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함부르크 최초의 백화점, 헤르만 티츠에서 알스터하우스까지의 125년

125년 전, '헤르만 티츠 백화점(Warenhaus Hermann Tietz)'이 함부르크 최초의 근대적 백화점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이곳은 유대인 창업자의 강제 몰수, 알스터하우스(Alsterhaus)와 헤르티(Hertie) 그룹의 탄생 등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게 됩니다.

글: 다니엘 슈프렝거(Daniel Sprenger), NDR.de

4개 층으로 이어지는 높은 아트리움과 곡선형 계단, 정교한 장식으로 꾸며진 내부—1897년 3월 1일, '헤르만 티츠 백화점'은 바로 이런 모습으로 첫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일상생활은 물론 특별한 날에 필요한 상품과 세계 각지의 물건들을 한곳에 모아 선보이며, 19세기 말 소비 문화에 새로운 기준을 세웠습니다.

도시 최초의 근대적 백화점은 시청 뒤편 대각선 자리, 니콜라이플리트(Nikolaifleet) 맞은편 그로서 부르스타(Großer Burstah)에 위치했습니다. 북부 독일에서 열린 헤르만 티츠 회사의 첫 번째 지점이었습니다. 이 그룹은 오스카 티츠(Oscar Tietz)가 삼촌 헤르만 티츠(Hermann Tietz)의 자본으로 설립했으며, 1882년 3월 1일 게라(Gera)에서 '헤르만 티츠 실·단추·금속장식·백색천·모직상점'이라는 이름으로 첫 가게를 열었습니다. 여기에는 이미 근대 백화점의 특징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정찰제 판매, 외상이나 흥정 불가, 다양한 업종을 아우르는 폭넓은 상품 구성 등이 그것입니다.

불과 15년 만에 융퍼른슈티크로 이전

개점 15년 만에 이 매장은 이전하게 됩니다.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번영하는 상업 도시의 한복판, 즉 융퍼른슈티크(Jungfernstieg)로 자리를 옮긴 것입니다. 이전 과정에서 원래 이름에 있던 두 번째 'a'는 사라졌습니다.

"1912년 4월 24일 헤르만 티츠 백화점이 문을 열었을 때, 그 소식은 즉시 도시 전체에 퍼져나갔습니다. 기존 티츠 지점도 이미 화려한 조명과 풍부한 상품으로 함부르크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 알스터하우스 사사(社史) 중에서

하지만 융퍼른슈티크의 새 백화점은 더욱 컸고, 상품 구성도 더욱 방대했습니다. 새 백화점은 빈알스터(Binnenalster)를 마주한 거리 한복판, 다시 말해 도시의 중심에 블록 하나만 한 폭으로 자리 잡았고, 높은 창면이 인상적인 건물이었습니다. 다행히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구조적으로 거의 무사히 넘긴 덕분에, 1936년부터 '알스터하우스'라는 이름을 달게 된 이 백화점의 파사드는 오늘날까지 110년 전 모습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파사드 뒤편에는 독일의 격동의 역사가 먼저 흔적을 남겼고, 이후에는 백화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벨트는 탄약 주머니로

융퍼른슈티크 백화점 개점 2년 후, 제1차 세계대전은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회사 안내책자는 "전쟁과 그 요구 사항이 상품 구성을 좌우했다"고 기록합니다. "보유한 모든 풀가죽 재고는 벨트와 탄약 주머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불, 야전침대, 말린 완두콩, 렌틸콩 등 보존성 있는 식품 전반은 군에 제공되어야 했습니다."

황금의 1920년대, 백화점은 다시 호황을 누립니다. 세계 대공황이 닥치기 전까지 '헤르만 티츠'는 독일 전역에 지점을 두고 유럽 최대의 자가 운영 백화점 그룹으로 성장합니다. 융퍼른슈티크의 백화점은 사치를 일상으로 만들었습니다.

"프랑스산 화려한 모자, 주문 제작 드레스, 순실크 파라솔, 동양산 러그, 책 등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고객들은 휴게실, 집필실, 열람실을 이용할 수 있었고, 신선한 고기와 민물·바닷물 생선, 과일, 세계 각지의 별미를 갖춘 놀라운 식품 코너도 있었습니다." — 알스터하우스 사사 중에서

나치 시대 강제 매각: '헤르티'의 탄생

그러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면서 유대인 기업가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고, 티츠 가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해, 독일 전역에 지점을 둔 백화점 체인은 은행 컨소시엄에 헐값에 매각됩니다. "당신의 백화점은 나치 정권의 정치와 경제 정책에 의해 체계적으로 파탄에 이르렀다"고 알스터하우스 사사는 적고 있습니다. 티츠 가문은 결국 해외로 피신합니다. 이후 백화점은 헤르만 티츠의 이름과 성의 약칭인 '헤르티(Hertie)'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고, 1936년부터는 '알스터하우스'로 명칭을 바꿉니다.

