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00년경 스파르타의 인구, 과연 최대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요. 기원전 400년경 스파르타는 다른 어떤 그리스 도시 국가(폴리스)보다도 인구가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리스 최대 도시 국가는 아테네
고전기 그리스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 국가는 단연 아테네였습니다. 아테네의 총인구는 도시 자체와 아티카 지역 전체를 포함해 약 25만~3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는 강대한 해군력과 방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그리스의 중심 세력으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스파르타의 인구 규모
반면 스파르타의 총인구는 약 8만 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 수치에는 시민 계급인 스파르tiatae(스파르티아테)뿐만 아니라, 자유 신분이지만 시민권이 없던 주변 거주민인 페리오이코이, 그리고 대다수를 차지했던 예속 농노 헤일로타이까지 모두 포함된 것입니다.
특히 순수 스파르타 시민의 수는 기원전 5世纪 내내 감소하는 추세였으며, 기원전 400년경에는 이미 만여 명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시민 인구 감소' 현상은 스파르타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구조적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인구가 적어도 강국이었던 이유
흥미로운 점은,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가 그리스 최강의 육군强国으로 명성을 유지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철저한 군사 훈련을 받는 아고게(Agoge) 교육 제도와 평생에 걸친 군사화된 사회 구조 덕분이었습니다. 즉, 스파르타의 위상은 인구의 양이 아니라 질적으로 정예화된 군사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