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로마의 극장: 가면과 웃음, 눈물이 공존하던 시민의 안식처

오늘날 우리는 스릴 넘치는 스포츠 경기만큼이나 훌륭한 허구 작품, 즉 연극과 영화를 즐깁니다. 무대 시야와 음향이 제한된 환경에서도 우리는 좌석에 빽빽이 앉아 간식을 먹으며, 배우들이 펼치는 비극과 희극에 몰입해 일상의 근심을 잠시 잊곤 합니다. 오늘날 이를 '영화관'이라 부르지만, 그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극장'입니다.

고대부터 이어진 유일한 대중 오락

올림픽 경기와 더불어,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거의 원형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유일한 대중 취미가 바로 극장입니다. 로마는 그리스를 정복한 후 그들의 찬란한 문화 유산을 계승하며, 극장을 자연스러운 시민적 표현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고통스러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열변을 토하는 배우들의 희비극을 통해 위안을 얻고자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배우라는 직업은 가장 천대받는 직업 중 하나였음에도 말입니다.

로마의 극장: 가면과 웃음, 눈물이 공존하던 시민의 안식처
모자이크 속 배우들

임시 무대에서 석조 극장으로

초기 연극 공연은 특정 축제나 제전의 일부로만 열렸으며, 전용 건물이 없었습니다. 집권 정치인이 민심을 달래기 위해 비용을 댔고, 공연 후 철거되는 목조 가설 무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임시 건물이라고 조악하지는 않았습니다. 기둥과 조각상, 고급 자재로 화려하게 꾸며진 무대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산발적이고 열악한 환경에서는 새로운 작가가 탄생하기 어려웠습니다. 연극 레퍼토리는 그리스 고전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데 머물렀고, 그 과정에서 해학과 감동의 상당 부분이 손실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티투스 마키우스 플라우투스(Titus Maccius Plautus)라는 인물이 로마 연극계에 혁명을 일으킵니다. 포에니 전쟁에 참전했던 베테랑 병사 출신인 그는 그리스풍의 세련미는 덜하지만, 당대 로마인의 속성을 신랄하게 풍자한 순수 로마식 희극을 선보였습니다. 아리스토파네스, 메난드로스 등 그리스 작가의 모방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한니발의 침공으로 국가적 비극을 겪고 있던 로마에 비극 대신 웃음이 필요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욕설과 저속함, 기상천외한 상황, 노예, 탐욕스러운 노인, 상인, 선원, 매춘부, 병사, 젊은이, 피리 부는 여인 등 당대 군상이 총출동합니다. 『아시나리아(Asinaria)』, 『자랑병 병사(Miles Gloriosus)』 같은 작품은 오늘날 스페인 사군토의 여름 축제 '사군트 아 에스세나(Sagunt a Escena)'에서도 여전히 공연될 만큼 생명력을 지닙니다.

폼페이우스의 석조 극장과 카이사르의 최후

기원전 55년, 폼페이우스 마그누스(Pompeius Magnus)는 로마 최초의 석조 극장을 세웠습니다. '공연 후 철거'라는 원로원 법을 피하고자 극장 내에 수호신 비너스 빅트릭스(Venus Victrix) 신전을 지어 종교 시설로 위장했습니다. 이는 로마 최초의 대리석 건물로, 그 계단에서 기원전 44년 3월 15일(이두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하는 역사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비트루비우스가 정립한 표준 설계도

내전 종식 후 아우구스투스 원수정 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도시 미화 사업이 행해졌습니다. 이때 고대 최고 엔지니어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Marcus Vitruvius Pollio)의 설계 원칙이 제국 전역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로마 극장의 전형적인 모습은 정확히 비트루비우스의 건축 모델과 일치합니다(스페인 카르타헤나 로마 극장 박물관이나 사라고사에서 그 전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시장 광장을 설계한 후, 불멸의 신들을 기리는 축제일에 시민들이 연극을 관람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극장으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로마 극장의 4대 핵심 구조

  • 스케네(Scenae Frons, 무대 배경): 보통 2층 기둥과 조각상으로 장식된 화려한 배경벽. 그 앞의 프로스케니움(Proscenium)이 실제 연기가 펼쳐지는 무대 공간입니다.
  • 오르케스트라(Orchestra, 오케스트라석): 무대 앞 원형 공간의 중앙부로, 귀빈석이자 제단이 놓인 신성한 구역입니다.
  • 카베아(Cavea, 관객석): 계단식 객석으로, 진입 통로(아디투스)로 구획되며 신분에 따라 배정되었습니다.
    • 이마 카베아(Ima Cavea): 최하단, 귀족 계급
    • 메디아 카베아(Media Cavea): 중간, 평민
    • 숨마 카베아(Summa Cavea): 최상단, 외국인, 독신 여성, 노예
    밧줄과 도르래로 작동하는 거대한 차양막(벨라리움)이 객석을 덮어 햇볕을 가렸습니다.
  • 보미토리움(Vomitorium, 출입구): 외부에서 카베아로 통하는 출입구로, 인파가 '쏟아져 나오듯' 빠르게 입퇴장할 수 있게 설계되었습니다.
로마의 극장: 가면과 웃음, 눈물이 공존하던 시민의 안식처
바쿠스(디오니소스) 모티브의 극장 장식

히스파니아의 극장들: 도시의 위세를 가늠하다

극장의 규모는 해당 도시의 인구와 위상에 비례했습니다. 대략 10,000석의 클루니아(Clunia, 부르고스 코루냐 델 콘데)에서부터 6,000석 규모의 카이사라우구스타(Caesaraugusta, 사라고사), 카르타고 노바(Carthago Nova, 카르타헤나), 에메리타 아우구스타(Emerita Augusta, 메리다), 그리고 3,000석 안팎의 이탈리카(Italica, 세비야 산티폰세), 사군툼(Saguntum, 발렌시아 사군토), 빌빌리스(Bilbilis, 사라고사 칼라타유드), 세고브리가(Segobriga, 쿠엔카 사엘리세스), 바엘로 클라우디아(Baelo Claudia, 카디스 볼로니아 해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습니다.

로마의 극장: 가면과 웃음, 눈물이 공존하던 시민의 안식처
에메리타 아우구스타(메리다) 로마 극장

전차 경기장(키르쿠스)과 마찬가지로, 막대한 건축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자치시(무니키피움)나 식민시(콜로니아)만이 극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타라코(Tarraco)는 키르쿠스, 극장, 원형극장을 모두 갖췄지만, 바르키노(Barcino, 바르셀로나)나 일레르다(Ilerda, 레이다) 같은 도시는 이런 시설을 갖출 여력이 없었습니다.

가면 뒤의 삶: 천대받은 배우들

이 돌덩어리들에 생명을 불어넣은 배우들에 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외 없이 남성만 출연해 남녀 모든 배역을 소화했으며, 앞서 언급했듯 사회적 평판은 최하층이었습니다. 연출가, 판토마임 배우, 배우 모두 천시받는 계층이었습니다.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진 극장의 뛰어난 음향, 그리고 비트루비우스의 비례 미학 덕분에 대사는 극장 구석구석까지 전달되었습니다. 하지만 먼 좌석에서 배우의 미세한 표정 연기를 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오늘날 연극의 상징이 된 가면(페르소나)이 필수적이었습니다. 희극의 가면 디오니소스(생의 환희)와 비극의 가면 타나토스(죽음)은 존재의 양극단을 상징하며, 배우의 얼굴을 가림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의 보편적 감정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글: 가브리엘 카스테요(Gabriel Castelló) 협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