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6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첫 출판 면허를 받아 베를린에서 아우프바우 출판사(Aufbau Verlag)가 설립됐다. 소련 점령구 내 독일 출판사로 시작한 이 출판사의 궤적과 그 소속 작가들의 삶은 점령지에서의 삶부터 분단 독일, 그리고 통일 후에도 온전히 통합되지 못한 독일의 역사를 고스란히 비추고 있다. 독일 문학 연구자이자 평론가인 콘스탄틴 울머(Konstantin Ulmer)가 펴낸 『마음을 다해 보답받을 만한 것에 바쳐라: 아우프바우 출판사사 1945-2020』는 이 파란만장한 75년의 역사를 조명한다.
폐허 위에서 싹튼 '건설'의 의지
1945년 여름, 베를린은 잿더미가 됐다. 하지만 다흘렘(Dahlem) 고급 주택가에서는 파괴가 덜했다. 그곳, 클라우스 기지(Klaus Gysi), 쿠르트 빌헬름(Kurt Wilhelm), 하인츠 빌만(Heinz Willmann), 오토 실레(Otto Schiele) 네 사람이 실레의 아파트에 모여 공증인 입회하에 유한책임회사(GmbH)를 설립했다. 회사 이름 '아우프바우(Aufbau, 건설/재건)'는 그 자체로 프로그램이자 호소이자 희망이었다. 설립 문서에 도장이 찍히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은 역사의 각주다. 나치의 상징인 슈바스티카가 새겨진 구 제국 독수리 도장은 수명을 다했고, 새 도장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련 점령구 독일 출판사에서 동독 최대 문학 출판사로
울머는 출판사 역사를 독일-독일 역사와 밀접하게 연계해 9개 장으로 서술한다. 아우프바우 출판사는 문화연맹(Kulturbund) 산하 기관으로 출발해 훗날 동독(DDR) 최대 문학 출판사로 성장하지만, 1945년 설립 당시 동독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1949년 동독 건국 전까지 아우프바우는 소련 점령구 내 독일 출판사였다.
나치 망명 작가들의 작품이 첫 주축을 이루다
초기 출판 프로그램의 핵심은 나치 집권 후 망명해야 했던 작가들의 문학이었다. 하지만 독일 고전도 함께 출간됐다. 첫 타이틀들은 하인리히 하이네의 『독일. 겨울동화』, 테오도르 플리비에르(Theodor Plievier)의 『스탈린그라드』, 안나 제게르스(Anna Seghers)의 『제7의 십자가』였다.
출판사 역사상 첫 간행물(1번)은 설립 2주 후 조판에 들어간 소책자였다. 『독일의 민주적 갱신을 위한 문화연맹 선언』. 설립 호소문과 1945년 7월 4일 베를린 라디오 홀에서 열린 설립 대회 연설들이 실린 40쪽 분량이다. 5만 부가 인쇄됐다는 사실은 이 선언의 문화정치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5만 명의 독자가 독일의 전쟁 죄책, '독일 영혼을 위한 투쟁', 히틀러가 남긴 '끔찍한 어둠' 속으로 문화연맹이 들고자 했던 빛에 대해 읽었다.
SED의 강한 영향력과 편집진의 자율성 투쟁
울머의 저작이 가치 있는 이유는 100점 이상의 삽화와 역사적 문서를 수집해 출판사 역사를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46년 독일사회주의통일당(SED) 창당과 동독 건국 이후 수십 년간 아우프바우의 방향은 SED의 요구에 크게 좌우됐다. 다만 직원들은 타이틀 선정과 콘텐츠 지향에서 더 많은 자율권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했다.
한스 팔라다, 출판사의 얼굴 되다
그라이프스발트 태생의 한스 팔라다(본명 루돌프 디첸)는 아우프바우 출판사의 대표적 작가다. '가난한 사람들의 작가'라 불린 그는 1932년 『소시민 빌헬름』으로 세계적 성공을 거두고, 아내 안나를 모델로 한 '어린 양' 캐릭터로 기념비를 세웠다. 인세로 메클렌부르크 카르비츠에 집을 사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다. 전쟁이 끝나고 출판사가 설립된 1945년, 인근 펠트베르크 시장을 잠시 맡기도 했다. 유작 『누구도 타인을 위해 죽지 않는다』는 1947년 검열·삭제판으로 아우프바우에서 출간됐고, 2011년 무삭제 신판이 나오며 30만 부 이상 팔리는 르네상스를 맞았다.
