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함부르크 시내를 걷다 보면 인도에 박힌 작은 주철 뚜껑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뚜껑에는 '우체국(Post)'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죠. 도심 한복판에 지하 우체국이 있다는 걸까요? 이 뚜껑들은 함부르크 '대형 공기압 우편관'이 남긴 몇 안 되는 흔적입니다.
많은 함부르크 시민조차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도심 보도밑에는 아직도 운송 관이 묻혀 있으며, 1962년부터 연방우정청(Bundespost)이 이 관을 통해 편지를 실은 캡슐을 우체국 간에 날려 보냈습니다. 1960년 9월 13일, 이 야심찬 프로젝트의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한자 도시 함부르크에서는 세계에 유례없는 시스템이 시험되었고, 훗날 독일 내 인구 10만 명 이상의 모든 도시로 확산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글: 마르크 올리버 레어만(Marc-Oliver Rehrmann), NDR.de
필요가 낳은 발상
함부르크의 대형 공기압 우편관은 필요에서 탄생했습니다. 연방우정청은 매일 도심에서 수십만 통에 달하는 편지를 어떻게 운송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1950년대 말 연방우정부의 판단은 이랬습니다. "좁은 거리와 끝없는 교통량은 새로운 해법을 요구한다. 헬리콥터와 터널 열차를 위한 공간은 부족하고, '보통 공기압 튜브'로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등장한 아이디어가 바로 대형 튜브 우편이었습니다. 192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시 공기압 튜브 시스템을 구축한 경험이 있는 함부르크의 노련한 업체 칼 아우구스트 슈미트 앤 죈네(Carl August Schmidt & Söhne)가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1962년, 시험 노선 가동 시작
1960년 9월 13일 기공식이 열리고 두 달 뒤 약 450미터 구간에서 첫 시험이 진행됩니다. 그리고 1962년 2월 8일, 총 1,800미터 시험 노선의 공식 출발 신호가 울렸습니다. 당시 연방우정부 장관 리하르트 슈튀클렌이 '붉은 버튼'을 눌렀고, 뢰딩스마르크 근처 제11우체국이 지하로 중앙역의 중앙우체국과 연결됐습니다. 저녁 뉴스 태게스샤우(Tageschau)도 이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폭풍 해일이 강타한 기계들
그러나 대형 공기압 튜브는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함부르크 수석 우정국장 게오르크 헤크(Georg Heck)는 "끝을 모를 정도로 어려운 노선 건설"이라며 토로했습니다. 굴착 현장을 벙커 잔해나 철도 성토 구간이 막기도 했고, 오래된 하수구의 악취 나는 내용물이 굴착장으로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공식 가동 시작 9일 뒤인 1962년 봄, 함부르크를 덮친 파괴적인 폭풍 해일이 시스템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혔습니다. 종점이었던 제11우체국의 지하는 기계와 함께 물 2미터 아래로 잠겼습니다. 다행히 지하 운송관은 물에 잠기지 않았습니다. 헤크는 "거의 믿기 힘든 행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시스템이 재해 이후 다시 정상 작동하기까지는 반년이 걸렸습니다.
길어진 캡슐로 시간당 60만 통 운송
짧은 캡슐은 곧 부족해졌습니다. 후속 모델에서는 운송 능력이 두 배로 늘었죠. 기술적으로는 예상 밖의 문제 없이 계획대로 진행됐고, 분위기는 들떠 있었습니다. 헤크는 초기에 "거의 환상적으로 좋은 운행 결과"를 자랑했습니다. 곧 길이 두 배인 운송 캡슐이 여정에 올랐습니다. 이론상 시간당 최대 60만 통의 편지를 우체국 간에 발송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세계에 유례없는 이 프로젝트는 해외 우편 전문가들도 주목했습니다. 이스라엘, 미국, 한국, 캐나다, 소련에서 방문객이 찾아왔습니다.
우편 차량보다 훨씬 빨랐다
초기에는 편지를 왕복시키는 관이 하나뿐이었습니다. 제11우체국에서 편지 상자들이 압축공기로 관을 따라 밀려가고, 반대 방향에서는 빨려 들어갔습니다. 최고 속도는 시속 58킬로미터였고, 한 번의 운행에는 2분 30초가 걸렸습니다. 같은 구간을 우편 차량으로는 출근 시간대에 20분 넘게 걸리기도 했으니, 공기압 우편은 압도적으로 빨랐습니다.
계획은 49킬로미터 노선망까지
1965년 10월에는 반대편 노선도 가동에 들어갑니다. 이제 캡슐을 순환식으로 발송할 수 있게 되면서 두 노선의 총 길이는 4,000미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1965년 12월 1일, 드디어 실제 우편물이 대형 튜브 우편으로 발송됩니다.
추후 계획은 더욱 야심찼습니다. 노선망을 15킬로미터로, 이윽고 49킬로미터 이상으로 확장해 공항과 항공우편을 연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빌헬름스부르크와 할부르크의 우체국들도 대형 튜브 우편의 혜택을 받을 예정이었습니다. 1967년의 마지막 노선 계획안은 약 15킬로미터 규모의 네트워크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잦은 고장과 높은 비용이 예고한 종말
그러나 연방우정청은 대형 튜브 우편에 더 많은 돈을 쓰기를 꺼렸습니다. 운영 비용은 높았고, 너무 높았습니다. 이미 1968년 헤크 국장은 비용이 "기존 자동차 운송의 약 두 배"라고 인정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시스템은 해가 갈수록 고장이 잦아졌습니다. 캡슐이 관에 끼는 일이 되풀이됐습니다.
오랫동안 함부르크 지하 역사를 연구해온 작가 울리히 알렉시스 크리스티안센(Ulrich Alexis Christiansen)은 관이 점점 취약해진 원인을 도로 교통의 진동과 당시 수많은 공사장에서 찾습니다. 관들은 지표면 바로 아래에 묻혀 있는 경우가 많아 상수도 공사와 지하철 공사 과정에서 드러나곤 했고, 때로는 손상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편지 물량이 예상만큼 늘지 않았다는 점도 대형 튜브 우편에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지하 탐방으로 만나는 대형 튜브의 흔적
확장 계획은 몇 년간 동결된 채, 1976년 마침내 종말이 옵니다. 우체국들의 기계는 완전히 철거되고 관들은 흙으로 메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대형 공기압 튜브의 관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바로 뢰딩스마르크 근처 그라스켈러교(Graskellerbrücke) 아래입니다. 연방우정청은 추가 건설에 대비해 이곳에 미리 외피 관을 매설해뒀고, 운송관은 나중에 삽입하기로 했지만 결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함부르크 지하세계 협회(Hamburger Unterwelten e.V.)와 함께 탐방에 나서면 바로 이곳을 지나게 됩니다. 협회 회원들은 도시 탐방 워킹투어에서 대형 공기압 튜브의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나누고, 수많은 유물과 역사 사진으로 한때의 첨단 기술이었던 이 시스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