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프랑스 중세 도시의 형성과 발전: 성벽 안의 삶과 자치

노르만족의 침략과 도시 불안정이 지속되던 시기, 프랑스의 초기 중세 도시는 5,000명을 넘기 힘든 소규모 촌락에 불과했다. 그러나 11세기 이후 평화가 정착되면서 성당과 정기 시장(페어)을 중심으로 도시가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인구가 증가하자 부르주아 계층이 도시 영주에 맞서 권리를 주장하는 '코뮌 운동'이 일어났고, 무력 투쟁이나 금전 보상 끝에 '헌장(Charte)'을 얻어내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명문화했다. 이로써 중세 도시는 하나의 소국가적 성격을 띠며 백년전쟁 전까지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갔다.

고대 도시의 위축과 중세 도시의 태동

서기 1000년 이전, 수세기에 걸친 노르만족의 침공으로 도시와 민중은 크게 위축되었다. 공동체는 몸을 웅크리며 침략자에게 방어하기 유리한 좁은 공간과 결속된 인구를 제공하는 쪽을 택했다. 로마 시대의 도시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거주 밀도는 낮아졌고 정치·경제적 기능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프랑스 중세 도시의 형성과 발전: 성벽 안의 삶과 자치

10세기 말 노르만족의 침입이 끝나자 프랑스 주민들은 소규모 고대 도시 주변으로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도시마다 모습은 달랐지만 모두 주요 교통로의 교차점에 자리 잡았다. 가장 오래된 도시들은 로마 시대 성벽 안쪽에 성채나 봉건 영주의 토성(土城), 혹은 요새화된 수도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반면 새로 생겨난 도시들은 평화와 치안이 확보된 덕분에 육로와 수로의 교차점, 순례길이나 장터의 중간 기착지로 들어섰다.

도시 내부는 좁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며, 인구가 늘자 성벽 밖에도 주거지(포르부르)가 생겼다. 교외 주민들이 보호를 요청하면 새로운 동심원형 성벽이 차례차례 세워졌다. 골목길은 구불구불하여 바람을 막아주었지만, 화재에는 취약했다. 목조 가옥의 윗층을 돌출시켜 짓는 '앙쿠르바슈(encorbellement)' 기법으로 1층은 비와 햇빛을 피하는 통로 구실을 했다.

공공 시설도 차츰 갖춰졌다. 교량과 부두가 수운과 도하를 도왔고, 포장 도로가 깔렸다. 하수 처리는 일부 수로를 이용하는 정도에 그쳐 대부분은 거리에 노천 배수로로 흘렀다.

중세의 건축 자재: 흙벽에서 벽돌과 석재로

가옥의 벽체는 주로 흙과 짚을 섞은 '토르시스(torchis, 코브)'로 쌓고, 목골조로 뼈대를 보강했다. 메로빙거·카롤링거 시대 공공 건축에 쓰이던 벽돌이 12세기부터 건축·장식적 우수성으로 본격적인 자재로 자리 잡았다. 시토회 수도원과 일부 대성당, 성곽, 사보이 백작령 도시들에서 단순한 벽돌 치장 벽면이 유행했다.

프랑스 중세 도시의 형성과 발전: 성벽 안의 삶과 자치

12세기까지 수도원의 기념비적 건축은 석재 채굴과 석조 기술 발전의 핵심 동력이었다.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넘어가며 건축이 복잡해지자, 뤼에(liers, 갈비뼈 장식) 크기를 표준화하고 정밀한 규격을 정할 필요가 생겼다.

고딕 미술의 발달로 대성당 건축이 활발해지자, 석재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앙주와 투렌의 채석장에서 강과 육로로 돌을 실어 날랐다. 성벽과 종루(벨프리) 같은 시립 건축물에도 다량의 석재가 쓰이거나 재사용되었다.

상업의 중심지: 시장과 페어, 길드와 한자

교통 요지에 자리 잡은 도시들이 발달하면서 지역 시장과 광역 페어(정기 대전)에서 무역이 번성했다. 농촌과 수도원의 식량, 장인들이 만든 물품, 먼 곳에서 온 옷감·아마·금세공품·향신료까지 모든 생산물이 거래되었다.

상인들은 장기 체류하며 '길드(gildes)'나 '한자(hanse)'라 불리는 대규모 조직을 결성했다. 구속적인 봉건 제도를 거부한 그들은 '부르주아'라는 신흥 계급의 특권을 보장하는 '자유권(프랑시즈)'을 획득하려 했다. 이 권리와 의무는 지역 영주와 교회 권위가 주민 이름으로 작성한 '코뮌 헌장'에 명시되었으며, 주민들은 '선서 코뮌(communes jurées)'이라는 상호부조 결사체로 뭉쳤다.

헌장은 흔히 도시의 새로운 권력을 상징하는 '종루'에 보관되었다. 이 문서들은 재산과 거래의 안전, 공정한 재판, 시정의 자율적 경제 운용을 보장했다. 헌장 획득에는 민중 봉기와 금전 보상이 뒤섞인 협상이 따랐다.

