한 브라질 문화가 완성되었습니다.
원주민과 브라질의 형성
오늘날 브라질이라 불리는 땅에는 약 1만 2천 년 전부터 인류가 거주해 온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특히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브라질 전역에 걸쳐 살았습니다. 단, 이들을 하나의 단일 민족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각기 고유한 언어와 관습을 지닌 수많은 부족이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중 가장 규모가 컸던 민족 집단은 투피과라니(Tupi-Guarani)였으며, 포르투갈인들이 최초로 접촉한 상대 역시 바로 이들이었습니다.
투피족은 자연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산과 해변, 강마다 이름을 붙였고, 어떤 약초가 유익하거나 해로운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지식은 포르투갈인들에게 전수되었습니다.
원주민 문화가 브라질에 남긴 가장 분명한 흔적 중 하나는 고유명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타포아(Itapoã), 피라치닝가(Piratininga), 파라(Pará) 등 수많은 지명이 원주민 언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음식 문화에서도 원주민의 영향은 두드러집니다. 원주민들이 일찍부터 재배해 온 카사바(마니옥)는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브라질 요리에 빠지지 않는 필수 재료로 자리 잡았습니다.

유럽인과 브라질인의 기원
포르투갈인
브라질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 집단은 포르투갈인이었습니다. 이들은 귀금속과 땅을 얻고, 기독교를 확장하며, 전투에서 영광을 쟁취하고자 '대양'을 건넜습니다. 신대륙으로 향할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포르투갈인들은 원주민의 관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경제·종교 질서를 들여왔습니다. 경제의 경우를 보면, 생계를 위한 재배에서 벗어나 유럽 시장에 판매할 수 있는 대규모 농산물 생산이 필요해졌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원주민에게 강요했습니다. 종교와 함께 축제, 언어(라틴어와 포르투갈어), 새로운 삶의 철학도 전해졌습니다. 다신교에서 유일신信仰으로, 구전 전통에서 경전과 성직자 계급 체제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종교 외에도 포르투갈어는 새 영토의 공용어가 되었고, 정치 조직과 자본주의 경제 체계 역시 포르투갈식으로 정착되었습니다.
네덜란드인
식민지 시기에는 네덜란드인의 영향, 특히 페르남부쿠 지역에서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네덜란드인의 도래는 곧 칼뱅주의라는 새로운 종교의 등장을 의미했습니다. 초기에는 가톨릭 성당이 파괴되는 등 종교적 갈등이 여러 차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바타비아인'이라고도 불린 네덜란드인들은 포르투갈-스페인 연합 함대에 의해 축출되기까지 24년간 브라질에 머물렀습니다.
브라질 형성에 기여한 아프리카인들
아프리카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노예로 부려지기 위해 끌려왔습니다.
그러나 개개인은 저마다 자신의 언어와 신앙, 숙련된 기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식은 그들이 일했던 농장은 물론, 자유의 공간이었던 킬롬부(quilombo)에서도 널리 퍼졌습니다.
브라질 노예제의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인들은 콩과 오크라 같은 식재료를 브라질 음식에 소개했습니다. 음악에서 그들의 영향은 브라질 대중음악 특유의 리듬감과 싱커페이션(syncope)으로 이어졌습니다.
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허리를 움직이는 독특한 동작은 아프리카에서 물려받은 것으로, 막시셰(maxixe)와 삼바 같은 무수한 춤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요루바(Yoruba)와 제제(Jeje) 민족을 비롯한 아프리카인들은 오리샤(orixás)를 섬기는 종교를 가져왔고, 이것이 기독교 신앙과 융합되어 캉돔블레(Candomblé) 테헤이루(terreiro)가 탄생했으며, 이후 브라질에서 움반다(Umbanda)로 발전했습니다.
더불어 킬롬보(quilombo), 말림본두(marimbondo), 몰레케(moleque), 파로파(farofa), 코치샤르(cochichar), 키투테(quitute) 등 수많은 아프리카 어휘가 브라질 포르투갈어에 흡수되었습니다.

19~20세기 브라질로 향한 유럽 이민
19세기, 포르투갈 왕실이 브라질로 이주한 이후 브라질의 항구는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을 위해 개방되었습니다. 동시에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어떤 국적의 사람이든 브라질에 정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탈리아인, 독일인, 스위스인, 폴란드인, 스페인인, 그리고 다양한 배경의 아랍인들이 파도처럼 브라질로 밀려왔습니다.
각 이민 물결은 저마다의 문화와 풍습을 브라질에 더했습니다. 아랍계 이민자들은 키베(kibbeh)와 에스피라(esfirra) 같은 요리를, 이탈리아인들은 파스타와 미트볼을 소개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편 20세기 초에는 양국 정부의 주도로 일본인 이민이 활발해졌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일본계 후손이 거주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브라질의 혼혈(메스티사주)
서로 다른 인종 집단 간의 결합은 유전적으로 완전한 원주민, 백인, 흑인 어느 하나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개인들을 낳았습니다.
이 현상을 '혼혈(miscegenation)', 즉 메스티사주라고 부르며, 브라질 사회 곳곳에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당시 사회가 피부색을 기준으로 운영되었던 만큼, 새로운 피부 톤에는 고유한 명칭이 붙여졌습니다.
대표적인 명칭들을 살펴보겠습니다.
| 명칭 | 기원 |
|---|---|
| 마멜루코(Mameluco), 카보클로(caboclo), 카이사라(caiçara) |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 (구릿빛 피부가 이집트의 맘루크와 닮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 |
| 쿠리보카(Curiboca) | 원주민과 마멜루코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
| 물라토(Mulato) |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
| 모레노(Moreno) | 물라토와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
| 카푸조(Cafuzo) | 흑인과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
| 카브라(Cabra) | 흑인과 물라토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
| 크리올루(Crioulo) | 흑인 부모 사이에서 브라질 땅에 태어난 자녀 |
이처럼 브라질인은 문화와 종교는 물론 유전적으로도 하나의 거대한 혼합체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었으며, 대표적인 저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 질베르투 프레이레(Gilberto Freyre), 『대저택과 노예숙소(Casa-grande e senzala)』
- 세르지우 부아르키 드 올란다(Sérgio Buarque de Holanda), 『브라질의 뿌리(Raízes do Brasil)』
- 다르시 리베이루(Darcy Ribeiro), 『브라질 민족의 형성(Formação do Povo Brasileiro)』
- 올리베이라 비아나(Oliveira Viana), 『브라질 남부의 인구(Populações Meridionais do Brasil)』
- 에우클리데스 다 쿠냐(Euclides da Cunha), 『황야(Os Sertões)』
- 파울루 프라두(Paulo Prado), 『브라질 초상(Retrato do Brasil)』
- 플로레스탄 페르난데스(Florestan Fernandes), 『브라질의 몸과 영혼(Corpo e Alma do Bra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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