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마우아 남작: 브라질 근대 자본주의를 연 개척자 이리네우 에반젤리스타 지 소자

마우아 남작(Barão de Mauá)으로 널리 알려진 이리네우 에반젤리스타 지 소자(Irineu Evangelista de Sousa, 1813~1889)는 브라질 역사에서 가장 걸출한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상인, 선주, 산업가, 은행가, 외교관으로 폭넓게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노예제와 노예 무역에 맞선 대표적인 반대파였으며, 브라질 경제 자유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산업가와 은행가의 일을 병행하던 그는 40세에 이미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 반열에 올랐습니다. 재정과 인적 자원을 관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그는 회사 이익을 직원들과 나누고, 임금 정책을 인력에 대한 투자로 여기는 선구적인 경영 철학을 실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생애와 주요 활동

어린 시절과 성장

이리네우 에반젤리스타 지 소자는 1813년 12월 28일, 목축 지역이었던 히우그란지두술주의 아호이우그란지(Arroio Grande)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교구 설립자 마누엘 제로니무 지 소자(Manuel Jerônimo de Sousa)의 손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덟 살 때 삼촌 마누엘 조제 지 카르발류(Manuel José de Carvalho)에게 맡겨져 자랐습니다.

열한 살이 되던 1824년, 그는 상인 안토니우 페레이라 지 알메이다(Antônio Pereira de Almeida) 밑에서 장부 기입 담당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두각을 나타낸 그는 1830년 스코틀랜드 출신 상인 리처드 캐러더스(Richard Carruthers)의 수입 상사에 들어갔고, 사장은 그를 견습생으로 받아들여 영어와 회계를 가르쳤습니다. 젊은 이리네우는 곧 지배인이자 동업자로 승진했으며, 잉글랜드 요크 의례(York Rite) 프리메이슨에도 입문하게 됩니다.

1841년에는 조카딸인 마리아 호아키나 지 소자 마샤두(Maria Joaquina de Sousa Machado)와 결혼하여 열여덟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근친혼의 영향으로 자녀 대부분이 요절했다고 전해집니다.

산업가로서의 첫발

잉글랜드를 방문해 그곳의 자본주의 모델을 직접 목격한 뒤, 그는 산업가가 되어 브라질을 근대화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첫 사업은 1845년 브라질 제국 정부로부터 리우데자네이루 시의 마라카냐강(Maracanã) 상수도용 철관 공급권을 따낸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니테로이의 폰타다아레이아(Ponta da Areia) 주조소를 인수해 조선소로 탈바꿈시켰으나, 1860년 선박 수입 관세가 면제되면서 이 사업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는 어느 정도 1850년 라플라타 분쟁 당시 제국의 적들에게 자금을 지원한 대가로, 브라질 제국의 눈밖에 나게 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전성기: 사업 확장과 남작 작위

이후 마우아의 기업 활동은 큰 수익을 거두었습니다. 1852년에는 아마조나스 항해회사(Companhia de Navegação do Amazonas)와 마우아·맥그리거 은행(Banco Mauá, Mac Gregor & Cia.)을 설립했고, 1854년에는 리우데자네이루 시 가스등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1866년 아마조나스강의 자유 항해가 모든 우호국에 개방되면서 그의 독점 사업은 위기를 맞았고, 이것이 몰락의 시작이 됩니다. 한편 1854년, 구아나바라만의 마우아 항과 에스트렐라 산맥(Serra da Estrela)의 프라고주(Fragoso) 역 사이 14킬로미터 철도를 건설한 공로로 이리네우는 '마우아 남작' 작위를 받게 됩니다.

또 다른 업적으로는 1874년 황제에게 바치는 선물 형태로 해저 케이블을 설치한 일이 꼽힙니다. 정치 분야에서도 그는 히우그란지두술주 대표 의원으로 1856년, 1859~1860년, 1861~1864년, 1864~1866년, 1872~1875년에 걸쳐 활동했으며, 1873년 사임했습니다.

몰락과 말년

1878년 카사 마우아 & Cia.(Casa Mauá & Cia.)가 문을 닫으면서 파산을 맞았지만, 이리네우는 명예를 지키며 모든 빚을 갚았습니다. 이후 페트로폴리스의 저택에서 품위 있는 말년을 보내다가 1889년 10월 2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우아 남작이 살았던 시대

이리네우 에반젤리스타 지 소자는 브라질에서 자유주의 세력과 보호무역주의 세력이 충돌하던 시대를 살았습니다. '제국 대 자본', '노예제 대 임금 노동'이라는 대립 구도가 그 시대를 특징지었습니다. 그의 비전 있는 구상은 제국의 정치 엘리트들에게 도전이자 위협이었고, 이 때문에 자작은 기존 경제·사회 질서를 지키려는 보수 세력의 끊임없는 모함과 체계적인 방해 공작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파산은 고의로 조성된 것으로, 정부 융자만 허용되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들

  • 1860년, 이리네우는 브라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프랑스, 미국 등 6개국에 걸쳐 17개 회사를 통제하고 있었으며, 그의 재산은 약 11만 5천 콩투지헤이스(contos de réis)로 추산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브라질 제국 전체 예산인 9만 7천 콩투지헤이스보다 많은 금액이었습니다. 게다가 국내 상위 10대 기업 중 8개가 그의 소유였습니다.
  • 그는 파로우필랴 혁명(Farroupilha Revolution)에 연루된 고향 사람들이 리우데자네이루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