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전 세계의 적, 그러나 관객의 친구 — 뤼겐 슈테르테베커 축제 30년, 8,800석 자연 무대의 탄생 비화

첫 번째 관객이 입장할 때쯤, 화가는 아직 무대 위에 서서 마지막 배경을 그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비포장 사면에 놓인 목재 벤치, 그리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던 실험에 가까웠던 불꽃 효과. 1993년 7월 3일, 뤼겐(Rügen) 섬 랄스비크(Ralswiek)에서 수많은 개인의 헌신과 열정으로 시작된 첫 슈테르테베커 축제가 그토록 큰 성공을 거둘 줄이야, 당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비가 오면 좌석 찾기가 미끄러운 모험이 되던 곳

랄스비크의 자연 무대는 야스문더 보덴(Jasmunder Bodden)의 물바다 바로 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1959년부터 1961년까지는 여름마다 몇 주 동안 연극이 공연되었고, 1980년대 초 동독 시절에도 소수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오늘날 헤르베르트 크뉘펠(Herbert Knüppel)은 동독 시대 몇 개의 벤치가 세워졌던 푸른 초원에서 출발한 이곳의 초창기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작은 무대 두 개와 비포장 관람장, 그리고 날씨가 나빠지면 좌석을 찾는 일조차 늘 모험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일하던 풍경화가를 놀라게 한 첫 관객들

통일 이후 랄스비크 지역은 무대를 되살리려 했고, 이상적인 연극인을 힉(Hick) 가족에서 찾아냈습니다. 피터와 루트 힉 부부는 1993년 딸 안나와 함께 뤼겐에 도착해 비포장 언덕을 8,800석 규모의 관람석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공사 과정에서 옛 연극 시절의 유물들이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안나 힉은 오늘날까지 전합니다. 슈테르테베커 문양이 새겨진 1950년대 병과 도자기 조각, 심지어 어린이 장난감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1993년 여름 첫 해적 모험극이 초연되었을 때 안나 힉은 겨우 9세였습니다. 그녀는 파란만장했던 초연 무대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첫 관객이 이미 입장을 시작했을 무렵, 무대 위에서는 여전히 마지막 배경 그리기가 한창이었다고 합니다.

"캠핑장이 어디 있죠?"

수십 년간 쌓인 일화 중에는 그야말로 기가 막힌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독수리 쇼가 진행되던 중 캐러밴을 무대 옆 입구로 굴려 넣고는 "반첼비츠(Banzelvitz) 캠핑장이 어디 있느냐"고 묻던 노부부의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매사냥꾼은 재치 있게 이 부부를 공연에 동참시켰고,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모든 폭발은 실험이었다

이제는 요령을 알지만, 초창기 이야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불꽃 기술자 프레드 브라우티감(Fred Brautigam)은 초기에는 수많은 실험을 반복해야 했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는 오늘날 슈테르테베커 앙상블에서 첫 시즌부터 지금까지 모든 해적 시즌에 참여한 몇 안 되는 인물입니다. 그당시에는 폭발이 실제로 의도대로 작동할지 매번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고 합니다. 배 침몰 장면까지 포함된 그의 첫 물 위 코그선 전투는 그에게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오늘날 브라우티감과 그의 팀은 공연당 4kg의 화약을 터뜨리며, 시즌 전체로는 1.5톤이 넘는 불꽃이 보덴의 밤하늘을 수놓습니다.

연극의 즐거움에서 지역 경제의 버팀목까지

자연 무대에서는 모든 것이 한층 규모가 커졌습니다. 매저녁 150명이 넘는 참여자가 무대 앞뒤에서 움직입니다. 여기에 말 30마리, 코그선 4척, 독수리, 그리고 자체 스턴트 팀까지 더해집니다. 힉 가족은 매년 최신 슈테르테베커 작품에 수백만 유로를 투자합니다. 배우든 무대 뒤 조력자든, 이 축제는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뤼겐의 중요한 고용주로 자리 잡았습니다. 내년에도 해적들은 무대 안팎에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선보이며 그 전설을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