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전투 없이 함락된 오스나브뤼크: SS의 방어 명령을 무시한 시민들 (1945년 4월)

영국군은 1945년 4월 초, 단 한 번의 총성도 없이 오스나브뤼크를 점령했습니다. SS는 국민돌격대(Volkssturm)에 도시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오스나브뤼크 시민들은 그 명령을 조용히 거부했습니다.

1945년 4월 4일, 연합군이 서쪽에서 독일 본토로 진격합니다. 독일 국방군가 연합군에 항복하기 약 5주 전, 오스나브뤼크 시는 영국군과 캐나다군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이른 아침 연합군이 도착한 곳은 이미 완전히 파괴된 도시였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 오스나브뤼크 주민들은 전쟁 기간 중 가장 참혹했던 폭격을 겪은 바 있었습니다.

오스나브뤼크 시민들은 복종을 거부했다

영국군이 진격해 오던 어느 저녁, 도시에는 "오스나브뤼크가 요새처럼 방어될 것"이라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습니다. 당시 도시에는 국민돌격대가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SS는 선전을 통해 "16세부터 60세까지 무기를 들 수 있는 모든 남성은 독일 제국의 조국을 방어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전차 장벽이 도시 주변에 세워지고, 국민돌격대는 그곳에 배치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스나브뤼크 사람들은 순명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싸우지 않았고, 연합군은 텅 빈 도시를 손쉽게 점령했습니다.

영국군이 건넨 초콜릿 한 조각

1929년생 빌헬름 퀘켈한(Wilhelm Kückelhahn)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포격이 멈췄을 때 우리는 밖으로 나왔고, 화창한 아침이었습니다. 그런데 '영국군이 여기 왔다'는 말을 들었죠. 경찰은 소총과 권총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포로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연합군 병사들은 민간인에게 우호적이었고, 그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가끔 그들이 초콜릿 조각을 던져 주기도 했습니다."

베를린을 향해 굴러가는 전차 부대

도망친 것은 독일군만이 아니었습니다. 지역 NSDAP(나치당) 지도부 역시 자취를 감췄습니다. 게르하르트 스튜버(Gerhard Strüwer)는 "행군하는 길에 어떤 농부의 아내가 창문에 흰 천을 걸었다는 이유로 총격을 받았다"고 증언합니다. 브리짓 뢰베케(Brigitte Löbecke)의 어머니는 식료품을 사러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가 갑자기 다가오는 전차와 마주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녀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도시를 통과한 전차 부대는 멈추지 않고 다시 베를린을 향해 행군을 이어갔습니다.

폭발한 주류 공장, 그리고 약탈의 아침

대다수 시민에게 군대의 도착은 곧 '해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순간을 틈타 식량을 비축하기 시작했습니다. 1931년생 하인츠 알레르트(Heinz Ahlert)는 이렇게 기억합니다. "식품점이 약탈당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구 근처 빙켈하우젠 막사로 향했고, 거기서 밀가루 한 자루와 사우어크라우트 한 상자, 그리고 통조림도 얻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주류 공장으로 몰려갔습니다. 바닥에 술이 널리 흘렀는데, 누군가 담배꽁초나 성냥을 던지면서 술이 폭발했습니다. 게르하르트 스튜버의 증언대로라면 "약 30명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