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1945년 4월 첼레 '토끼 사냥' 학살: 폭격으로 흩어진 수감자들, 그리고 170명의 처형

1992년부터 독일 첼레(Celle) 기차역 인근 트리프탄라겐(Triftanlagen)에는 이 학살을 기리는 소박한 추모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폭격으로 멈춘 열차, 시작된 비극

1945년 4월 8일 오후, 첼레 역에 화물열차 한 편이 들어섰습니다. 잘츠기터-드뤼테(Salzgitter-Drütte)와 홀젠(Holzen) 강제수용소의 약 3,400명 수감자를 실은 개방형 화물차였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소련과 폴란드에서 강제노동에 동원됐던 사람들로, 목적지는 베르겐-벨젠(Bergen-Belsen)이었습니다. 그러나 열차는 기술적 문제로 첼레에 정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미군 폭격기 편대가 나타나 독일군 보급 차단을 위해 역과 화물창고 일대를 폭격했습니다.

공습으로 약 500명 사망

수감자들은 쏟아지는 폭탄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당시 수감자였던 칼 투흐트(Karl Tucht)는 40년 뒤 TV 인터뷰에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마차 문이 조금 열려 있었습니다. 저는 그 틈으로 뛰어내렸고, SS 병사들도 모두 내려 도랑에 엎드렸습니다." 공습은 약 50분간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약 500명의 수감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첼레 민간인 중에도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국방군의 탈출자 수색 명령

늦은 저녁, SS는 도망친 수감자 상당수를 다시 검거했습니다. 그러나 기차역 근처 숲 노이슈테터 홀츠(Neustädter Holz)를 비롯해 아직 숨어 있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국방군 도시사령관 파울 체셸(Paul Tzschökell)은 탈출자들을 '사냥'하라는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4월 9일에는 SS 대원, 경찰, 소방관, 국민돌격대, 히틀러유겐트는 물론 권투선수 오토 아멜룽(Otto Amelung) 같은 일반 시민들까지 철도 주변 일대를 수색에 나섰습니다.

'사냥 허가' 선언, 그리고 무차별 총격

전례 없는 학살의 막이 올랐습니다. SS는 수감자들이 약탈을 일삼고 일부는 무장까지 했다며 주민들에게 알렸고, 탈출한 수감자들을 위협으로 규정해 총격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첼레 시민 다수가 이 참상을 목격했습니다. 1945년 당시 10대였던 아돌프 푈커(Adolf Völker)는 1985년 NDR 방송에서 회상했습니다. "옆으로 도망치려 하면 양쪽에서 카빙총탄이 날아왔습니다."

거리에서 수습된 시신들

가해자들은 무자비하게 행동했습니다. 무방비 상태의 수감자들은 말 그대로 머리에 총구를 겨눈 채 처형당했습니다. 이렇게 살해된 수감자는 170명에 달했습니다. 당시 13세였던 첼레 출신 빌헬름 조머(Wilhelm Sommer)는 1985년 NDR 다큐멘터리에서 끔찍한 장면을 증언했습니다. "다음 날, 4월 9일, 짐꾼이 두 마리 말이 끄는 트롤리를 몰고 거리를 달렸습니다. SS 대원들이 호위하고, 포로들은 시체를 자루처럼 마차에 던져 넣었습니다."

가벼운 처벌, '존경받는 시민'이 된 가해자들

3일간의 수색이 끝난 직후인 4월 12일, 영국군이 첼레를 점령했습니다. 연합군은 1945년 5월부터 조사에 착수했지만, 군사법원이 14명을 살인 혐의로 기소한 것은 1947년 12월에야 이루어졌습니다. 대다수는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판결 결과는 무죄 7건, 징역형 4건, 사형 3건이었으며, 사형은 모두 징역형으로 감형됐습니다. 이들은 늦어도 1952년까지는 모두 자유의 몸이 되었고, 일부는 이후 '존경받는 시민'으로서 삶을 이어갔습니다.

시신의 재발굴과 안장

도시는 오랫동안 이 어두운 장을 외면했습니다. 1949년 첼레 숲 묘지에는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 안식처'가 조성되었습니다. 학살당한 수감자들의 시신은 전쟁이 끝난 뒤 매장되었으나, 영국 군사법원 조사 과정에서 다시 발굴되어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이후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석이 추가되었습니다.

'토끼 사냥'이라는 이름이 붙기까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이 사건을 직시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비판적 목소리가 지역 사회에서 일기 시작했습니다. 지역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로데(Reinhard Rohde)에 따르면, 수감자들이 토끼처럼 들판을 가로질러 숲속으로 지그재그로 도주하다 추격자들의 총탄에 쓰러졌다는 목격자 진술이 사건 명칭의 유래가 됐습니다. 이렇게 '첼레 토끼 사냥(Celler Hasenjagd)'이라는 냉소적인 이름이 탄생했습니다. 1992년부터는 기차역 인근 트리프탄라겐에 이 학살을 기리는 소박한 추모비가 세워져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