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 기록적인 폭우로 엘베 강과 지류들이 일제히 범람했습니다. 수십만 개의 모래주머니를 쌓아 올린 자원봉사자들이 북부 도시들을 홍수로부터 지키려 애썼지만, 독일 동부에는 인명 피해와 파괴적인 손실이라는 슬픈 결과만 남았습니다.
글: 카트린 베버
2002년 8월, 하늘이 무너지다
2002년 8월, 독일 대부분 지역에는 한여름의 맑은 날씨가 이어졌지만 동부와 남동부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조짐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햇살 대신 쏟아진 것은 엄청난 비였습니다. 작센 광산 지역(오레 산맥) 동부에 위치한 친발트게오르겐펠트에는 8월 12일 하루 동안 제곱미터당 312리터의 강수량이 기록되었는데, 이는 평소 석 달 치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작센주가 가장 큰 타격, 사망자 21명
작센주 외에도 바이에른주와 체코에서 폭우가 이어지면서 둑이 넘치고 엘베 강과 지류의 수위가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작은 시내는 격류로 변해 수많은 마을과 지역이 물에 잠겼습니다. 특히 작센주가 가장 큰 피해를 입어, 많은 지역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었고 주민들은 헬기로 구조되어야 했습니다.
드레스덴 일부 지역 대피 명령
드레스덴에서는 해일이 중앙역을 덮쳤고, 대학병원은 긴급 대피했으며, 젬퍼 오페라하우스, 츠빙거 미술관, 주의회 의사당을 포함한 수많은 건물이 물에 잠겼습니다. 피르나와 마이센 역시 침수 피해를 입었습니다. 작센주에서만 21명이 목숨을 잃었고, 중부 유럽 전체로는 최소 45명이 이 홍수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엘베 강변 도시들, 해일에 대비하다
작센주를 지나 해일은 북쪽으로 작센안할트주와 브란덴부르크주를 거쳐 밀려왔습니다. 당국과 주민들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암트노이하우스에서는 아직 개보수가 끝나지 않은 구 동독 시절 제방을 모래주머니로 보강했고, 엘브탈라우에서는 캠핑장을 비우고 가축을 목초지에서 대피시켰습니다. 히차커에서는 방어시설이 없는 구도시 주민 500명이 나무판으로 집을 보호하고 문과 창문을 벽돌로 막은 뒤 귀중품을 위층으로 옮겼습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라우엔부르크 엘프슈트라세의 주민들도 같은 준비에 나섰습니다. 하랄트 호이어 시장은 불길한 예감 속에 "재난"이 올 것을 우려했습니다.
각 지자체 재난 경보 발령
북부 독일 전역에서 소방대, 연방군, 구호 단체가 대기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당국은 대피 계획을 수립하고 수십만 개의 모래주머니를 배포했습니다. 모두가 오르는 수위를 숨 죽이고 지켜봤고, 히차커에서는 시간당 약 10센티미터씩 수위가 상승했습니다. 8월 18일, 피해 예상 지역인 라우엔부르크(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루트비히스루스트(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뤼네부르크와 뤼호프다넨베르크(니더작센주)가 잇달아 재난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물은 밀려왔지만, 제방은 버텼다
8월 21일, 해일이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와 니더작센주에 먼저 도달했고 얼마 후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에도 도달했습니다. 다행히 수위는 우려만큼 높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당국이 제방 붕괴 가능성을 대비하면서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의 데미츠와 보이첸부르크 사이 엘베 강변 마을들과 인근 지역, 노이하우스 지구가 대피했습니다. 라우엔부르크 하부 도시 주민들에게도 집을 떠날 것을 요청했습니다. 함부르크에서는 피어란트와 마르슬란트 지역의 일부 주민들만 여름 별장을 비웠을 뿐입니다. 도시 자체가 침수 위협에서 벗어난 것은 게스트하흐트 보문 너머로 엘베 강이 더 넓고 깊어지고, 항구의 광활한 수면이 물이 퍼질 공간을 충분히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방어막 없던 히차커 구도시, 물에 잠들다
