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심야, 페마른(Fehmarn) 북쪽 발트해 해상에서 클라이페다행 여객선 '리스코 글로리아(Lisco Gloria)'호에서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승객과 승무원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고는 인명 피해 없이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그 배후에는 신속한 대응과 기나긴 밤을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Isabelle Breitbach 작성
화재가 발생했을 때 승객들은 막 잠자리에 든 시간이었습니다. 200명이 넘는 승객이 클라이페다로 향하던 중 선실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몇 해리 밖 발트해를 항해하던 페리 '도이칠란트(Deutschland)'호의 선장 한네스 바스무트(Hannes Wasmuth), 그리고 킬(Kiel) 수경지역 관리소장 우베 마르크센(Uwe Marxen)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페마른 북쪽에서 불타는 여객선 선장의 긴급 호출은 자정 무렵 바스무트와 마르크센에게 전해졌습니다. 두 사람 모두 상황의 전모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알 필요도 없었습니다. 즉시 행동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일반 경보음에 깨어난 선장
한네스 바스무트 선장은 평소 푸트가든(Puttgarden)과 덴마크 뢰드비(Rødby) 사이를 정기적으로 오가며 운항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만큼은 원래 배에 탈 일이 없었습니다.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오후 늦게 항해사가 부재하다는 연락을 받고 푸트가든까지 차를 몰고 가 배에 올랐죠." 두 차례 항해를 마치고 오후 11시에 근무를 끝낸 그는 곧바로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도 쉬지 못했습니다. "자정쯤 다시 깨어났습니다. 일반 경보음이 울린 겁니다. 그래서 즉시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같은 질문이 킬의 우베 마르크센 머릿속에도 스쳤습니다. 그날 밤 그는 수많은 연락을 처리하던 경찰관 중 한 명이었습니다. 자정에 첫 번째 전화를 받았고, 이내 정보가 계속 바뀌었습니다. "배에서 폭발이 있었다더군요." 한동안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일지, 사람들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도이칠란트'호의 항로 변경
한네스 바스무트가 "'리스코 글로리아'호에서 아무도 살아서 내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 때쯤, 연방경찰은 이미 인명을 구명정으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우베 마르크센이 지시를 기다리는 동안 '도이칠란트'호는 항로를 변경했습니다. 근처에서 가장 큰 배였기에 돕는 것은 선원으로서의 의무였습니다. 두 배 사이 거리는 11해리, 최대 출력으로 약 30분 거리였습니다. '리스코 글로리아'호 전체가 불길에 휩싸여 멀리서도 불빛이 보였습니다. 바스무트 선장은 "아무도 살아서 이 배에서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이미 대피해 있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놀라움이었습니다.
'리스코 글로리아'호의 선장은 신속하게 전원 대피를 결정했습니다. 연방경찰 초계정이 현장의 구명정에서 사람들을 실어 나랐습니다. 바스무트 선장은 그 빠르고 훌륭한 대응을 오늘날까지도 기억하며 존경의 뜻을 보입니다. 그와 동료들은 구조된 2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에 태우고 다음 안전 항구인 푸트가든으로 향했습니다.
구조된 사람들을 태운 페리, 목적지는 킬
그러나 원래 계획과 달리 배는 킬로 향하게 됩니다. 해상비상사태조정본부(CCME)는 물류상의 이유로 킬을 지정했습니다. 긴박한 시간 끝에 우베 마르크센은 마침내 티르피츠몰레(Tirpitzmole)에서 '도이칠란트'호를 맞이하고, '리스코 글로리아'호의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구조되어 탑승했는지 확인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준비할 시간은 거의 없었고, '도이칠란트'호는 이미 항해 중이었습니다.
항로는 킬. 바스무트 선장이 납득하기 어려워도 받아들여야 했던 결정이었습니다. 배에 오른 사람들은 깊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으니까요. 그는 말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불타는 배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출발했던 방향으로 돌아가려면 두 시간을 페리 안에서 보내야 합니다. 물론 각자 머릿속에서 끝없이 장면이 재생되겠죠. 계속 말입니다." 그와 승무원 전체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 특별한 임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마치 자신들의 승객처럼요.
경찰관 마르크센, 침착함을 유지하다
떠오르는 추억: 우베 마르크센 경찰관은 킬 티르피츠몰레에서 구조된 승객들을 기다렸습니다.
5개 팀, 표시용 펜, 개인 정보 등록 양식. 이것이 우베 마르크센이 티르피츠몰레에서 조난 선박과 함께 '도이칠란트'호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한 것들이었습니다.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랐습니다. 물론 우리는 바다에서 벌어진 일에 어떤 책임도 없습니다." 그는 새벽에 파일럿 게이트에서 마주한 남자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한네스 바스무트와 함께 구조된 사람들로 가득 찬 두 개 갑판을 가로질러, 기진맥진하고 옷가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배에 내렸던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구명보트에 뛰어드는 광경은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라고 마르크센은 오늘날 회상합니다. 하지만 그는 침착함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탑승자 대부분이 리투아니아와 러시아 출신이라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가운데, 조난자 전원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승객·승무원 명단과 계속 대조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249명이 구조된 것으로 보고되었지만, 실제 탑승 인원은 236명이어야 했습니다. "결국 잘못된 집계로 판명됐습니다. 모두 무사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손을 보태셨다"
오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확실해졌습니다. '리스코 글로리아'호에 탔던 모든 사람이 구조되었고, 전원이 살아남았습니다. 우베 마르크센은 임무를 되돌아보며 좋은 결과, 각자의 역할을 다한 많은 협력자, 원활한 협력 관계, 그리고 '도이칠란트'호 같은 대형 선박이 근처에 있어 사람들을 받아줄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를 표합니다.
한네스 바스무트는 "안도감이 정말 컸습니다"라고 회상합니다. 그 역시 그날 밤을 종종 떠올립니다. 사람은 일생에 한 번쯤 이런 일을 겪게 되고, 설령 그렇다 해도—그는 확신합니다. 푸트가든의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는 말했습니다. "위를 보셔야죠. 하느님께서 직접 손을 보태신 것 같습니다. 정말 큰 행운이었죠. 하지만 행운만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