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에밀리우 메디치: 생애와 집권기

에밀리우 가라스타주 메디치(Emílio Garrastazu Médici)는 브라질 공화국 제28대 대통령으로, 1969년 10월 30일부터 1974년 3월 15일까지 국가를 통치했습니다.

메디치 정부는 군사 독재 정권 시절 가장 억압적인 정부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되었으며, '납의 시대(Anos de Chumbo)'라고 불렸습니다.

그의 임기는 억압의 강화와 경제 성장이라는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진행된 시기였으며, 후자는 '경제 기적(Milagre Econômico)'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디치 정부

에밀리우 메디치: 생애와 집권기

메디치 정부는 코스타 이 실바(Costa e Silva) 정부의 뒤를 이어 출범했습니다. 신임 대통령의 첫 번째 조치 중 하나는 제5차 제도법(AI-5)을 브라질 헌법에 편입한 것이었습니다.

AI-5는 노조 선거에서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정지시키고, 정치 활동과 시위를 제한하며, 시민에 대한 보호관찰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메디치 정부 시기에는 검열과 정치적 탄압이 만연했으며, 상파울루 주 리베이라 지역과 파라 주의 아라과이아 게릴라 등 농촌 지역 게릴라 활동이 이 시기의 특징이었습니다.

도시 지역에서는 은행 강도 사건과 항공기 납치 사건이 증가하면서 군사 정권에 대한 저항이 드러났습니다.

미국 외교관 찰스 엘브릭 납치 사건

1969년 미국 대사 찰스 버크 엘브릭(Charles Burke Elbrick) 납치 사건으로 정치적 긴장이 한층 고조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브라질에서 최초의 정치적 목적 납치 사건으로 간주됩니다.

범인은 MR8(10월 8일 혁명운동, 구 DI-GB·구아나바라 대학 반체제 그룹) 소속 인물들로, ALN(민족해방행동)과 함께 행동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대사를 15명의 정치범과 맞바꾸고, 군사 정권에 의한 억압 심화와 자유 제한에 반대하는 선언문을 발표하는 것이었습니다.

혁명 활동에 대한 대응으로 정부는 탄압을 더욱 강화했으며, 독재 정권 하에서 사망자 수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에도 의회는 문을 닫지 않았고, 어떤 정치인도 직무가 박탈되지 않았습니다.

메디치 정부와 경제 기적

에밀리우 메디치: 생애와 집권기

'경제 기적'은 이 시기 브라질 경제의 고도 성장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마치 계획 없이 일어난 것 같은 경제적 번영의 환희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이 성장은 미주개발은행(IDB)으로부터의 대규모 차입에 기반을 두었으며, 그 결과 브라질의 대외 부채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또한 메디치 정부 시기에는 아마존 지역을 개척하고 개발하기 위한 여러 기관이 설립되었습니다. 그중 INCRA(국립 개간·토지개혁연구소)와 롱돈 프로젝트(Rondon Project)가 대표적입니다. 트란스아마조니카 고속도로, 쿠이아바-산타렝 고속도로, 마나우스-포르투벨류 고속도로 건설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습니다.

아울러 라틴아메리카 최대 규모의 일하솔테이라 수력발전소, 파울리냐 정유소(상파울루 주), 리우데자네이루와 니테로이를 연결하는 다리가 준공되었습니다. 이 모든 대형 사업은 발전하고 하나로 결합된 국가라는 이미지를 대내외에 알리는 데 활용되었습니다.

메디치 약력

직업군인 출신인 메디치는 1905년 12월 4일 히우그란지두술 주 바제(Bagé)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이탈리아 이민자였고, 어머니는 바스크 혈통을 지닌 우루과이인이었습니다.

그는 포르투알레그레 육군학교(Colégio Militar de Porto Alegre)와 리우데자네이루의 헤알렝구 육군사관학교(Escola Militar de Realengo)에서 수학했습니다.

1930년 혁명에서는 제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와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또한 1932년에는 상파울루에서 일어난 입헌혁명에 맞서 싸웠으며, 1964년 군사 쿠데타를 지지했습니다.

그는 아구라스네그라스 육군사관학교(Academia Militar das Agulhas Negras) 교장을 비롯해 육군의 최고 요직들을 두루 역임했습니다. 또한 워싱턴 주재 브라질 대사관 무관과 국가정보원(SNI) 원장도 지냈습니다.

코스타 이 실바의 병환으로 군사정부는 메디치를 공화국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습니다. 임기가 끝난 후 메디치는 대통령 자리를 에르네스투 가이젤(Ernesto Geisel)에게 넘겼습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메디치는 공적 생활에서 은퇴했으며, 1985년 10월 9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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