전쟁이 끝난 후, 티츠 가문의 상속인들은 자신들의 재산 반환을 요구합니다. 은행들이 임명한 새 헤르티의 수장 게오르크 카르크(Georg Karg)는 처음에 이를 거부하며 가족이 경제적 이유로 회사를 떠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양측은 합의에 도달하여 뮌헨, 슈투트가르트, 카를스루에의 지점을 가문에 돌려주기로 합니다. 알스터하우스는 1965년까지 헤르티의 본사 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수차례 리모델링과 왕실 방문

1970년대에는 인접 건물을 매입해 4천만 마르크를 들여 판매 면적을 1만 9,000㎡로 확장했습니다. 1983년에는 추가로 5천만 마르크를 투입해 내부를 전면 개조하고 새롭게 디자인했습니다.

4년 후, 알스터하우스는 75주년을 맞이합니다. 기념일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1987년 11월 6일 함부르크 방문 차 입국한 영국 왕세자 찰스(Prince Charles)와 다이애나 비(Diana)가 백화점을 방문한 것입니다. 왕실 부부는 이곳에서 '영국 위크(British Week)' 행사를 개막하며 영국 제품을 적극 홍보했습니다. 왕가의 모습을 한눈이라도 보려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융퍼른슈티크로 몰려들었습니다. 영국 국기 문양 스카프를 두른 알스터하우스 판매원들만이 특별석에서 왕실 부부를 가까이 볼 수 있었습니다. 찰스 왕세자에게는 한자 도시의 풍경을 담은 포트폴리오가, 다이애나 비에게는 집의 어린 왕자들을 위한 메키(Mecki) 인형 두 개가 선물로 전해졌습니다.

호황 뒤에 찾아온 적자, 그리고 반복된 인수

그러나 이렇게 높은 위상의 방문객조차 감출 수 없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경제 호황기의 붐과 끊임없는 지점 확장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중반부터 헤르티 그룹의 매출은 급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결국 1993년 카르슈타트(Karstadt) 그룹이 헤르티 그룹과 함께 알스터하우스를 인수합니다. 이후 또 한 차례의 개조를 거쳐 2005년까지 판매 면적은 2만 4,000㎡로 늘어났습니다. 2006년에는 뮌헨의 오버폴링거(Oberpollinger), 베를린의 카데베(KaDeWe) 등 그룹 산하 두 고급 백화점과 통합되어 카르슈타트 프리미엄 GmbH(Karstadt Premium GmbH)로 편입되었습니다.

2010년에는 니콜라스 베르크루엔(Nicolas Berggruen)이 카르슈타트 그룹을 인수했고, 2014년에는 오스트리아 출신 억만장자이자 부동산 투자자 르네 벤코(René Benko)가 이끄는 시그나 홀딩(Signa Holding GmbH)이 카르슈타트 프리미엄 GmbH의 지분 대부분을 매입했습니다. 이 세 고급 백화점은 이후 '카데베 그룹(The KaDeWe Group)'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됩니다. 2015년 6월에는 또 한 번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이탈리아 백화점 그룹 라 리나센테(La Rinascente)가 벤코로부터 50.1%의 지분을 인수한 것입니다.

8천만 유로 들인 대대적인 단장

2016년부터는 수년에 걸쳐 8천만 유로를 들여 다시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관계자는 "알스터하우스가 나이를 먹어 새 단장이 필요했다"고 말했습니다. 럭셔리 브랜드와 매력적인 입구로 새로운 고객층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융퍼른슈티크 개점 110년이 지난 지금, 알스터하우스는 여러 차례의 리프팅과 다양한 주인 교체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함부르크의 상징적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다만 오늘날 옛 '헤르만 티츠 백화점'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로서 부르스타에는 장난기 어린 건축 양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며, 1897년 그 소비의 신전이 서 있던 자리에는 현재 함부르크 저축은행(Hamburger Sparkasse)의 담백한 기능주의 건물이 들어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