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시속 430km 자기부상열차 '트랜스라피드', 함부르크-베를린 53분의 꿈은 왜 좌절되었나?

빠르게, 더 빠르게 — 트랜스라피드(Transrapid). 1994년 독일 연방 정부는 고속 자기부상열차 건설을 공식 결정했습니다. 마법 같은 열차가 함부르크에서 베를린까지 달리는 꿈이었지만, 2000년 2월 5일 이 초대형 프로젝트는 최종적으로 좌절됩니다.

1990년대 초 함부르크는 여전히 한 가지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도시 안에서 전철을 타고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더 빨리 베를린에 도착하는 것. 계획된 트랜스라피드는 단 53분 만에 한자 도시에서 수도까지 질주할 예정이었습니다. 비교하자면, 블라케네제(Blankenese)에서 포펜뷔텔(Poppenbüttel)까지 S1 노선을 이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56분입니다.

그러나 몇 년 후 계획은 다시 흙속으로 묻혔습니다. 2000년 2월 5일 프로젝트는 공식 종료되었고, 몇 년 뒤 엠스란트(Emsland) 라텐(Lathen)의 트랜스라피드 시험 선로에서는 참극적인 사고가 일어납니다.

1994년 3월, 초고속 열차의 결정

1994년 3월 2일, 꿈이 현실이 되려 했습니다. 연방 내각은 시속 430km로 주행할 수 있는 길이 292km의 고속 자기부상열차 노선 건설을 결정했습니다. 이는 세계 최초로 상용 운행에 들어가는 트랜스라피드가 될 예정이었습니다. 당시까지 엠스란트에는 하나의 시험 순환선만 존재했습니다.

함부르크-베를린 노선 추진의 기반이 된 것은 티센(Thyssen), 지멘스(Siemens), 다임러-벤츠(Daimler-Benz), AEG로 구성된 기업 컨소시엄의 재원 조달 구상이었으며, 운영은 독일철도(DB)가 맡기로 했습니다.

거대 프로젝트에는 막대한 비용이 따랐습니다. 기획자들은 초기에 89억 독일 마르크(약 45억 5천만 유로)를 추정했습니다. 연방 감사원과 연구 기관들이 비용 대비 편익의 불균형을 비판한 금액이기도 합니다.

'말 위의 벌레'에서 '속삭이는 화살'로

그러나 초기에는 다른 것이 더 앞섰습니다. 혁신적인 기술과 옛 동서독 국경을 가로지르는 경로 덕분에 트랜스라피드는 통합의 강력한 상징이자 혁신 독일의 얼굴이 되어야 했습니다. 콘크리트 기둥 위를 달리는 자기부상열차는 초창기 '말 위의 벌레'라는 조롱을 들었지만, 이제는 북부를 누비는 '속삭이는 화살'에 많은 정치인들이 열광했습니다. 제조사들은 함부르크와 베를린 사이를 복선으로 연결해 연간 1,450만 명의 승객을 수송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비용과 수요 예측이 현실과 어긋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예상 가격은 오르고, 승객 수는 줄어들었습니다.

함부르크 중앙역과 무어플리트(Moorfleet)

기획자들의 설계는 점점 구체화되어 갔습니다. 함부르크 트랜스라피드역은 중앙역 남쪽에 들어설 예정이었고, 승강장은 승객이 열차를 편리하게 갈아탈 수 있도록 지역 및 장거리 교통과 같은 높이에 배치될 계획이었습니다. 무어플리트(Moorfleet)에서는 두 번째 역에서 승객이 승하차하게 됩니다.

슈베린까지 시속 430km

계획상 트랜스라피드는 한자 도시에서 곧바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시속 200km로 주행해야 했습니다. 함부르크-오스트 고속도로 분기점에서야 라인베크까지 놀라운 시속 430km로 가속한 뒤, 이 속도를 유지하며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을 통과합니다. 기적의 열차의 다음 정차역은 슈베린(Schwerin)입니다.

