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3일, 노바 클라시스(Nova Classis) 야영지가 있던 암포스타(Amposta)에서 출발한 여정은 8월 17일 카르타고 노바(Carthago Nova, 현 카르타헤나)에 도착하며 마무리되었다.
비아 스키피오니스 프로젝트의 탄생과 배경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이베리아 반도는 분쟁의 핵심 무대가 되었고, 기원전 209년 스키피오 장군이 카르타고의 이베리아 거점인 카르타고 노바를 점령한 것은 전쟁의 주요 전환점이었다. 이 정복은 카르타고에 큰 타격을 주었고, 결국 푸니크인들을 히스파니아에서 축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아 스키피오니스(VIA SCIPIONIS) 프로젝트는 당시 타라코(타라고나) 로마 군영에서 카르타고 노바까지 스키피오가 진군한 경로를 재현하고자 기획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기관의 지원을 받았는가?

비아 스키피온스 프로젝트는 고고학 유산 보존 및 재현 전문 민간 기업 아르티펙스(ARTIFEX)가 처음 구상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이 역사적 에피소드를 실험 고고학, 엔터테인먼트, 양질의 문화 관광, 역사 대중화라는 혁신적 관점에서 기념하고자 했다. 2013년 한 해 동안 설계를 거쳐 2014년 실행할 예정이었으며, 마드리드 자치대학교 실험 고고학 연구소(하비에르 바에나 교수), 스페인 실험 고고학 협회 엑스페리멘트(Experiment)(로드리고 알론소 소장), 네덜란드 소재 국제 야외 박물관 네트워크 엑사크(EXARC)의 학술적·제도적 지원을 확보했다.
안타깝게도 첫 크라우드펀딩 시도는 목표액의 35%에 그쳐 무산되었다. 당시에는 수익 일부를 NGO 에두코(Educo)의 '급식 장학금' 프로그램에 기부하는 사회적 목적도 겸하고 있었다.
이후 경유 지자체들의 공공 지원과 예산 확보가 어려워지자, 민간 자금으로 프로젝트를 실행하여 그 잠재력을 입증하고 추후 행정 지원을 유도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비아 스키피오니스는 공화정 시대 군단 최소 단위인 콘투베르니움(contubernium)에 해당하는 8명의 자원봉사자—고고학자, 역사학자, 학생, 아마추어 애호가—에 의해 수행되었다. 역사 재현 단체 에보카티 아프리 스키피오니(Evocati Apri Scipioni)와 이베르칼라펠(Ibercalafell)이 장비를 무상 제공했고, 민간 기업 라 수부라(LA SUBURA)가 이동 경비 상당 부분을 후원했다. 2015년 8월 3일부터 17일까지 암포스타에서 카르타헤나까지 15일간 진행된 순회 실험 고고학·역사 재현 행사가 그렇게 탄생했다.
고대 사료의 '7일 진군' 기록, 사실인가?
두 지점 간 직선 거리는 약 480km. 폴리비오스와 리비우스는 이 행군이 7일 만에 완료되었다고 기록한다(Pol. X.9.7; Liv. XXVI.42.6). 하지만 이 수치는 전통적으로 논란의 대상이었다. 군대가 그 거리와 시간 안에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이 기록의 검증이 프로젝트 목표 중 하나였는가? 결론은 무엇인가?

프로젝트는 역사적 위업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행군 중인 공화정 군단을 연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참가자들이 임계 피로에 도달하지 않는 선에서 일일 구간을 나누어 총 15개 단계로 구성했다. 암포스타를 출발해 트라이게라(Traiguera), 코베스 데 빈로마(Coves de Vinromà), 보리올(Borriol), 눌레스(Nules), 사군토(Sagunto), 발렌시아(Valencia), 알헤메시(Algemesí), 사티바(Xàtiva), 모이센트(Moixent), 카우데테(Caudete), 엘다(Elda), 엘체(Elche), 로할레스(Rojales), 필라르 데 라 오라다다(Pilar de la Horadada)를 거쳐 카르타헤나에 이르렀다.
자원봉사자들은 하루 평균 약 30km를 걸었고, 일부 구간은 36km를 넘기도 했다. 당시 기온이 40℃를 웃도는 날도 있었으며, 평평한 밑창의 역사적 신발을 신고 장비를 갖춘 채로 행군했다.
이 경험을 통해 고전 작가들이 언급한 '7일' 기록의 신빙성에 대해 의견을 갖게 되었다. 하루 평균 60km라는 속도는 헤라클레스도 놀랄 육체적 위업이며, 당대인들에게도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예외적 상황임을 고려하면 여전히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라고 본다. 카이오 렐리우스가 지휘하는 함대가 육상 진군과 병행하며 보급과 철수 지원을 맡았기에, 군단병의 장비 무게를 크게 줄이고 병참 부담을 덜어주어 행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사전 전문 훈련 없이 생소한 역사적 신발을 신고 15일 만에 완주한 우리 같은 아마추어들이 해냈다면, 약 10년간 복무한 베테랑 병력으로 구성된 정규 군단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장비·무기·수송 체계에서 얻은 교훈
당시 병사의 의복과 무기를 착용하고 행군했다. 복장, 무기 휴대 방식, 짐승 활용 여부 등에 대해 어떤 결론을 얻었는가?

