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로마 제국을 지켰지만 '실업자'로 생을 마감한 막시미아누스 황제

로마 제국을 지켰지만  실업자 로 생을 마감한 막시미아누스 황제

막시미아누스 황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세운 전제정치(도미나투스) 체제 안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보좌하며 사두정치(테트라르키아)를 실현시킨 인물입니다. 동양에서는 그의 인지도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사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테트라르키아를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막시미아누스 덕분이었습니다. 그 점을 고려하면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막시미아누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제2의 황제

막시미아누스의 젊은 시절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습니다. 다만 판노니아 출신이며, 아우렐리아누스, 프로부스, 카루스 휘하에서 군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 정도입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로 즉위하자마자 막시미아누스는 부제(副帝)로 임명됩니다. 이러한 배경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 자신은 뛰어난 군사 지휘관은 아니었기 때문에 유능한 군인인 막시미아누스를 부제로 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여겨집니다.

막시미아누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기대에 부응해 이민족을 성공적으로 격퇴했고, 부제가 된 이듬해에는 정제(正帝)로 승격됩니다.

다만 이것이 대등한 공동 통치였던 것은 아닙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신들 가운데 최고신인 유피테르에, 막시미아누스는 헤라클레스(제우스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그리스 신화의 영웅)에 각각 동일시되면서 서열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테트라르키아와 군사적 재능

아마도 로마 제국이 너무 광대하여 두 사람만으로 통치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절반으로 나뉜 제국을 다시 둘로 나누어, 네 명의 황제가 통치하는 테트라르키아 체제를 실현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대단한 점은 생각에 그치지 않고 이를 실제로 실행에 옮겼다는 데 있습니다. 막시미아누스는 제국 서부를 담당했는데, 게르마니아, 브리타니아, 북아프리카를 오가다 보면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제국을 지켰지만  실업자 로 생을 마감한 막시미아누스 황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시미아누스는 충실히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북방에서는 게르만족의 주류인 부르군트족과 알레만니족을 여러 차례 격파했고, 브리타니아에서 일어난 반란은 즉시 진압했으며, 히스파니아에서 세력을 키우던 무어인을 격파하고, 각지에서 날뛰던 산적들을 소탕했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도미나투스 행정으로 인한 세금 부담에 시달렸지만, 이로 인해 영토가 황폐해지지는 않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또한 서방의 부제로 임명된 콘스탄티우스에게 자신의 재혼 상대의 딸 테오도라를 시집보내 관계를 공고히 하고, 게르만 방면은 주로 그에게 맡긴 채 자신은 아프리카 남부 전선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퇴위할 때 함께 물러났습니다.

막시미아누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예스맨이라 불릴 만한 인물이었지만, 기독교 박해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훗날 기독교가 로마에서 지배적인 종교로 자리 잡는 토대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늙은 병사는 죽지 않고, 다만 떠나지 않을 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퇴위 후 다시 제위로 돌아가지 않았지만, 막시미아누스는 두 번이나 제위에 복귀하려 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테트라르키아의 붕괴가 있었습니다.

네 명의 황제가 나란히 서는 체제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있어야만 유지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정점을 잃은 네 황제는 서로 충돌하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황제는 네 명이 아니라 여섯 명으로 늘어났고, 피로 물든 로마의 내전이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막시미아누스의 아들 막센티우스는 황실의 혈통에도 불구하고 정제도 부제도 될 수 없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퇴위할 때 다른 인물을 후계자로 지명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처지의 막센티우스는 소외된 로마 원로원과 손잡고 황제임을 선언했지만, 정당성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때 황제였던 아버지 막시미아누스를 다시 앞세우려 합니다.

막시미아누스가 귀여운 아들을 위해 폭주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다시 군대를 이끌고 다른 황제들을 격파하는 한편, 콘스탄티우스의 뒤를 이은 콘스탄티누스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 결속을 강화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변수가 등장합니다. 은퇴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그를 직접 카룬툼으로 불러내 제위에서 물러날 것을 명령한 것입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충실한 예스맨이었던 막시미아누스는 이에 따라 제위를 내려놓습니다.

퇴위한 막시미아누스는 사위 콘스탄티누스 곁에서 갈리아로 은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황제 즉위를 선언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품은 콘스탄티누스와 싸웁니다.

결과는 콘스탄티누스의 승리였고, 막시미아누스는 현재의 마르세유인 마실리아로 도피하지만 현지 주민들에게 콘스탄티누스에게 넘겨지고 맙니다.

포로가 된 막시미아누스는 모든 권력을 빼앗기고 은둔 생활을 강요당했지만, 그래도 황제로 복귀하겠다는 야심을 버리지 못하고 콘스탄티누스 암살을 계획합니다.

그의 계획은 친딸 파우스타에 의해 남편 콘스탄티누스에게 고발되었고, 그는 즉시 체포됩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막시미아누스가 자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과연 그가 정말 자살했는지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막시미아누스 황제에 대한 평가

군사적 재능만 놓고 보면 그는 로마 역사상 최고 수준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듭했고, 로마의 최대의 적이라 할 수 있는 게르만족 상대로만 무려 다섯 번 승리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전제정치 아래에서 테트라르키아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막시미아누스의 성실함과 군사적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제로 막시미아누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신뢰를 배신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이토록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일까요?

생각해 보면, 한때 '5현제'로 불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콘모두스를 후계자로 삼은 것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후계 문제로 내전이 일어날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실제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퇴위 후 로마는 즉시 내전 상태에 빠졌고, 후계자로 지명받지 못한 막센티우스가 테트라르키아를 무너뜨렸습니다.

그 결과 막시미아누스는 내전에 휘말려, 결국 친딸의 밀고로 사위 콘스탄티누스에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자살이라 발표했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애초에 막시미아누스는 왜 콘스탄티누스를 공격했을까요? 필자는 교활한 콘스탄티누스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지배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제거하고 숙청했습니다. 그것이 설령 가족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아, 로마 제국의 부흥에 평생을 바친 남자가 자신의 혈육에 의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되다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막시미아누스… 무자비한 자식들 때문에 말년을 더럽히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되풀이해 온 역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