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사건은 식민지와 영국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 설탕법(1764):
- 이 법안은 식민지로 수입되는 설탕, 당밀 및 기타 상품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이는 영국 정부가 식민지 주민들의 동의 없이 부과한 최초의 직접세로, 항의와 저항을 촉발시켰습니다.
2. 인지세법(1765):
- 인지법에서는 신문, 법률 문서, 카드 놀이 등 인쇄물에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이 법안은 식민지 주민들을 격분시켰고, "대표 없이 과세는 없다"라는 유명한 슬로건으로 이어졌습니다. 항의와 불매운동이 뒤따랐고, 특히 식민지 저항을 조직한 인지세법 의회가 뒤따랐습니다.
3. 보스턴 대학살(1770):
- 영국군과 식민지 주민들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어 보스턴 대학살이 발생했습니다. 눈덩이를 던지고 모욕을 가하는 식민지 주민들에게 군인들이 총격을 가해 5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은 반영국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식민지 통합을 위한 집결지가 되었습니다.
4. 보스턴 차 사건(1773):
- 영국 동인도 회사에 차 판매 독점권을 부여한 차법에 대응하여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위장한 식민지 주민들은 보스턴 항구에서 영국 선박에 승선하여 342상자의 차를 바다에 버렸습니다. 이러한 반항 행위는 영국과 식민지 사이의 관계를 더욱 긴장시켰습니다.
5. 강압적 행위(1774):
- 참을 수 없는 법(Intolerable Act)으로도 알려진 이 조치는 보스턴 차 사건에 대한 처벌로 영국 의회에서 제정되었습니다. 이 법안은 식민지 자치권을 더욱 제한하여 식민지 주민들 사이에 광범위한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독립을 향한 운동을 가속화했습니다.
6. 퀘벡법(1774):
- 이 법은 여러 식민지가 주장하는 영토를 포함하도록 캐나다의 경계를 확장했습니다. 또한 캐나다에 있는 프랑스 가톨릭 신자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부여하여 식민지의 개신교 정착민들을 화나게 하고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7. 렉싱턴과 콩코드 전투(1775):
- 이 교전은 미국 독립 전쟁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번 전투는 영국 당국이 콩코드에 있는 무기 보관함을 탈취하려다가 발생했습니다. 영국군과 식민지 민병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고, 이로 인해 전쟁이 촉발되었고 영국 통치에 저항하려는 식민지 주민들의 결의가 확고해졌습니다.
특히 이러한 사건은 식민지 주민들 사이에서 분노, 좌절, 자유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들은 공동의 정체성과 목적을 키우는 데 힘을 보탰고, 결국 독립 국가로서 미국이 건국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