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워커(Jonathan Walker, 1799년 7월 1일 ~ 1878년 10월 13일)는 1840년대와 1850년대 보스턴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미국의 농부이자 노예제 폐지론자였습니다.
초년 시절과 경력
워커는 매사추세츠주 노스브룩필드에서 벤저민 워커와 베츠리(결혼 전 성은 페리) 부부의 열한 자녀 중 유일한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의 농장에서 생활했으며, 이후 형제와 손잡고 잡화 상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폐지론 활동
마흔 살이 되던 해, 워커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 온 노예제 폐지 운동에 헌신하기 위해 사업을 접었습니다. 1838년에는 매사추세츠 반노예제 협회(Massachusetts Anti-Slavery Society) 창립 대회에 참석했으며, 1839년부터 1843년까지 이 협회 이사회에서 활동하고, 1843년과 1845년에는 부회장을 맡았으며, 여러 해 동안 집행위원회 위원으로도 봉직했습니다. 또한 1840년 미국 반노예제 협회(American Anti-Slavery Society) 창립 전국 대회의 대표로 참여했고, 이후 그 협회의 부회장으로도 활동했습니다.
도주노예법 반대와 샤드랙 밍킨스 사건
워커는 1850년 도주노예법(Fugitive Slave Act)에 맞서 싸운 저명한 반대자였습니다. 특히 1851년에는 도주 노예 샤드랙 밍킨스(Shadrach Minkins)가 보스턴 법원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운 일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로 인해 체포되어 도주노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리처드 헨리 다나 주니어(Richard Henry Dana Jr.)와 존 파커 헤일(John Parker Hale)의 변호를 받았고, 끝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말년의 삶
재판 이후에도 워커는 폐지 운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탈출하도록 도왔고, 자신의 재판 과정을 담은 책 『샤드랙 밍킨스 탈출을 도운 죄로 기소된 조나단 워커의 재판』을 출판했습니다. 남북전쟁 이후에도 활동을 이어가며, 해방된 노예들에게 원조와 교육을 제공한 미국 자유민 연합 위원회(American Freedmen's Union Commission)의 창립 멤버로 참여했습니다.
깊은 종교적 신념
워커는 독실한 신앙을 지닌 인물이었으며, 그의 폐지론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확고한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평생 감리교 신자였던 그는 1844년부터 1878년까지 웨슬리언 아카데미(현 윌브라험 & 몬슨 아카데미)의 이사회에서 활동했습니다.
죽음과 유산
조나단 워커는 1878년 10월 13일 매사추세츠주 웨스트브룩필드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와 정의를 위해 자신의 안위를 내던진 용감하고 원칙 있는 폐지론자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