영주 자신이 세운 '신도시(villes neuves)'나 '자유도시(villes franches)'는 다양한 세금 감면 혜택을 주었지만, 여전히 봉건적 권위 아래 비교적 관대한 헌장의 통제를 받았다.

자치 행정의 작동: 시의회, 시장, 그리고 세금

프랑스 중세 도시의 형성과 발전: 성벽 안의 삶과 자치

코뮌에서 부르주아에게 부여된 권리는 특정 세금 납부, 부르주아로 구성된 특별 법정 설치, 공공 재산·건물의 자치 관리(시장 치안, 성벽 보수, 시장 운영 등)로 나타났다. 공동 경비는 주로 상품 매매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충당했다.

선출직 시의원으로 구성된 '시정부(la municipalité)'는 시장의 권한 아래 놓였다. 그들은 문서에 인장을 찍고, 토지를 매입하며, 주화를 주조할 수 있었다. 상업 편의를 위해 환전소와 대부 업소가 생겼고, 과거 영주나 교회 건물에만 허용되던 석조 주택에 상인들의 계수실(콩투아)이 들어서며 경제적 성공을 과시했다.

유력 가문과 직인 조합: 권력을 둔 투쟁

프랑스 중세 도시의 형성과 발전: 성벽 안의 삶과 자치

도시 재정을 장악한 부르주아는 정치적으로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중에서도 유력 도시 가문 출신이나 경제 활동에 뛰어든 신흥 귀족이 주요 공직을 독점했다. 그들의 권위는 프랑스 북부에서 특히 두드러진 시청사(오텔 드 빌)에 깃들었다.

부르주아의 독점에 맞서 노동자와 장인들은 직업별로 '직인 조합(corporations de métiers)'을 결성했다. 각 조합은 엄격한 위계와 규율 아래 장인(마트르, 공방주), 동료(콩파뇽, 임금 노동자), 견습생(아프랑티)으로 구성되었다.

권력 분점을 요구하며 조합은 유력자들과 격렬히 대립했고, 파업과 지역적·광역적 폭동으로 번지기도 했다. 왕이 중재에 나설 정도였다. 조합이 시정 참여권을 얻어도, 실제 권한은 위계상 최상위인 장인 대표들에게만 위임되었다.

신앙의 중심, 대성당: 영적 권력의 가시적 상징

주교좌 소재지인 '주교 도시'의 심장에 대성당이 서 있다. 기독교 프랑스의 행정 단위는 교구(diocèse)이며, 그 수장은 주교다. 원칙적으로 성직자와 교구민 대표가 선출하지만, 실제로는 군주와 교황이 낙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랑스 중세 도시의 형성과 발전: 성벽 안의 삶과 자치

옛 로마 속주 주요 도시(리옹, 랭스, 보르도 등)에 주교좌를 둔 대주교가 여러 교구를 통괄했다. 종교적 권한을 가진 주교는 파문(엑스코뮈니카시옹)과 금령(앵테르디트)으로 세속 정치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웃 집들을 압도하는 거대한 규모로 주교의 권위를 도시 한가운데 각인시킨 대성당은, 평화 회복과 도시 인구 증가로 신도가 늘어나자 끊임없이 증축되었다. 탑과 궁륭(볼트)은 매번 더 높이 올려졌고, 때로는 붕괴 사고도 일어났다.

고딕 양식은 버팀목(부트레)과 플라잉 버트레스(아르크 부트랑)로 벽체 하중을 분산시켜 스테인드글라스를 벽면 깊숙이 넣을 수 있게 했다. 형형색색의 빛이 중랑(네이브)을 채우고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전했다. 목재와 석조 조각의 풍부하고 신비로운 문양은 현세와 내세에 대한 당대인의 세계관을 생생히 보여준다.

지적 삶의 부활: 수도원 학교에서 대학으로

카롤링거 르네상스 이후 문화 생활은 1000년 전후로 주춤했다가, 11세기 초 수도원 시설에서 다시 활기를 띠었다. 본당·수도원·주교좌 성당 부설 학교에서는 신학을 중심으로 기하학·산수·천문학·음악 같은 기초 학문(칠자유과)을 가르쳤다.

프랑스 중세 도시의 형성과 발전: 성벽 안의 삶과 자치

구두 강의는 12세기 초 피에르 아벨라르가 정립한 변증법 규칙을 따랐다. 어떤 문제든 찬반 논거를 모두 검토한 뒤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다.

수도원·주교 학교가 늘어나고 명성을 얻자 교회는 '총장(샹셀리에)'을 두어 교육을 감독했다. 이들은 주교가 인가한 교육 전문 성직자로 교구 직속이었다. 파리·툴루즈 등 명문 학교들은 13세기 초 볼로냐 등 유럽 여러 도시에서 탄생한 '대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1200년 필리프 2세 오귀스트가 파리의 스승과 학도들에게 특권을 주었고, 123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가 칙서 '학문의 어머니(Parens scientiarum)'로 인준하면서 파리 대학이 공식 출범했다.

참고 문헌

  • Jacques Heers, , Pluriel, 2010.
  • David Rivaud, , Ellipses, 2012.
  • Simone Roux, , Hachette,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