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리는 미국 역사에서 노예제가 합법적인 주, 즉 노예주로 존재했던 지역입니다. 하지만 동부의 전통적인 노예주들과 비교할 때, 많은 노예 소유자들은 미주리를 하나의 나라 혹은 사회의 중심이 아니라 아직 개척 단계에 있는 변방의 시골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미주리만의 독특한 역사적 성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주리는 원래 영국 식민지가 아니었습니다
미주리가 다른 주들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미국 독립 당시 13개 영국 식민지 출신 주들에는 속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미주리 지역은 원래 프랑스와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루이지애나 영토의 일부였으며,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을 통해 미국에 편입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미주리는 건국 초기부터 동부의 기존 주들과는 다른 서부 변경지역으로 분류되었고, 이러한 위상은 주민들이 국가의 한 부분으로 여겨지면서도 어딘가 '외곽'에 있다는 인식을 낳았습니다.
광활한 변경 개척지로서의 이미지
동부 연안의 오랜 농장 문화에 익숙했던 노예 소유자들에게 미주리는 광활한 평원과 강 유역으로 이루어진 미개척 프런티어였습니다. 버지니아나 사우스캐롤라인처럼 대규모 플랜테이션 경제가 정착된 곳이 아니라, 개척민들이 새로 들어와 밭을 일구고 마을을 세우는 과도기적 농경 사회였기 때문에 '시골', '국경 지대'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미주리 타협과 노예주 지위
1819년 미주리가 주 승격을 신청하면서 노예제 찬반 논쟁이 격화되었고, 그 결과 1820년 체결된 '미주리 타협'에 따라 미주리는 노예주로 연방에 가입하게 됩니다. 이는 북부의 자유주와 남부의 노예주 사이 세력 균형을 맞추기 위한 조치였으며, 미주리가 노예제 문제의 최전선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남북전쟁기의 경계주로서의 위치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미주리는 남부에 가담하지 않고 연방에 잔류한 대표적인 경계주가 되었습니다. 노예주였으면서도 북부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미주리는 남부와 북부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은 애매한 위치를 유지했습니다. 결국 노예 소유자들이 미주리를 시골 혹은 외곽으로 여긴 것은, 이 지역이 영국 식민지 출신의 전통적인 주가 아니라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새로 편입된 변경 개척지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