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훌리오 프레스테스: 취임하지 못한 브라질 대통령의 생애와 유산

줄리우 프레스테스(Júlio Prestes)는 브라질 구공화국 시대(1889~1930)에 워싱턴 루이스 정부 이후 국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 중 한 명입니다.

그러나 그는 게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 정치인이 주도한 1930년 쿠데타로 인해 대통령직에 취임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문학과 법학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으며, 변호사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훌리오 프레스테스: 취임하지 못한 브라질 대통령의 생애와 유산

줄리우 프레스테스의 생애

줄리우 프레스테스 지 알부케르키(Júlio Prestes de Albuquerque)는 1882년 3월 15일 상파울루 내륙 지방의 이타페치닝가(Itapetininga)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페르난두 프레스테스 지 알부케르키 대령으로, 상파울루주의 주지사에 해당하는 직위였던 '상파울루 주 대통령'(1898~1900)을 역임했으며, 어머니는 돈냐 올림피아 지 산타나 프레스테스였습니다. 줄리우는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중요한 정치 경력을 쌓게 됩니다.

그는 고향에서 초등 교육을 마친 뒤 상파울루 시립 체육관에서 중등 교육을 받았습니다. 1906년에는 상파울루 법과대학을 졸업하여 변호사로 활동했고, 이후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알리스 비아나 프레스테스(Alice Viana Prestes)와 결혼하여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는 1946년 2월 9일 상파울루에서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줄리우 프레스테스의 정치 경력

줄리우 프레스테스는 1909년 상파울루 공화당(PRP) 소속으로 상파울루주 의원이 되면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으며, 1923년까지 그 직책을 수행했습니다.

이후 1924년부터 1927년까지 3년간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했습니다. 또한 1927년부터 1930년까지 상파울루주 주지사를 역임했는데, 정확히는 1927년 7월 17일부터 1930년 5월 21일까지 재직했습니다.

1930년, 줄리우 프레스테스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브라질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브라질 역사상 유일하게 취임하지 못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브라질은 '커피 우유 정치(Política do café com leite)'로 알려진 권력 교체 체제가 특징이었습니다. 커피는 파울리스타(상파울루 출신), 우유는 미네이루(미나스제라이스 출신)를 상징하며, 상파울루와 미나스제라이스의 과두정치 세력이 대령(colonel)들의 지원을 바탕으로 번갈아 가며 대통령직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1930년 쿠데타로 인해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프레스테스는 대통령 취임이 저지되었고, 가우초(히우그란지두술 출신) 정치인 게툴리우 바르가스(1882~1954)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줄리우 프레스테스는 1934년까지 유럽에서 망명 생활을 보냈으며, 브라질로 귀환한 후에는 정계를 완전히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거의 10년 후인 1945년, 게툴리우 바르가스가 실각하자 그는 국민민주연합(UDN)을 창당하고 당의 지도자로 활동했으나,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930년 혁명

1930년 3월 1일 자유당의 가우초 정치인 게툴리우 바르가스를 누르고 국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줄리우 프레스테스는 1930년 10월 3일에 시작된 1930년 혁명으로 인해 브라질 공화국 대통령 취임이 저지되었습니다. 이 혁명은 바르가스가 주도하고 조직한 것으로, '커피 우유' 정치 체제에 종지부를 찍은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국가를 통치하던 워싱턴 루이스(1869~1957)는 스스로를 상파울루 사람이라 여겼던 카리오카(리우데자네이루 출신)였는데, 1930년 10월 24일 게툴리우가 이끄는 군사 쿠데타로 실각하면서 구공화국은 막을 내렸습니다.

1929년, 워싱턴 루이스는 줄리우 프레스테스를 후계 대통령으로 지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커피 우유 정치'에 따라 파울리스타와 미네이루가 번갈아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관례를 무시한 것이었기에, 미네이루 세력의 반발을 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리우 프레스테스는 특히 상파울루주에서 압도적인 득표율(약 90%)을 기록하며 다수의 표를 얻었습니다(총 1,091,709표, 게툴리우 바르가스의 742,794표를 크게 앞섬). 그러나 미나스제라이스, 파라이바, 히우그란지두술 주로 구성된 국민해방동맹(ANL)은 개표 과정에서의 선거 부정을 이유로 그의 집권을 저지했습니다.

여기에 1929년 경제 대공황(뉴욕 증권 거래소 붕괴)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확산된 민중의 불만이 겹쳤고, 자유동맹(Liberal Alliance) 부통령 후보 주앙 페소아(João Pessoa)가 브라질 언론인이자 변호사인 주앙 단타스(João Dantas)에게 암살된 사건이 프레스테스를 권력에서 몰아내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1932년 헌법 수호 혁명

게툴리우 바르가스의 쿠데타에 대한 대응으로, 대통령 실각에 불만을 품은 상파울루 시민들은 1932년 혁명, 즉 1932년 입헌 혁명 또는 파울리스타 전쟁으로 알려진 운동을 조직했습니다.

줄리우 프레스테스의 작품

망명 기간 동안 줄리우 프레스테스는 어린 시절부터의 열정이었던 문학에 몰두했습니다. 그는 시를 창작했으며, 그중에서도 「브루투스(Brutus)」와 「기도(Prece)」가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다음은 1932년 포르투갈 망명 기간에 쓴 시 「기도(Prece)」입니다:

베자(Beja)의
은총 성당에는
향수의 성모님이 계시네
그분의 기쁨은 슬픈 기쁨이지만
이제 슬픔은 자애의 원천이 되었네
눈물 한 방울이 미소를 이기고
젊음의 찬란함 속에는
불확실한 황혼의 빛이
그리움을 밝히네
이분은 추방자들의 성인이시라
망명자들의 마음속에서
피어나고 자라나시네
이 성당에서 기도하는 이들에게
향수의 성모님,
포르투갈의 수호성인이시여
고난받는 이들, 애태우는 이들의 여인이시여
사랑하는 이들과 조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들을 지켜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