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잔티움 제국 최대의 악몽, 알레포의 에미르
서기 938년부터 967년까지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의 가장 무서운 적은 단연 알레포의 에미르, 유명한 사이프 알다울라였습니다. 그는 오늘날 시리아 일대에서 공포 그 자체로 여겨졌으며, 감히 비잔티움 영토 깊숙이 쳐들어가는 대담한 공격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사이프 알다울라는 광신적인 무슬릉으로, '불신자들의 땅'에 성전(지하드)을 전파하겠다는 사명감에 불타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실제로 알레포 에미르가 된 순간부터 그는 매년 수개월에 걸친 원정을 감행해 비잔티움 영토를 유린하고, 주민들을 학살하며, 수천 명의 무고한 백성을 노예로 끌어갔습니다.
953년에는 터키-시리아 국경 인근의 게르마니케이아에서 바르다스 포카스가 이끄는 비잔티움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바르다스 포카스가 이후 두 차례 더 시도한 작전 역시 비잔티움에게 참담한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955년, 운명의 톱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역사에 남을 비잔티움의 지휘 삼총사
바르다스 포카스가 물러나자, 이 지역에는 뛰어난 인물 셋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니케포로스 포카스, 그의 동생 레온 포카스, 그리고 조카 요안니스 치미스키스입니다. 새로운 비잔티움 지휘부는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태세를 과감히 버리고, 아랍인들의 약탈에 대해 적 영토를 향한 똑같이 파괴적인 보복 공격으로 화답했습니다.
끝까지 이어진 연속 타격
955년 말, 알다울라는 다음 해 봄 제국에 대한 새로운 원정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목표는 아미다(오늘날 튀르키예 디야르바키르)와 메소포타미아 서쪽 지역인 '알자지라'의 비잔티움 진지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에미르는 비잔티움 영토를 침공해 닥치는 대로 파괴한 뒤, 흡족한 마음으로 귀국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소수 병력으로 자신을 추격하는 치미스키스를 계산에 넣지 못했습니다. 치미스키스의 부대는 비잔티움군 주력이 아니라 미끼였던 것입니다.
치미스키스가 정면에서 아랍군을 끌어당기는 동안, 레온 포카스는 알레포 에미리국 영토로 침입해 알다울라가 후방에 남겨둔 군대를 격파했습니다. 한편 알다울라는 폭우 속에서 라반 요새 근교의 치미스키스를 공격했으나 패배했고, 자국에서 벌어진 참사도 모른 채 후퇴를 거듭해야 했습니다. 결국 아랍 장군은 전술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전략적으로는 완패한 셈입니다.
957년에는 니케포로스 포카스가 하다트 요새를 함락했습니다. 타우루스 산맥의 해발 1,000m 고지에 자리한 이 요새는 '독수리 둥지'라 불릴 만큼 난공불락이었지만, 니케포로스는 완전히 파괴해 버렸습니다. 이듬해 봄에는 치미스키스가 알자지라로 진격해 아미다 인근에서 알다울라 군을 상대로 화려한 대승을 거두었는데, 이 전투에서 아랍군 병력의 75%가 궤멸했습니다. 승리 직후 치미스키스는 곧바로 라반 요새로 칼끝을 돌렸습니다.
멈추지 않는 비잔티움의 공세
알다울라는 스스로 나서서 비잔티움 장군과 맞섰습니다. 결전은 958년 10월 혹은 11월에 벌어졌고, 아랍군은 용맹히 싸웠음에도 완전히 분산·궤멸당했습니다. 생포된 아랍 지휘관들은 쇠사슬에 묶인 채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끌려갔습니다.
이제 비잔티움의 타격은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959년 레온 포카스가 재차 공세에 올라 요새 도시 키로스를 점령했고, 마주치는 아랍 요새를 하나하나 평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960년, 알다울라는 니케포로스 포카스가 크레타 원정으로 부재중인 틈을 타 반격에 나섰습니다. 대군을 이끈 그는 비잔티움 영토를 침공해 하리시아노스 요새를 파괴했습니다. 그러나 귀환 도중 레온 포카스의 매복에 걸려 그의 군대는 문자 그대로 궤멸하고 말았습니다.
961년, 크레타에서 귀환한 니케포로스는 한겨울에 기습 원정을 감행해 알다울라를 허를 찔렀습니다. 니케포로스 포카스는 눈앞의 아랍인이라면 누구든 쓸어버렸습니다. 수십 년간의 학살에 대한 응보였기에 비잔티움군은 포로도, 노예도 잡지 않았습니다. 알다울라가 다시 반격을 준비했지만, 니케포로스 포카스는 7만 대군을 이끌고 알레포 성벽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비잔티움군은 도시를 함락하고 잔혹하게 약탈했습니다. 함락되지 않은 것은 성채뿐이었습니다. 양동 공격을 펼치느라 성외에 있던 알다울라가 돌아왔을 때, 그의 수도는 이미 불타 무너져 있었고 1만 명이 넘는 주민들은 비잔티움의 노예 신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환멸 속에 저물다
알다울라는 이 패배에서 결코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963년 마지막 공격을 시도했지만 이번에도 그의 군대는 치미스키스에게 짓밟혔습니다. 이후 그의 영토 내부에서 반란이 연달아 일어났고, 그는 사실상 퇴위했습니다. 결국 967년, 불과 50세의 나이로 병상과 환멸 속에 세상을 떠났습니다.