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시위로 탄생한 대학, 올덴부르크 대학교가 걸어온 40년의 기록

올덴부르크 대학교(University of Oldenburg)는 수많은 시위와 항의 끝에 비로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특별한 이력을 지닌 대학입니다. 이번 기념일은 1년간 이어지는 축제로 진행되며, 그 좌우명은 바로 "새로운 길을 향한 40년"입니다. 1960년대 초 니더작센주 북서부, 특히 올덴부르크와 오스나브뤼크 지역에서는 대학 설립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1971년 3월 1일, 주정부 법령에 따라 올덴부르크 대학교 설립을 위한 창립위원회가 공식 임명되었습니다. 주로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창립 작업에는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항의로 막아낸 긴축 조치

창립위원회에 주어진 과제는 어마어마했습니다. 학위 과정을 개발·설계하고, 행정 시스템과 기술 인프라, 실험실, 도서관 등을 계획하고 건설해야 했습니다. 1971년 구성된 창립위원회는 전원 남성 15명으로 시작되었으며, 2년 후에야 여성 2명이 추가로 선출되었습니다. 위원회의 작업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주정부의 예산 삭감 결정으로 약속되었던 일자리가 줄고 건설 사업이 연기되는 위기를 맞았지만, 대규모 시위 끝에 해당 삭감분을 되돌려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하노버까지: 확장 동결에 맞서다

1973년 첫 임시 이사가 임명되었고, 위르겐 뤼트예(Jürgen Lüthje)가 초대 총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5일, 대학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3년 후 라이너 크뤼거(Rainer Krüger) 총장은 새 건물 건설이 전면 중단될 것이라는 발표를 내놓아야 했습니다. 당시 도서관, 구내식당, 스포츠 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대학 구성원들은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1,600명이 넘는 학생과 교수진이 자전거를 타고 하노버까지 행진하며 4일간 확장 동결에 항의했고, 주의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우흘호른스베크(Uhlhornsweg) 중앙 캠퍼스의 건설은 1980년에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대학의 이름을 둘러싼 공방전

대학 명칭 문제 역시 순탄치 않았습니다. 저항 운동가 칼 폰 오시에츠키(Carl von Ossietzky)의 이름을 딴 교명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주정부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현판을 붙였다 떼어내는 등 수개월간의 공방이 이어졌고, 경찰 투입과 대규모 시위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öder, SPD) 총리는 훗날 오시에츠키의 딸에게 사과하기에 이릅니다. 현재 이 대학은 정식으로 '칼 폰 오시에츠키 대학교(Carl von Ossietzky Universität)'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올덴부르크: 95개 학과로 성장

대학의 규모는 꾸준히 확장되어 왔습니다. 1974년 4월 2,507명의 학생으로 첫 출발을 한 올덴부르크 대학교는 현재 약 12,700명의 학생이 95개 학위 과정에 재학 중인 대학으로 성장했습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컴퓨터 과학, 음향학, 재생에너지입니다. 또한 2012/2013년 겨울학기부터는 처음으로 인체의학(Humanmedizin) 학위 과정을 개설했습니다. 유럽 의과대학(European Medical School)은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Rijksuniversiteit Groningen)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12학기 안에 국가고시를 통과해야 합니다. 취득한 네덜란드 석사 학위는 유럽연합(EU) 전역에서 의료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