이 프로젝트의 제1 목표는 행군 중인 공화정 군단에 대한 실험 고고학적 과학 연구였다. 7명의 참가자는 로마 군단병(백인대장, 벨레스, 하스타투스, 프린케프스, 트리아리우스)과 이탈리아 동맹군·보조병(삼니움인, 이베리아 라이에타누스)으로 분장했다. 15일간 신체·개인적 데이터(열 스트레스, 수분 섭취, 빈발 병리, 부상 등)와 물적 데이터(신발 마모, 방패 휴대 시스템, 짐·무기 수송 체계, 천막 설치 등)를 수집했으며, 현재 분석·구조화 중이다. 그 결과는 학술 대회, 전문 저널, 대중 출판물 등을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우선 신발 마모에 대한 가설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가 강제로 이용해야 했던 포장 도로가 과도하게 많았던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세 가지 신발을 테스트했다: 원뿔형 징 박힌 칼리가에(caligae), 평평한 징 박힌 칼리가에, 징 없는 폐쇄형 가죽신 카르바티나에(carbatinae). 결과적으로 발 부상의 빈도와 심각도는 징 크기에 비례했으며, 카르바티나에 착용자가 가장 적었다. 징 박힌 신발의 내구성이 훨씬 뛰어나 카르바티나에는 가죽 밑창을 두 번이나 교체해야 했다.
장비 휴대 시스템은 가장 단순한 해법을 채택했다. 방패를 배낭처럼 등에 메고 양모 끈으로 만든 두 손잡이로 고정했다. 필룸(pilum)/창/솔리페레아(soliferrea) 등 역할별 무기는 방패에 기대고, 투구나 꾸러미를 뒤에 묶어 후기 제국 시대의 푸르카(furca)처럼 활용했다. 수통으로는 가죽 부대와 박을 사용했는데, 박이 밀봉성과 보온성에서 훨씬 우수함을 확인했다.
로마 군단의 식단과 야영 생활 재현
홈페이지에 당시 로마 병사의 전형적 식단을 공개했다. 실제 군단 식단과 숙영도 재현했는가? 거기서 무엇을 추론했는가?

행군과 병행해 로마 군단병의 식사와 일상 활동을 재현했다. 식단은 문헌 고증을 바탕으로 프로젝트 단원이 직접 설계했다. 주식은 곡물로, 주로 부켈라툼(bucellatum)이라 불리는 무발효 빵(장기 보존 가능)과 저녁 죽 형태였다. 여기에 견과류, 과일, 채소, 치즈, 약간의 고기(주로 돼지고기)를 곁들였다. 고기는 하루 1인당 최대 200g으로 엄격히 제한했다. 길에서 따먹은 무화과, 블랙베리, 알로에 열매 등으로 보충했는데, 이는 카토 노인의 유명한 말 "bellum se ipsum alet"(전쟁은 스스로를 먹여 살린다)를 실감하게 했다. 음료로는 물과 포스카(posca)(식초 탄 포도주에 물 탄 것)를 마셨으며, 1인당 일일 5~6L, 폭염일에는 8L까지 섭취했다.
매일 목적지 도착 후 군영의 축소판을 세웠다. 천막 안에 등나무 돗자리를 깔고 각자 지닌 사굼(sagum, 양모 망토)을 이불·담요·베개 삼아 잤다. 이후 장작 구하기, 요리, 장비 수선(특히 신발), 소지품 정리, 발 관리, 다음 날 준비 등 임무를 분담해 수행했다.
지역 사회의 반응과 참여
경유지 마을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동행자나 자원봉사자가 합류하기도 했나?