서독 개방: '정치적 지진의 진원지'
1950년 발터 얀카(Walter Janka)가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울머의 표현을 빌리면 '확신에 찬 당파'였던 그는 1936년 스페인 내전 때 국제여단에 참여했다. 1945년만 해도 국가의 영향력과 감독을 옹호했던 그가 1953년 사장이 되면서 서독 및 국제 작가들에게 문을 열고 문학적 교류를 추진했다. 하지만 1956년 폴란드와 헝가리의 개혁 시도로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얀카는 1956년 12월 체포돼 1957년 반혁명 음모와 보이콧 선동죄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울머에 따르면 출판사는 '출판사 DNA에 각인된 정치적 지진의 진원지'가 됐다. 얀카는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복권됐고, 회고록이 1993년 아우프바우에서 출간됐다.
클라우스 기지 체제와 기지 남매의 회고
얀카에 이어 클라우스 기지가 경영을 맡았다. 이번 기념 시리즈에 포함된 『우리 아버지. 한 대화』에서 기지 남매가 아버지를 회고한다. 기자 한스-디터 슈트가 묻고, 배우 가브리엘레 기지와 좌파 정치인 그레고어 기지가 답한다. 미터 단위 책장이 가득한 집, 미국·남아공·영국·벨기에·프랑스에서 온 손님들, 그리고 출판사 사장, 동독 문화장관, 이탈리아 대사, 교회담당 국무비서로 이어진 아버지의 삶이 20세기의 극단을 비춘다.
분단 독일의 작가들과 검열의 그늘
울머의 책은 서독 문학의 동독 반입 과정과, 1934년 포메른 카민 태생이자 퀴스트로 자란 우베 욘슨(Uwe Johnson)의 『야콥에 대한 추측』이 동독에서, 아우프바우에서조차 출간될 수 없었던 이유를 다룬다. 민주적 개혁, 동과 서, 슈타지, 자살을 다룬 이 소설 때문에 '분단 독일의 작가'로 불리는 욘슨은 1959년 서베를린으로 이주했다. 그는 이를 '동독 탈출'이라 불렀다. 동독 시민권을 반납했지만, 1984년 영국 시어니스온시에서 조기 사망할 때까지 메클렌부르크를 떠날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크리스타 볼프와 비어만 추방 항의
란츠베르크 태생, 메클렌부르크에서 자란 크리스타 볼프(Christa Wolf)도 아우프바우 작가다. 욘슨이 동독을 떠난 후에도 교류를 이어가 클라인마흐노우의 볼프 집을 욘슨이 예고 없이 방문하곤 했다. 1976년 쾰른 콘서트 후 볼프 비어만(Wolf Biermann)이 추방되자 볼프는 항의 성명에 서명한 작가들 중 한 명이었다. 2010년 메클렌부르크 문학회가 수여하는 우베 욘슨 상을 수상했다.
장벽 붕괴, 금서, 그리고 파산 위기에서 재기까지
울머의 책은 75년 독일사를 아우른다. 베르너 브로이니히(Werner Bräunig)의 『유원지』처럼 동독에서 출간 금지를 당한 소설들, 베를린 장벽 붕괴와 통일 시대의 출판사사를 다룬다. 통일 후 재편 과정과 독일 통일에 따른 환상, 재정 위기와 파산, 그리고 베를린 모리츠플라츠 새 사옥 입주까지의 부침도 담겼다.
아우프바우는 독자적 역사를 가진 출판사로, 통일 30년 후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듯하다. 자신의 기원을 알고, 잘못된 길에서 배우고, 새로운 도전에 맞설 줄 아는 출판사. 1945년 8월 아우프바우의 시작에는 폐허가 있었다. 75년이 지난 지금 남은 것은 책들, 그리고 더 많은 책이 뒤따를 것이라는 확신이다.
75주년 기념 프로그램
아우프바우 출판사는 여러 신간과 낭독회로 75주년을 기념한다. 그중에는 대표 작가 한스 팔라다의 소책자 『사랑하는 젊은 친구들에게』가 포함돼 있다. 팔라다가 세 자녀에게 보낸 편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