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립주의 정책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국제 분쟁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고립주의 외교 노선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독일과 이탈리아 등 파시즘 세력이 부상하고, 특히 일본의 만주 침공 이후 미국의 고립주의는 점차 균열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2. 추축국의 결성과 팽창
1940년 독일, 이탈리아, 일본으로 구성된 추축국이 결성되었고, 이어진 폴란드·프랑스·네덜란드 침공은 미국에 큰 경종을 울렸습니다. 추축국의 '전격전(blitzkrieg)' 전술과 팽창주의 정책은 국제 평화에 중대한 위협이 되었습니다.
3. 경제적 유대 관계
고립주의 노선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추축국과 맞서던 연합국(영국, 프랑스, 이후에는 소련)과 광범위한 무역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현금 구매 운반(Cash-and-Carry)' 방식으로 필수 물자를 공급하며 연합국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4. 무기대여법(Lend-Lease Act)
1941년 미국 의회는 무기대여법을 제정하여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축국과 싸우는 연합국에 무기와 보급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법을 바탕으로 미국은 영국 등 동맹국에 군사 장비를 본격적으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5. 대서양 헌장(Atlantic Charter)
1941년 8월, 루스벨트 대통령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와 회동하여 대서양 헌장을 작성함으로써 추축국의 침략에 맞서는 연합국의 공통된 이상과 목표를 공식화했습니다. 이 문서는 연합국의 행동 원칙을 제시했으며, 전후 세계 질서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6. 진주만 기습
미국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이끈 결정적 사건은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공격으로 다수의 미군 전함, 항공기 및 기타 군사 자산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고,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진주만 기습 직후인 12월 8일 미국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고, 이에 대응하여 독일과 이탈리아도 12월 11일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이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은 태평양과 유럽 양 대륙에서 미국이 온전히 개입하는 세계적 분쟁으로 확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