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이 점령지에 설립한 유대인 게토는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도시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시기에 폐쇄되었습니다. 이른바 '게토 청산'이라 불리는 이 과정은 대부분 주민들을 절멸 수용소나 강제 수용소로 이송하는 비극적인 방식으로 마무리되었으며, 홀로코스트의 참상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바르샤바 게토 – 1943년 4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는 1943년 4월에 폐쇄되었고, 게토 주민들은 트레블린카 절멸 수용소로 강제 이송되었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는 게토 거주자들이 무장 저항에 나선 '바르샤바 게토 봉기'가 일어나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봉기는 약 한 달간 이어졌지만 결국 나치군에 의해 진압되었고, 살아남은 주민들은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우치 게토 – 1944년 8월
우치(Łódź) 게토는 폴란드 점령지에서 가장 오래 존속한 게토로, 1944년 8월에야 마침내 폐쇄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주민들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 수용소로 이송되었으며, 이들 가운데 생환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크라쿠프 게토 – 1943년 3월
크라쿠프의 게토는 1943년 3월에 청산되었습니다. 주민들은 인근의 플라쇼프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는데, 이 수용소는 훗날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송 과정에서 노약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게토 폐쇄가 남긴 의미
이처럼 게토가 폐쇄된 시기는 도시마다 달랐지만, 그 결과는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수십만 명의 유대인들이 고향에서 끌려가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게토의 역사는 오늘날 홀로코스트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중요한 증거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