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1월 16일 정오 무렵, 파란색 조깅복 차림의 한 남자가 프리드리히스루(Friedrichsruh) S반 역 근처에 녹색 자전거를 잠그고 내렸습니다. 겉보기에는 함부르크 동쪽 작센발트(Sachsenwald)에서 조깅을 즐기려는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남자는 사람 드문 오솔길을 벗어나 전나무 숲 깊숙한 곳으로 들어섰고, 땅속에 숨겨진 구멍 가장자리에서 덫이 '찰칵' 소리를 내며 닫히는 순간 그의 행방은 좁혀졌습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과 함부르크 경찰이 공동으로 추적해 온 적군파(RAF) 테러리스트 크리스티안 클라르(Christian Klar)의 체포 순간이었습니다.
Christian Klar, 며칠 새 세 번째 RAF 체포
이는 우연한 단독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인 같은 해 11월 11일, 연방형사경찰청(BKA)은 프랑크푸르트 인근 중앙 테러 은신처에서 RAF 회원 브리짓 몽하우프트(Brigitte Mohnhaupt)와 아델하이트 슐츠(Adelheid Schulz)를 체포한 바 있습니다. 경찰은 두 여성에게서 1982년 10월 말 프랑크푸르트 시립 숲에서 발견된 부지 계획도의 암호 해독 키를 확보했고, 그 지도에는 작센발트의 지구 은신처 '다프네(Daphne)'도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이 은신처에는 위조 여권 90여 장과 다수의 무기, 그리고 1만 마르크가 넘는 현금이 보관되어 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새로운 적외선 기술로 추적 성공
함부르크 인근 광대한 산림 지역에서 경찰 특수부대는 극도의 주의를 기울였고,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체온 감응식 적외선 탐지기를 활용했습니다. 특수부대 장교들은 기지에서 떨어진 매복 지점에서 며칠간 대기한 끝에, 11월 16일 오후 1시 15분경 울린 탐지기 신호를 포착합니다. "손 들어!"라는 외침에 클라르는 즉시 땅바닥에 엎드렸고, 저항 없이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마르틴 바바로사 비만트(Martin Barbarossa Wymand)'라는 이름의 덴마크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으나, 지문 대조 결과 그의 신원은 크리스티안 클라르임이 확인되었습니다.
당시 30세였던 클라르는 몽하우프트, 그리고 여자친구이기도 했던 슐츠와 함께 이른바 'RAF 2세대'의 수장으로 간주되며, 1977년 '독일의 가을'로 불린 살인·공격 사건들에 깊이 연루된 것으로 강하게 의심받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그에게서 장전된 상태로 안전장치가 풀린 권총을 발견했습니다. 체포 직후 근처에 또 다른 인물이 머물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작센발트 통제 구역 수색이 실패하면서 체포된 인물은 클라르 혼자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함정에 빠진 이유, 부주의인가 의도인가
클라르가 왜 들통난 은신처 방문이라는 고위험을 감수했는지는 지금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당시 쿠르트 레프만(Kurt Rebmann) 연방검찰총장은 "'정교한' 범죄 이력을 지닌 전직 테러리스트 치고는 놀라운 실수"라며 "RAF 은신처의 코드 위치 지도가 노출된 이상, 정상적인 판단이라면 함부르크 은신처를 절대 방문해서는 안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수사관들은 클라르의 심리적 버팀목이 무너졌거나, 돈·여권·무기가 급하게 필요했는데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해석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연방검찰청과 BKA는 이번 연쇄 체포로 RAF 조직력이 크게 약화됐다고 평가했습니다.
9건의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
체포 후 함부르크에 구금됐던 클라르는 브루흐잘 교도소로 이송되었습니다. 1983년에는 슈투트가르트슈탐하임에서 열린 다른 RAF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습니다. 1985년 4월, 슈투트가르트 고등지방법원은 클라르에게 9건의 공동 살인과 11건의 살인 미수 혐의로 종신형 5번과 징역 15년을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그가 1977년 이후 RAF의 모든 행위에 관여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후 1992년 추가 재판에서 다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1997년 고등지방법원은 최소 26년간 복역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징병 거부자에서 RAF 테러리스트로
클라르가 처음 경찰의 주목을 받은 것은 1974년, 슐츠와 함께 함부르크 국제앰네스티 사무소를 점거하면서부터입니다. 이 행동은 RAF 수감자들의 수용 상태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려는 목적이었습니다. 프라이부르크 출생의 중산층 가정 아들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남에게 총구를 겨누고 싶지 않다"며 군 복무를 거부했고, 정치학과 철학을 공부하던 중 1976년 RAF에 합류해 독일에서 가장 수배되는 테러리스트 반열에 올랐습니다.
사면 신청과 논란 속 석방
클라르는 연방 대통령에게 두 차례 사면을 청원했습니다. 2003년 요하네스 라우(Johannes Rau), 2007년 호르스트 쾰러(Horst Köhler)에게 각각 신청했으며, 쾰러 대통령은 직접 면담까지 진행했지만 두 대통령 모두 사면을 거부했습니다. 26년 복역 끝에 2009년 초 석방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공개적인 논쟁이 일었습니다. 1998년 RAF 해산 때까지 조직에 잔류했던 클라르에 대해 비판자들은 반성과 잘못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2001년 TV 인터뷰에서 "상대방이 자신들의 감정을 갖도록 하고 그것을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그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혀 논란을 키웠습니다.
결국 크리스티안 클라르는 2008년 12월 19일 브루흐잘 교도소에서 석방되었습니다. 이 결정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1977년 RAF 동조자들이 '란츠후트(Landshut)'기를 납치해 모가디슈로 향할 당시 부조종사였던 위르겐 피토어(Jürgen Vietor)는 연방 공로십자 훈장을 반환했습니다.
출처: NDR.de, Janine Küh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