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이 학살과 닉슨 행정부의 공식 대응
1968년 3월 베트남 전쟁 중 남베트남 미라이 마을에서 미군 병력이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 수백 명을 학살한 '미라이 학살' 사건은, 1969년 언론에 보도되며 미국 사회에 거대한 충격과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대응을 내놓았습니다.
조사와 징계 조치
닉슨 대통령은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공식 조사를 지시했고, 학살에 연루된 장교들에 대해 일부 징계 절차를 밟도록 했습니다. 실제로 부대를 지휘하던 윌리엄 캘리 중위는 군사법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는 미군 역사상 가장 주목받은 전쟁범죄 재판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공개 성명을 통한 유감 표명
닉슨 대통령은 공식 성명을 통해 학살을 규탄하고 희생자들의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명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차원에 머물렀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충분하지 않았던 대응에 대한 비판
비판자들은 닉슨의 대응이 미흡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베트남 국민에게 직접 사죄하지 않았고, 유사한 만행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제도적 조치를 강구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책임자들을 철저하게 문책하고 처벌하기보다는 사건을 최소화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도 제기되었습니다.
결국 닉슨 행정부의 미라이 학살 대응은 '조사와 성명'이라는 최소한의 조치에 그쳤으며, 군의 구조적 문제와 전쟁범죄 방지 장치 마련에는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전쟁의 도덕적 책임이 개인 병사를 넘어 지도자와 국가 차원에서도 물어야 한다는 논의를 촉발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