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JFK의 최후통첩: 1962년 10월 22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TV로 대국민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쿠바에 소련 미사일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추가 무기 수송을 막기 위해 해군 봉쇄를 실시했습니다. 케네디는 소련에 쿠바의 기존 미사일 시설을 해체하고 제거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2. 소련의 대응: 모스크바는 처음에 케네디의 요구에 조심스럽게 반응했다. 그러나 소련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는 쿠바의 미사일이 터키와 이탈리아에 배치된 미국 미사일에 대한 대응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흐루시초프는 쿠바에서 소련 미사일을 제거하는 대가로 미국 미사일을 제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3. 고조된 긴장감: 양측의 외교교류와 군사준비는 위기를 고조시켰다. 미국은 쿠바에 접근하는 소련 선박에 대해 연중무휴 24시간 감시를 실시했고, 소련은 미국 선박이 쿠바의 이동을 방해하면 전쟁 행위로 간주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4. 미-소 비밀 협상: 그 이면에는 신중한 외교 채널이 열려 있었습니다. 미국과 소련은 유엔 사무총장 우 탄트(U Thant)의 중재로 비밀 협상을 벌였습니다. 이 회담을 통해 양측은 공개적인 갈등을 피하는 체면을 구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5. 흐루시초프의 퇴각: 1962년 10월 28일, 흐루시초프는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터키에서 미국 미사일을 제거하기로 비밀 합의하는 대가로 쿠바에서 소련 미사일을 제거하기로 합의했습니다.
6. 핵 경보: 위기 동안 미국은 높은 수준의 군사 대비태세를 유지해 왔다. 핵무기로 무장한 전략공군사령부(SAC) 폭격기는 핵교전이 일어날 경우 소련을 공격하라는 지시와 함께 상시 공중에 배치됐다.
7. 잘못된 경보: 1962년 10월 27일, 미 해군 비행기는 핵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소련 잠수함에 수심폭탄을 투하했습니다. 또 다른 소련 잠수함이 실수로 미국 군함에 연습용 어뢰를 발사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이와 같은 사건은 의도하지 않은 충돌과 잠재적인 확대 가능성을 강조했습니다.
8. 데프콘 2: 미군은 비상 태세에 돌입했고, 미국의 방어 준비 상태(DEFCON)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준인 데프콘 2(DEFCON 2)로 격상됐다. 이것은 임박한 핵전쟁의 가능성을 반영했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외교적 채널과 긴장 완화 노력을 통해 해결되었지만, 세계는 재앙적인 핵 교환에 아슬아슬하게 가까워졌습니다. 이번 위기는 초강대국 간 긴장 고조를 막기 위해 위기 관리, 명확한 의사소통, 외교적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