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 조합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중세 시대 해상 무역은 항구 도시들의 번영을 이끌었고, 여기에 참여한 상인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1280년경 북독일에서 경제적 전성기가 열렸습니다. 바로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시대였습니다. 도시 연합체는 느슨한 상인 이해집단에서 출발해 발전했습니다. 뤼베크(Lübeck) 상인들의 주도 아래 북해와 발트해 연안의 항구 도시들과 내륙 상업 도시들을 연결하는 경제 네트워크가 구축되었습니다. '한자(Hanse)'라는 명칭은 1282년경 영국에서 활동하던 독일 상인들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한자동맹에는 특정한 창설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약 200개 도시를 아우르는 무역 제국
전성기였던 당시 북해와 발트해 연안의 약 200개 도시가 한자동맹에 가담했습니다. 뤼베크, 브레멘, 함부르크, 로스토크부터 쾨니히스베르크와 단치히, 그리고 두더르슈타트, 하멜른, 울첸 같은 내륙 도시까지 모든 주요 상업 도시가 포함되었습니다. 물자는 대개 발트해를 통해 이동했습니다. 목재, 모피, 곡물 등 원자재는 서유럽으로 향했고, 포도주와 직물 같은 완제품은 발트해 동부 연안으로 운송되었습니다. 이 조직은 막강한 경제 강자로 성장했으며, 16세기에는 무역망이 포르투갈에서 러시아까지, 스칸디나비아에서 남부 이탈리아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코그선에 실린 한자의 물자
코그선(항구 축제에서 볼 수 있는 복원선)은 건조가 쉬웠지만 순풍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한자동맹의 대표적인 무역선은 코그(cog)선이었습니다. 통통하고 넓으며 빠르게 지을 수 있는 배로, 하나의 돛대에 사각형 돛을 달아 추진했습니다. 무역품이 목적지 항구에 하역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선박들은 거의 항상 육안으로 해안선이 보이는 범위 내에서 항해했습니다. 뱃사람들은 순풍을 기다려야 했는데, 코그선은 역풍을 뚫고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코그선 위의 작업은 고되었고 엄격한 계급 질서가 지배했습니다. 갑판 노동자들은 베테랑 선원들이 하기 싫어하는 모든 잡일을 떠맡는 '최하급 인력'이었습니다.
양극화된 사회: 상인과 일용직 노동자
항구 도시의 상인들은 성장하는 원거리 무역의 수혜자였습니다. 이들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반면 항구에서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렸고, 대부분은 초라한 목조 주거지에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곳의 유일한 광원은 활활 타는 화덕과 지붕의 구멍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끼 식사조차 얻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습니다.
뤼베크: 발트해 무역의 관문
뤼베크의 홀스텐 문(Holstentor)은 시민들의 부와 한자동맹의 권력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발트해로 직접 통하는 뤼베크는 한동안 한자동맹의 중심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이 도시의 선주와 선원, 시민과 상인들은 최고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1356년부터 수많은 동맹 회의가 뤼베크 시청에서 열렸습니다. 약 70개 한자 도시가 이른바 '한자의 날(Hansetag)'에 참여했습니다. 뤼베크는 함부르크와의 협력을 통해 더욱 큰 힘을 얻었습니다. 발트해권을 향한 함부르크의 물류는 트라베 강변의 이 도시를 통해 흘러갔고, 함부르크는 북해에서 자체 선박을 운항했습니다.
원거리 무역이 한자 도시를 먹여 살리다
한자 도시들은 무역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원거리 무역을 통해 물자 공급도 점차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한자의 선박과 마차는 모피와 직물은 물론 성장하는 도시 인구가 의존하던 각종 식량도 실어 날랐습니다. 곡물과 생선, 소금, 버터, 저장육은 물론 포도주와 맥주까지 코그선의 화물에 포함되었습니다. 수천 톤의 화물이 사람의 손으로 배에 실렸습니다.
바다의 산적, 해적
상선에 닥친 커다란 위협은 폭풍만이 아니었습니다. 해적들도 있었으니까요. 이들은 북해와 발트해에서 한자 선박을 발견할 때까지 매복하고 있다가, 값진 전리품을 챙겨 떠나기 전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목숨조차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해적은 단순한 무리와 범죄자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몰락한 귀족들도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14세기에는 덴마크와의 왕위 분쟁에서 메클렌부르크 공작에게 사략 면허를 받은 전투 세력으로까지 성장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해적은 비탈 형제(Vitalienbrüder)입니다. 이들은 '리케딜러(Likedeeler)', 즉 모든 전리품을 서로 똑같이 나누는 자들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중세의 엄격한 신분 질서와 달리 이들은 평등한 권리를 가진 형제단을 이루었습니다. 전설적인 클라우스 슈퇴르트베커(Klaus Störtebeker) 역시 리케딜러의 일원이었습니다.
한자동맹, 해적 소탕에 나서다
한자동맹은 오랫동안 해적 앞에 무력했지만, 1400년 4월 한자 도시들이 연합하여 반격에 나섰습니다. 코그선 11척에 무장 병력 950명을 태운 함대가 함부르크에서 출발해 비탈 형제 소탕에 성공했습니다. 1401년에는 함부르크인들이 클라우스 슈퇴르트베커마저 붙잡는 데 성공했고, 그는 얼마 후 함부르크에서 처형되었습니다.
17세기, 쇠퇴의 길을 걷다
이후 수세기에 걸쳐 동맹은 급속히 그 중요성을 잃어갔습니다. 다른 나라 상인들이 무역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국익이 국제적 연합의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1669년의 한자의 날은 단 9개 도시만 남은 가운데 열렸으며, 옛 한자동맹의 마지막 회의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새로운 한자동맹의 탄생
1980년 네덜란드 즈볼레(Zwolle)에서 현대판 한자동맹이 창설되었습니다. 옛 한자동맹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도시 연합체입니다. 2016년 기준 16개국 187개 도시가 가입해 있으며, 그중 대다수는 독일 도시입니다. 동맹은 매년 회원 도시 중 한 곳에서 한자의 날을 개최합니다. 새로운 한자동맹은 문화·학술·사회 분야의 교류를 촉진하고 회원 도시 간 경제 및 상업 접촉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