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은 어떻게 유명해졌을까? 빅스버그와 채터누가의 승리

많은 사람들이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 Grant) 장군이 1861년부터 1862년까지의 겨울 동안 명성을 얻었다고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랜트가 남북전쟁의 중심 인물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1863년, 즉 빅스버그 전역(Vicksburg Campaign)과 채터누가 전투(Battle of Chattanooga)에서 거둔 결정적인 승리 덕분입니다.

1861~62년 겨울, 아직 무명의 지휘관

남북전쟁 발발 당시 그랜트는 일리노이주 카이로(Cairo) 지역을 담당하는 비교적 무명의 북군 여단장에 불과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주로 신병 훈련과 미시시피 강 방어 준비에 몰두했으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다만 1862년 2월 헨리 요새(Fort Henry)와 도넬슨 요새(Fort Donelson)를 함락시키면서 '무조건 항복(Unconditional Surrender)' 그랜트라는 별칭과 함께 첫 번째 주목을 받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초기 성공에 가까웠고, 이후 샤일로 전투(Battle of Shiloh)에서 막대한 사상자를 낸 책임을 두고 비판을 받기도 하는 등 입지는 여전히 불안정했습니다.

1863년, 진정한 영웅으로 떠오르다

그랜트의 명성을 확실히 굳힌 것은 1863년의 두 사건입니다. 첫 번째는 빅스버그 전역입니다. 수개월간의 치열한 작전 끝에 그는 1863년 7월 4일 빅스버그를 함락시켜 미시시피 강 전체를 북군의 통제 하에 두었고, 남부 연합을 동서로 분단하는 결정적 전과를 올렸습니다.

두 번째는 같은 해 11월의 채터누가 전투입니다. 포위당해 있던 북군을 구원하고 미셔너리 능선(Missionary Ridge)과 룩아웃 마운틴(Lookout Mountain)을 탈환하며 테네시 전선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영웅에서 총사령관으로

이러한 연속된 승리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깊은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되었고, 1864년 3월 그랜트는 북군 전체의 총사령관(General-in-Chief)으로 임명됩니다. 결국 그가 '유명해진' 진짜 순간은 1861~62년의 겨울이 아니라, 빅스버그와 채터누가에서 승리를 거두던 1863년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