비아 스키피오니스의 또 다른 핵심 목표는 교육과 역사 재현을 통해 대중이 자신의 유산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앵글로색슨권에서 '리인액트먼트(re-enactment)'라 불리는 이 분야는 훌륭한 문화·교육 도구이자 고품질 관광 자원이다. 야영지 도착 시 2시간가량 프로젝트 소개, 역사적 배경, 관광·사회·경제 활성화 가능성을 강연했다. 관객은 박물관 진열장이나 고전 문헌 속 유물과 텍스트의 장벽을 넘어, 복제품을 직접 만지고 당시 식음료를 맛보며 2,000년 전 카르타헤나를 하루 만에 정복한 병사들의 일상을 체험했다. 홍보가 충분치 않았음에도 총 1,000명 이상이 방문했다.
향후 비아 스키피오니스를 관람을 넘어 행군에 직접 참여하는 체험형 행사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이번 회차에도 이틀간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합류했으며, 주최 측이 장비를 제공하고 참가자는 열정만 가져오면 되었다.
TVE, RNE, 카데나 세르(COPE) 등 방송사와 엘 페리오디코 데 카탈루냐, 디아리오 데 타라고나, 엘 푼토, 라 베르다드 등 일간지, 수십 개 블로그와 SNS가 이 독창적 시도를 보도했다. 지역·광역 정치인들도 호응했다. 비센트 마르사(Vicent Marzà) 발렌시아주 교육·연구·문화·체육 장관이 차기 회차 지원을 논의했고, 대다수 정치 대표가 예산·조직 등 전방위 지원을 약속했다.
카르타헤나 도착, 공성전 재현은?
투어 종료 후 카르타고에서 공성전도 재현했는가?

아니요, 그랬으면 멋졌겠지만! 마지막 날엔 카르타헤나 도착 자체가 큰 성취였다. 시의회와 '카르타고인·로마인 축제' 연맹이 로마 극장에서 영웅 맞이하듯 환대해준 것이 큰 보상이었다. 트라이게라에선 이베리아 지도자 인티빌리(Intibili)가 상징적으로 도시 열쇠를 건넸고, 사군토에선 두움비리(duumviri)가 성문에서 맞이해 비아 아우구스타(Via Augusta) 유적이 남은 포르티코 길 고고학 구역까지 안내했다.
공성전이나 전투 재현은 차기 회차에서 검토할 매력적 아이디어다. 여러 지자체와 재현 단체가 병행 활동에 관심을 표명했다. 향후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우리의 스키피오의 숙부)와 아스드루발 바르카가 에브로 강과 트라이게라 사이에서 벌인 히베라(Hibera) 전투, 사군토와 카르타고 노바의 공성전 재현도 가능하다. 나아가 카르타헤나에서 세비야 알칼라 델 리오(일리파 전투 기념)나 카디스(스키피오 항복으로 푸니크 세력 완전 종식)까지 제2 구간을 연장하는 구상도 있다.
총평: 과학적·개인적 소회
이 경험에 대한 전반적 소감은? 과학적·개인적 양면에서.

신체·생리적 측면: 첫날 이후엔 완주 가능성을 의심했으나, 3단계 지나자 신체가 적응했다. 단계 완주 시간이 단축되고, 휴식 횟수·시간 감소, 물 섭취량도 줄었다. 최대 걸림돌은 피로보다 부상(특히 물집, 관절통)이었다. 식단과 딱딱한 바닥 취침은 큰 문제가 아니었고, 모두 '군대 생활의 혹독함'에 빠르게 적응했다. 역경에 대한 놀라운 신체 적응력을 확인했다.
심리·개인적 측면: 하루 30km 이상 걸으며 옛 군단병의 심정에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이러한 행군의 혹독함이 병사들을 단련시켰고, 행군 고초를 견딘 병사들은 전투에서 목숨을 쉽게 내놓지 않게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초기의 좌절감이 시간이 지나며 긍정적 마음가짐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체감했다.
미래 계획: 비아 스키피오니스를 넘어
비아 스키피오니스 같은 프로젝트를 계속할 계획인가?

현재 차기 회차 준비 중이며, 새로운 실험 대상, 활동, 홍보 주제를 추가해 과학적 가능성과 관광 매력을 동시에 확장할 예정이다. 참가 그룹을 두 개의 콘투베르니움(16명 + 병참 2~3명)으로 확대하고, 유럽 재현자 초청, 노새(콘투베르니움당 1두)나 마차 도입도 검토 중이다.
더 나아가 비아 스키피오니스는 더 야심찬 프로젝트 비아 안니발리카(VÍA ANNIBALICA)의 서막이다. 한니발 바르카의 주요 사건·전투(알프스 산맥 코끼리 횡단, 칸나에 전투 등)를 대규모 재현하고, 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튀니지 등 관련국 최고 학술 권위자들이 참여하는 국제적 과학·관광 프로젝트로 발전시키는 구상이다. 이미 다수 지자체와 학계 인사가 지지 의사를 밝혔으며, 유럽연합의 결정적 재정 지원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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