초안에 따르면 그곳에서 바로 베를린으로 이어집니다. 함부르크와 마찬가지로 베를린에도 두 개의 역이 계획되었습니다. 하나는 베를린-슈판다우(Berlin-Spandau), 다른 하나는 베스트크로이츠(Westkreuz) 역입니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10분 간격, 평시에는 20분 간격 운행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현실과 어긋난 계획

관계자들은 노선 설계뿐 아니라 '이정표'가 담긴 일정표도 만들었습니다. 1998년 4월 기준으로 함부르크-베를린 자기부상열차 연결선은 늦어도 2005년부터 개통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서류 위의 아름다움이 현실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비판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습니다. 1998년 베를린의 한 주민발의안은 프로젝트 반대 서명 13만 명 이상을 모았습니다. 재원 문제뿐 아니라 예상되는 소음 공해와 환경 문제도 반대자들을 불러모았습니다. 1999년에는 환경단체 BUND가 유럽 집행위원회에 항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럼에도 지지자들은 처음에는 기적의 열차를 붙잡으려 했습니다. 연방 교통부는 비용 절감을 위해 노선을 우선 단선으로 건설할 것을 제안했고, 이 경우 여러 개의 복선 구간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원래 계획된 무정차 직행 노선은 중간 정차 없이는 실현될 수 없었습니다.

개발과 계획에 투입된 수십억 마르크

2000년 초, DB 사장 하르트무트 메돈(Hartmut Mehdorn)마저 자기부상열차 연결선의 수익성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표명하면서, 2000년 2월 5일 최고위급 회의 끝에 함부르크-베를린 노선의 종료가 확정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자기부상열차의 개발과 계획에 독일 납세자들은 이미 23억 5천만 마르크를 부담했습니다. 산업계 역시 추가로 4억 7천만 마르크를 투자한 상태였습니다.

엠스란트 시험선에서만 달리다

새천년을 맞은 트랜스라피드는 북부를 가로지르는 대신, 1980년대 중반부터 그래왔듯 엠스란트 라텐의 32km 시험 순환선만을 달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50만 명의 방문객이 고속 자기부상열차를 체험했습니다. 그러다 2006년 참사가 일어납니다. 배치 담당자가 선로에 두고 간 정비 차량과 충돌한 것입니다. 23명이 목숨을 잃었고, 시험 선로는 5년 후 폐쇄됩니다.

혁신 기술을 이어받은 중국

이후 북부의 트랜스라피드 꿈은 완전히 끝났습니다. 이 기술을 계속 밀어붙인 나라는 중국뿐입니다. 자기부상열차가 상용 운행된 세계 최초의 노선은 상하이에 있습니다. 의외로 이곳에는 독일 북부와 상징적인 인연이 있습니다. 상하이는 함부르크의 자매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노선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2019년 가을 중국 교통부 장관은 트랜스라피드 기술이 2050년까지 교통 계획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2020년에는 남부 광저우와 중부 우한을 잇는 1,000km 구간이 계획에 올랐습니다. 중국이 자체 개발한 열차는 최고 시속 600km에 도달해야 합니다.

지역교통 자기부상열차의 르네상스?

그러나 독일에도 여전히 트랜스라피드 기술을 지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남부 독일의 한 건설 기업가는 르네상스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막스 뵈글(Max Bögl) 그룹은 지역 교통용 자기부상 시스템 개발에 2019년 말까지 이미 3,500만 유로를 투자했습니다. 열차는 5km에서 최대 30km의 거리, 최고 시속 150km를 목표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2012년부터 공장 부지에는 길이 820m의 시험 선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회사는 당시 엠스란트 트랜스라피드 노선 건설에 참여했고, 상하이 트랜스라피드 노선의 공급업체이기도 했습니다. 남부 독일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 투자하며 새로운 자기부상 시스템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