반면 히차커의 보호받지 못한 구도시는 8월 22일 약 1.5미터 깊이로 물에 잠겼습니다. 수위가 더 이상 오르지 않았지만, 물이 무른 제방을 계속 밀어붙이면서 강변 마을들의 긴장은 여전히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데미츠와 보이첸부르크 사이 등 여러 지점에서 물이 스며들자 봉사자들이 제방 보강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뤼호프다넨베르크 군의 인구 26명짜리 마을 라셰에서만 노력이 헛되었습니다. 제방이 붕괴하면서 마을 전체가 침수된 것입니다. 그 외 지역의 제방은 압력을 견뎌냈습니다. 해일이 서서히 약해진 데다, 브란덴부르크주와 작센안할트주에서 하펠 강 유역의 다섯 개 저류지를 열어 물이 흘러나갈 통로를 만들어준 덕분이었습니다. 8월 25일부터 수위가 예상보다 빠르게 내려가면서 각 지자체는 8월 27일에 재난 경보를 해제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 역사상 가장 값비싼 자연재해
파괴된 도로와 철교, 훼손된 제방, 침수된 주거·상업용 건물, 수확을 포기해야 한 들판까지 — 2002년 엘베 강 홍수는 지금까지 독일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남긴 자연재해로 기록되었습니다. 총 피해액은 116억 유로로, 이 중 86억 유로가 작센주에 집중되었습니다. 보험 처리된 부분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피해를 입은 가정과 기업, 농가는 방치되지 않았습니다. 생계 유지와 응급 복구를 위한 즉각 지원금이 지급되었고, 연방정부와 주정부, 지자체, EU가 총 100억 유로를 지원했습니다. 또한 연방과 주정부는 세제개혁 2단계 시행을 2003년에서 2004년으로 1년 연기해 '재건 지원 기금'으로 약 71억 유로를 확보했습니다.
뜨거웠던 성금 모금 열풍
성금 모금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기업과 단체, 개인 할 것 없이 모두가 연대에 나섰습니다. F1 월드 챔피언 미하엘 슈마허는 "기부하기로 결심했으며,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시길 바란다"며 홍수 피해자들에게 100만 유로를 쾌척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 뒤를 따랐고 해외에서도 재정 지원이 이어졌습니다. 독일 적십자사만 거대한 모금 캠페인을 통해 130만 명이 넘는 기부자로부터 약 1억 4,600만 유로를 모았습니다. 각종 성금 계좌에 모인 금액은 총 5억 유로를 넘어섰습니다.
홍수 방어 투자 확대, 그러나 근본적 해결은?
재난 이후 배상 문제뿐 아니라 원인에 대한 질문도 제기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참사가 벌어진 것일까? 많은 환경 전문가와 정치인들은 한 가지를 확신합니다. 인간의 자연 개입이 이러한 재난에 결정적인 몫을 했다는 것입니다. 직선화된 하천, 끝없이 늘어나는 불투수 면적, 토양 침식과 삼림 벌채가 2002년 엘베 강 홍수 같은 자연재해를 부추겼다는 것입니다.
홍수 이후 제방과 방벽, 저류지 건설 및 개보수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재해 경보 체계도 개선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일 환경 및 자연보호 연합(BUND)은 홍수 10년 후 비판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당시 BUND 의장 후베르트 바이거는 "2002년 세기의 홍수 이후 연방정부와 엘베 강변 주정부들은 강에 더 많은 공간을 주겠다고 언론에 공언했다. 그런데 언론이 떠나자마자 그 약속은 잊혔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그동안 시행된 어느 조치도 2002년 수준의 물량을 흡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기후 변화, 앞으로도 홍수를 부추길 것
이후에도 연방과 주정부는 홍수 방어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극단적 기상 현상 때문에 2002년 세기의 홍수 이후에도 심각한 홍수는 이제 거의 매년 반복되는 일상적 현상이 되었습니다.
독일 보험업계 역시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재난 손실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는데, 독일 보험 협회(GDV)가 2018년 발표한 기후 연구에 따르면 이번 세기 말까지 홍수로 인한 피해가 적용되는 기후 모델에 따라 두 배, 심지어 세 배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