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북해 연안을 삼킨 첫 번째 마르셀루스 홍수(1219년): 목격자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폭풍 해일 참사

지금으로부터 약 800년 전인 1219년, 북해 연안을 덮친 첫 번째 마르셀루스 홍수(Marcellusflut)는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였습니다. 동시에 폭풍 해일의 참상을 목격자의 시선 그대로 기록으로 남긴, 역사상 최초의 재난이기도 합니다.

작성자: 아이린 알텐뮐러(Irene Altenmüller)

1219년 1월, 프리슬란트(Friesland)의 북해 연안에는 며칠째 남서쪽에서 가벼운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월 16일, 성 마르셀루스 축일 정무렵, 온화하던 바람은 거센 우박을 동반한 폭풍으로 돌변합니다. 이는 북해 해안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폭풍 해일의 서막이었으며, 그 첫 번째 기록이 바로 전해 내려오는 목격자 보고서입니다.

"이 발사체(우박을 가리킴 — 편집자 주)로 무장한 피에 굶주린 남서풍은 바다와 육지의 불쌍한 인간들을 잔혹하게 찢어발기고 멸망시켰다."

성직자 에모 폰 비테비룸(Emo von Wittewierum)은 프리슬란트 연대기에서 첫 번째 마르셀루스 홍수의 시작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바다는 끓는 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우박은 더 큰 재앙의 전조에 불과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폭풍은 방향을 북서쪽으로 틀었고, 마침 뜬 보름달이 대조기(春潮, spring tide)를 만들어냅니다. 그 결과 유례없는 폭풍 해일이 발생합니다. 제방이 있는 곳이라 해도 자연의 맹위를 막아설 힘은 없었습니다. 에모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바다는 끓는 물처럼 쏟아져 나와 프리슬란트 해안을 범람시켰고, 해안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것처럼 무참히 휩쓸렸다. 물난리는 가난한 이들의 집을 앗아갔고, 부자들의 저택을 습격했다." 엄청난 물살은 "집을 떠받치는 기둥이 씻겨 나가 무너질 때까지" 맹렬히 몰아쳤습니다.

용어 설명: 대조기(spring tide)

대조기는 조석이 특별히 높아지는 시기를 가리키며, 보름과 초승달 때 나타납니다. 이때는 조석에 영향을 미치는 달·태양·지구가 일직선상에 놓여, 달이 만드는 조석력과 태양의 조석력이 서로 겹쳐 증폭됩니다. 반면 천체들이 다른 배열을 이루는 경우에는 두 조석력이 서로 상쇄되어 조차(潮差)가 작아집니다.

지붕 위로 피신한 사람들

마르셀루스 홍수 이후로도 1717년 크리스마스 홍수를 비롯해 수많은 폭풍 해일이 북해 연안을 강타했습니다. 여기에는 당시의 그림이 함께 소개됩니다.

사람들은 홍수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내버려졌습니다. 어떤 이들은 집 지붕 위로 피신한 채, 가축과 소지품을 구하려던 이들이 익사하는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른 이들은 들보나 짚더미에 매달린 채 "마치 바다 생물인 것처럼" 파도에 휩쓸려 갔습니다.

추정에 따르면 마르셀루스 홍수로 오늘날 슐레스비히-홀슈타인(Schleswig-Holstein) 지역의 서해안에서만 약 1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현재의 네덜란드에 해당하는 서프리슬란트(West Friesland)는 특히 심각한 피해를 입어, 최대 4만 명이 추가로 희생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다만 당시 연대기 작성자들이 기록한 수치는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의 형벌로 해석된 마르셀루스 홍수

역사가들은 연대기 작가이자 훗날 비테비룸(Wittewierum) 수도원의 원장이 된 에모가 흐로닝언(Groningen) 인근에서 이 폭풍 해일을 직접 경험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의 생생하고 상세한 묘사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아마도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에모 역시 연대기 속에서 이 재앙을 하나님의 형벌로 해석했는데, 자연재해를 이렇게 받아들이는 관점은 중세 시대에 지극히 흔한 것이었습니다.

정확히 143년 뒤에 닥친 두 번째 마르셀루스 홍수는 한층 더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번에도 자신들의 죄악된 행위 탓에 홍수가 덮쳤다고 여겼습니다. 이 두 번째 홍수는 '그로테 만드렝케(Grote Mandränke)'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았으며, 확실하지 않은 사료에 따르면 약 100,000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전설적인 도시 룽홀트(Rungholt)를 비롯한 섬과 도시 일부는 영원히 바닷물 속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