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뫼케른 전투, 1813년 10월 16일: 라이프치히 전투의 운명을 가른 첫날 격돌

뫼케른 전투, 1813년 10월 16일: 라이프치히 전투의 운명을 가른 첫날 격돌

1813년 10월, 연합군이 세 개의 축에서 나폴레옹이 지키던 라이프치히 중심 진지를 압박하면서, 황제가 적군을 분리·격파하기를 바라는 일련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10월 14일 라이프치히 남쪽에서 벌어진 리베르트볼크비츠 전투에서 무라트가 패배한 뒤, 북쪽으로 진격해 오던 블뤼허 원수의 슐레지엔군 — 여기에는 요르크 장군의 프로이센 군단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 는 10월 16일, 뫼케른(Möckern) 마을 인근의 평탄한 고원에 주둔한 프랑스군과 정면으로 마주쳤습니다. 그곳에는 담브로프스키의 폴란드군 지원을 받는 마몽 원수의 부대가 적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프랑스군과 프로이센군이 집집마다 사투를 벌이는 가운데, 거리에서 벌어진 잔혹한 백병전이 이 전투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최초의 프로이센 공격을 지휘한 폰 힐러 사령관은 그날 군대를 고무시킨 열정을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마을을 공격했습니다. 모두가 적과의 싸움에 열의를 갖고 있었고, 내가 그날 독일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선언하자 병사들은 큰 환호를 지르며 쓰러진 전우들의 시신 위로 전진했습니다. 나는 예비대인 서프로이센 척탄병대를 투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병사들의 모든 분노와 용기에도 불구하고, 집안에 웅크린 적 대대의 사격을 잠재우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럼에도 적군이 전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나는 부하들의 용기를 믿고 돌진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나머지 군단 여단의 진격을 지켜보았습니다."

뫼케른 전투에서 연합군의 수적 우위는 마몽 원수의 병력에게 큰 타격을 안겼습니다. 대포병 진지 한가운데서 탄약 마차가 폭발하면서 상당수의 프랑스 대포가 손실되었고, 이 혼란을 틈타 프로이센군은 진지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마몽은 백병전에서 부상을 입어 오후 늦게 전선을 이탈해야 했습니다. 양측 모두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뫼케른 전투, 1813년 10월 16일: 라이프치히 전투의 운명을 가른 첫날 격돌

블뤼허의 뫼케른 도착은 나폴레옹의 전투 계획에도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10월 16일, 나폴레온은 라이프치히 남쪽 바하우 지역에서 보헤미안 군대를 상대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 위해 병력을 집중시켰습니다. 바하우 전투는 그날과 다음 날까지 격렬하게 이어졌지만, 프로이센군이 북쪽에 주둔하면서 병력 일부가 그쪽으로 전환되자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은 나폴레옹의 공격을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끔찍한 라이프치히 전투는 앞으로 3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